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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용산구청, 한 달 전 균열 민원 접수하고도 묵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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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용산의 4층 상가건물이 지난 3일 불과 2초 만에 완전 붕괴된 사고와 관련해 용산구청이 거짓 해명을 한 것으로 4일 드러났다. 사고 한 달 전에 이 건물과 관련한 민원을 접수하고도 사고 직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용산구청은 뒤늦게 민원 접수 사실을 시인했다. 이와 함께 건물 붕괴 위험을 지속적으로 구청에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가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물 붕괴 직후엔 “민원 없었다” #주민들 항의하자 “있었다” 시인

4일 용산 재개발 4·5구역 주민들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초 한강로2가의 4층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기울어 위험하다는 민원을 구청에 제기했다. 건물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재영(32)씨는 “지난 5월 3일 비가 많이 오고 나서 가게 벽 쪽에서 나무 합판과 벽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며 “구청에 전화로 문의했더니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서 9일 메일로 민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 직후 용산구청 측은 “민원이 접수된 사실을 한 번도 보고받거나 확인하지 못했다”며 부인했다. 해당 건물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데다 위험시설물로 등록되지 않아 별도의 안전진단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구청 측은 태도를 바꿨다. 사고 당일 밤 용산구청 측은 중앙일보에 “지난 5월 11일 민원이 접수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시인했다.   

주민 “인근 아파트 공사 탓 균열, 제소할 것”

구청 관계자는 “당시 1층 도로 바로 옆 벽이 떨어진 부분이 있어 해당 부분을 육안 검사했다”며 “전체 붕괴 위험이 있는 게 아니라서 경미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건물주에게 시정하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일부 주민은 1년 전인 지난해 5월에도 민원을 제기했지만 구청이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사고 현장에서 주변 도로와 가게 내부에 구멍이나 균열이 생기는 등 꾸준히 문제가 발생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에 대해 구청 측은 “지난해 민원 사실은 문서상으로 남아 있는 게 없어 확인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날 주민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서울시와 용산구청을 상대로 원인 규명과 피해 대책 수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사고 현장 옆에서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이후 건물 곳곳에 균열이 생겼다.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붕괴된 건물은 2016년 공사를 시작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불과 20m 정도 떨어져 있다. 금은방을 운영하는 이찬훈(72)씨는 “지난해 5월 발파공사 때문에 건물에 황토물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 지역은 하천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생겨난 대표적인 충적지로 2015년부터 지반 관련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며 “건물이 인근 공사현장 방향으로 무너졌다는 건 무리한 ‘터파기’ 공사로 지하수가 유출됐고 이때 생긴 싱크홀로 지반이 불균형하게 침하하다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날 현장 합동감식을 진행한 경찰과 소방 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7일 2차 현장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붕괴 원인은 미상”이라며 “폭발 또는 화재 때문은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사고가 난 건물주 등을 상대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조사했다.

사고 후속대책으로 서울시는 도시환경정비구역(정비구역) 내 건물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아직 관리처분인가가 나지 않은 지역 309곳을 전수조사한다는 계획이다. 김의승 서울시 대변인은 “전수조사에서 안전상 문제가 발견되면 각 조합과 상의해 즉각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규진·성지원·이승호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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