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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고정관념을 깼다 한국조선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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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현대중공업이 육상 건조방식으로 만든 10만 5000t급 원유운반선

18일 오후 2시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00m 길이의 도크 한쪽 끝에 가로 3.1m, 세로 15.1m, 높이 7.7m의 V자형 구조물이 설치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물속에서 선체를 용접하고 결합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댐'이라 불리는 이 구조물을 특별히 고안했다. 배수 및 방수 처리가 돼 있어 도크의 갑문을 열고 바닷물을 채워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이 회사 우건곤 부장은 "도크 길이보다 더 긴 배를 최종 조립할 때 선체에 밀착시켜 사용하는 장비"라며 "물속에서도 5~6명이 땅위와 똑같은 조건으로 작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는 드라이 도크에서 만든다'는 조선업계의 오랜 고정관념을 한국 업계가 깨고 있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육상 건조, 해상 건조, 수중 건조 등 새로운 기술을 잇따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경남 거제조선소에 길이 320m, 폭 55m의 '플로팅도크' 2호기를 설치했다. 2001년 이 회사가 세계 처음으로 설치한 1호기보다 50여m가 길다. 물 위에 떠있는 도크인 플로팅도크는 해상 크레인의 도움을 받아 최대 25만t급 선박을 연간 8척이나 건조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이달 15일 가로 271m, 세로 51.5m짜리 플로팅도크와 3600t을 한번에 들어올릴 수 있는 초대형 해상 크레인을 거제도 옥포조선소에 들여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육상건조 공법을 도입했다. 이 공법은 도크가 아닌 바닷가에서 배를 완성해 바지선에 싣고 바다 위로 나가 진수시키는 방식이다. 지난해 1월 러시아 해운사인 노보십에 10만5000t급 원유운반선을 처음 인도한 뒤 지금까지 이 공법으로 6척을 인도하고 21척을 만들고 있다. STX조선은 올해 초부터 선체 블록을 크레인으로 들어 옮기는 대신 바닥에 윤활제를 깔고 밀어 옮기는 공법을 적용,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이 같은 노력은 국내 조선사의 건조량을 크게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중공업은 10년 전 울산 조선소에서 한 해 40척을 만들었으나 지난해엔 70척을 진수했다. 삼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중 20척에서 50척으로 생산량을 늘렸다.

조선사들은 이 밖에도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철판의 가공 단계부터 최종 조립까지 전 공정에서 작업자의 이름을 써넣는 작업 실명제를 하고 있다. 결함이 없는 상태로 선주에게 배를 내주는 무결점 인도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오전 7시 사장 등 전 임직원이 조선소를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회사 임원들 승용차엔 골프가방 대신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실려 있다. 한진중공업은 아침마다 반장들이 직원들의 음주 여부와 손떨림 등을 확인한다. STX조선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면 야외 작업을 실내 작업으로 돌려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조선공업협회 한종협 상무는 "한정된 부지와 어려운 선박 건조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해 효율과 품질을 높이는 게 저력"이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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