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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 타는 소리가 세상 살이를 잊게 하는 산막의 겨울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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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4)

따사로운 봄 햇살이 아름다운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산막에 봄이 찾아오면 나는 기나긴 지난 겨울을 회고한다.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제일이라는 시인도 있더라만 나는 그 어떤 소리도 한겨울 눈 오는 밤, 장작불 타드는 ‘타닥’소리만 못하더라.

강원도 산골 저 안에 숨겨진 산막에 눈이 내리면, 눈 덮인 산하 흑백사진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순간 나는 밤늦게 무리해 가며 들어오길 잘했다 싶고 모든 게 고마워진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무엇이든 생각날 때 해야 하나 보다. 멈칫거리고 미루다 보면 못하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하얀 눈이 탈도 많고 허물도 많은 우리네 삶 흔적들을 순백의 순결로 덮어주는구나.

새하얀 눈으로 덮힌 고요한 산막의 아침. [사진 권대욱]

새하얀 눈으로 덮힌 고요한 산막의 아침. [사진 권대욱]

산막은 언제나 좋다. 세상이 힘겹고 삶이 나를 속일 때도, 기쁜 일 있고 나누고 싶은 일이 있을 때도 나의 산막으로 간다. 눈 덮인 산막은 고즈넉하고 장작 난로가 타고 따뜻한 외로움이 있어 좋다. 달빛에 서러움 있고 별빛엔 그리움 있어 더욱 좋다.

땔감은 물론 실외 인테리어로도 쓰는 장작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나는 장작 한 차를 주문한다. 중요한 겨울 채비다. 눈 오는 한겨울 장작 난로 타는 소리, 밤이며 고구마 타는 냄새는 아름답다. 평화롭고 안온하며 따뜻하다. 장작으로는 참나무가 연기 적고 오래 타고 화력이 좋다. 소나무나 잣나무는 송진이 많아 연통이 잘 막히고, 밤나무 등 잡목은 가스가 위험해 야외 화이어용으로만 쓴다.

사방이 산이요 산마다 나무인데 왜 사서 쓰느냐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산에서 나무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자르기도 운반하기도 보통 일이 아니라 난로용 장작만큼은 사서 쓴다. 그게 훨씬 싸고 경제적이다. 운반차가 정리까진 안 해주니 부려놓은 장작은 집 주위로 예쁘게 쌓는다. 산촌의 정취가 있고 보기에도 좋으니 일종의 실외인테리어(exterior)인 셈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나무를 자른다. 전기톱으로 자르고 도끼질도 하며 장작을 만든다. 한겨울 내내 화톳불이 되어줄 것이며 돼지 바비큐의 깔끔함이 되어줄 것이다. 노동은 신성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몸과 맘이 둘이 아님을 느낀다. 하지만 혼자 하기는 힘들어 때로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겨울 내 쓸 장작을 준비한다. [사진 권대욱]

겨울 내 쓸 장작을 준비한다. [사진 권대욱]

그래서 이름하여 오늘은 나무데이. 계곡 공사로 베어진 잡목들은 다음 기회에 정리해야겠다. 그 뿌듯함은 말로 못한다. 그 만족을 알기에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도 나무데이, 진짜 나무 데이다. 언젤지 모르지만 장비 준비하고 날 잡을 거다.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산막이고 그래서 스쿨이다.

자유를 만끽하는 산막의 아침

나는 산막의 신새벽,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을 좋아한다. 산새 지저귀는 소리나 장작불 타는 소리, 굴뚝에서 피어나는 파란 연기를 좋아하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마음의 평온을 좋아한다. 산막의 아침에는 자유가 있다. 무엇이든 할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다.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고 무엇이든 이뤄야 할 것 같은 이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고 자유롭고 싶을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장작개비 하나 타는 데 27분 소요

겨울의 산막은 매우 무료하다.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일을 줄이려 이곳에 왔지만, 무료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사흘 내리 틈만 나면 잠만 잔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장작 난로에 장작을 하나 던져 넣으면 얼마 동안 타는가를 살펴보기도 한다. 정확히 27분이 걸린다.

추운 겨울에는 끊임없이 장작난로를 태운다. [사진 권대욱]

추운 겨울에는 끊임없이 장작난로를 태운다. [사진 권대욱]

마른 장작개비 하나가 27분을 탄다면 두 개가 타는 시간은 54분일까? 그렇지 않다. 화력은 두배가 되겠지만 타는 시간은 비슷할 거다. 밤새 화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장작을 넣어야 하는가? 너무 과열되지 않게 밤새 꾸준히 천천히 타는 장작 난로가 되어 잠 설치는 일 없는 밤을 생각한다.

장작 난로 타는 따뜻한 방안에 앉아 바람 불고 추운 세상을 보는 마음은 세상을 떠난 마음으로, 세상일을 하고 세상에 얽매인 마음으로, 세상 밖을 보는 마음 아닐까 한다. 그 마음자리 다를 바 없을 진데 결국 모든 게 마음 아니겠나? 그러니 이 삶 어째야 할까? 성심으로 살 도리밖에…. 장작 패서 곳간에 쌓아놓고 다가오는 겨울의 아늑함을 생각하는 촌부의 모습이고 싶다.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totwkwon@amba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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