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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줄달음'… 세계 경제 발목 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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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7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배럴당 70.40달러로 마감했다. 이는 1983년 이곳에서 원유 거래가 시작된 이래 마감 가격으론 최고치다. 이날 두바이유 현물가도 배럴당 64.71달러로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북해산 브렌트유의 6월 인도분은 장중 한때 배럴당 71.62달러까지 올랐다.

금.구리 등 산업용 원자재 가격도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영국의 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원자재 가격이 올해 평균 12%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당분간 70달러 이상"=대부분의 석유시장 분석가의 전망이다. 이들은 고유가의 원인으로 이란의 핵 개발 선언, 나이지리아의 정정 불안, 중국의 수요 증가 등을 꼽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이미 석유시설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생산량이 25%나 감소했다. 또 세계 4위의 산유국인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본격화하면 원유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별로 개선될 조짐이 없다는 것이다. 카타르의 아부둘라 알아티야 석유장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의 생산량은 이미 최고 수준에 달했다"며 "더 이상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메릴린치는 최악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 세계 경제 발목 잡히나=에너지 가격 급등은 소비를 위축시키고 기업들의 비용을 늘려 성장에 부담을 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원유가격이 10% 상승하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0.1~0.5% 하락한다고 경고한다.

선진국 가운데에선 특히 미국 경제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올해 초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 제조업과 주택부문의 성장세가 꺾이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올 1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5.1%로 예상되지만 2분기에는 절반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 국내 경제에 큰 변수=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올해 경제를 전망하면서 원유 도입가격을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평균 55달러로 잡았다. 그러나 원유가는 이미 이를 넘어섰다.

급격한 유가 상승은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이고 성장률을 낮추는 등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미 올 1분기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해 동기(62억 달러)보다 40억 달러 감소한 22억 달러에 그쳤다. 수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11% 늘어난 741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원유 수입이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흑자 폭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KDI는 최근 올해 경상수지 흑자 예상치를 애초의 124억 달러에서 41억 달러로 대폭 낮췄다. KDI 신인석 박사는 "유가 급등으로 교역 조건이 계속 나빠질 것으로 전망돼 현재의 경기확장 국면이 하반기 이후까지 장기화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 강제 절약대책은 아직=정부는 현재의 경기회복 추세를 고려해 당장은 강제적인 에너지 절약대책을 시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경기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다.

대신 정부는 전등.컴퓨터 끄기, 승용차 요일제 등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자율적 에너지 절약운동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유가가 급등해 수급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면 강제적인 에너지 절약대책도 검토할 방침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승용차 강제 요일제, 제한송전, 석유 배급제 등을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김종윤.고란 기자 <yoon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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