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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말처럼 "월드컵은 무서운 곳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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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완패를 당한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아쉬워하고 있다. 전주=임현동 기자

한국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완패를 당한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아쉬워하고 있다. 전주=임현동 기자

“월드컵을 다녀 온 기자분들도 월드컵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아시잖아요.”

한국축구대표팀 공격수 손흥민(26·토트넘)이 지난 1일 전주에서 열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1-3 완패를 당한 뒤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에게 건넨 말이다. 보스니아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팀이다. 반면 ‘한국의 월드컵 1차전 상대’ 스웨덴은 객관전 전력상 몇배는 더 강한팀이다.

2013년 12월 28일 알제리 세티프에서 열린 알제리 프로축구 리그 경기. 리그 1위팀 USM 알제를 맞아 0-1로 끌려가자 세티프의 홈 팬들이 홍염에 불을 붙여 경기장에 투척했다. 알제리 축구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티프(알제리)=박린 기자

2013년 12월 28일 알제리 세티프에서 열린 알제리 프로축구 리그 경기. 리그 1위팀 USM 알제를 맞아 0-1로 끌려가자 세티프의 홈 팬들이 홍염에 불을 붙여 경기장에 투척했다. 알제리 축구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티프(알제리)=박린 기자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축구대표팀은 알제리를 ‘1승 제물’로 여겼다. 기자는 2013년 12월 알제리 전력과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알제리 세티프를 찾았다.

알제리 프로축구 알제와 세티프의 경기를 관전했는데, 2만5000명 관중들은 레이저빔을 쏴대고, 10여개의 홍염을 켜 그라운드에 투척했다. 축구장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 같았다. 알제리 선수들은 매주 이런 전쟁같은 경기를 치르면서 단련됐다.

모하메드 라우라와 알제리축구협회장은 “알제리 대표팀 별명은 사막여우(Fennec Fox)인데, 체격이 좋아져 ‘사막의 전사’라 불린다. 한국축구 상징이 호랑이라고 들었는데, 영리한 사막여우가 호랑이를 잡을 것이다. 한국이 알제리를 얕잡아 본다면 큰 코 다칠 것”이라고 자신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 도중 골 찬스를 놓치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손흥민.  [중앙포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 도중 골 찬스를 놓치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손흥민. [중앙포토]

2014년 6월23일,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 에스타지우 베이라 히우. 한국은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알제리에 2-4 참패를 당했다.

킥오프 전부터 알제리 관중들의 귀가 찢어질듯한 응원소리에 분위기를 압도 당했다. 그라운드 안의 상황은 지켜보기 힘들 만큼 참혹했다. 기자석의 기자가 공포심을 느낄 정도였다. 집념의 만회골을 터트린 손흥민은 경기 후 눈물을 펑펑흘린 탓에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한국을 대파한 알제리는 16강에 진출했고, 연장 끝에 독일에 아깝게 패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알제리는 한국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스웨덴 미드필더 포르스베리는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도움왕 출신이다. 택배처럼 정확한 크로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한다. [포르스베리 SNS]

스웨덴 미드필더 포르스베리는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도움왕 출신이다. 택배처럼 정확한 크로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한다. [포르스베리 SNS]

한국은 18일 오후 9시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스웨덴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스웨덴은 유럽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온 팀이다.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에 6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좌절을 안겼다.

스웨덴은 지난 3일 덴마크와 평가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득점없이 비겼다. 에밀 포르스베리(27·라이프치히) 등 정예 멤버들이 총출동했지만 유효슈팅 0개에 그쳤다. “우리가 스웨덴을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스웨덴을 만만히 봤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4일 오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4일 오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4일 한국축구대표팀이 사전캠프 오스트리아에서 첫 훈련을 치른 레오강의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 전날 비행기와 버스이동시간만 16시간에 육박한 탓에 족구 등 놀이에 가까운 가벼운 훈련이 진행됐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정도만 비장하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웃음이 끊이지 않고 시종일관 유쾌했다. 큰 대회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몇몇 선수는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설레 보였다. 주장 기성용은 훈련 후 선수들을 동그랗게 모아놓고 이례적으로 15분이란 긴 시간 동안 자체미팅을 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국축구대표팀 공격수 손흥민이 지난 1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오프사이드 반칙이 선언되자 공을 들고 아쉬워하고 있다. 전주=임현동 기자

한국축구대표팀 공격수 손흥민이 지난 1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오프사이드 반칙이 선언되자 공을 들고 아쉬워하고 있다. 전주=임현동 기자

손흥민의 말처럼 월드컵은 무서운 곳이다. ‘브라질 참사’를 경험한 선수는 손흥민, 기성용, 구자철, 김영권, 박주호(울산), 이용(전북), 김승규(빗셀 고베), 김신욱(전북) 등 8명 뿐이다. 이들은 귀국길에 꽃 대신 엿 세례를 받았다. 반면 현 대표팀에는 A매치 출전이 2경기밖에 안되는 선수들도 있다.

손흥민은 보스니아전에서 패한 뒤 “월드컵이란 무대는 이정도로는 정말 택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대로가면 2014년 만큼, 아니 더한 참패를 당할수밖에 없다”며 “좀 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해야한다. ‘다음경기에 잘하겠습니다’란 말은, 솔직이 이런건 지났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더 많은 승부욕,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저부터 상당히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고 작심발언을 했다.

10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리는 스웨덴과 페루의 평가전을 보기 위해 기자는 며칠 뒤 스웨덴으로 향한다. 직접 눈으로 지켜볼 스웨덴은 과연 우리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일까.

레오강=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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