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개념미술…100년 만의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5)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현대미술은 사기 또는 4차원이라 말한다. 현대미술을 풀 열쇠는 없을까?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미술가가 바로 마르셀 뒤샹이다.

‘당신은 개념이 없어!’ ‘이번 기획의 콘셉트는 멋지네요!’ 우리에게 개념이란 말은 이미 익숙하다. 개념(concept)은 주된 생각이다. 이 말을 미술에 끌어들인 이가 마르셀 뒤샹이다. 그의 개념미술(conceptual art)은 1917년 나타났다. 이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룬 역사가 100년이다. 인상주의가 현대미술의 씨앗이니 현대미술의 나이는 150살이 넘었다.

뉴욕 전시장을 충격에 빠뜨린 소변기

1917년 뉴욕 전시장에 소변기가 도착했다. 전시조직위원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화를 냈다. 소변기에는 ‘샘’이라는 제목과 제조업자 R.MUTT라는 서명이 있었다. 퇴짜 맞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뒤샹이 자신의 이름 대신 써 보낸 것이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샘(Fontaine, 1917). [중앙포토]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샘(Fontaine, 1917). [중앙포토]

뒤샹 자신도 같은 전시조직위원이라 소변기에 대해 능청스럽게 말했다. 소변기의 쓰임새를 바꾸어 샘물이 나오는 ‘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넣었고 이렇게 하면 새로 만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시대에는 창작물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물건은 작품이 될 수 없었다. 뒤샹은 전통 미술이란 유리창에 망치를 던진 격이었다.

1919년 우리 조상이 3·1 독립운동을 할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 탄생 400주년을 맞아 뒤샹은 모나리자 그림엽서에 수염을 그려 넣는다. 이 작품에 ‘그의 엉덩이는 뜨거워’라는 뜻으로 ‘L.H.O.O.Q’라는 제목을 붙여 출품했다. 모나리자는 고전 미술의 상징이다. 1911년 작품 도난사건 이후 더욱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던 때였다.

모나리자를 풍자하는 패러디는 그가 두 번째였고, 그의 팬 앤디 워홀을 비롯해 오늘날까지 300번째가 넘도록 이어진다. 뒤샹은 우상이 되어 버린 고정관념을 모두 깨고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뒤샹의 뒤를 이어 미국의 솔 르윗은 개념미술의 틀을 넓이고 굳힌다. 1968년부터 만든 회화 1259점이 있다. 이 엄청나게 많은 작품은 놀랍게도 구상만을 담은 문서를 줬을 뿐, 실제 벽에 그린 이들은 고용인이다. 물론 전시할 때는 고용인들의 이름을 발표했다. 주문서 같은 개념만으로 자신의 그림이라 인정받다니 놀라운 세상이다. 그는 대작(남을 대신해 작품을 만드는 행위 또는 그 작품)이라고 그림을 산 사람들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를 당하지 않았다.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의 Wall Drawing. 왼쪽 밑그림이 개념에 대한 문서이고, 오른쪽 그림이 고용인들이 그린 그림이다. [사진 송민]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의 Wall Drawing. 왼쪽 밑그림이 개념에 대한 문서이고, 오른쪽 그림이 고용인들이 그린 그림이다. [사진 송민]

조영남 그림은 대작이란 이유로 사기죄 판결

지난해 10월 조영남이 고소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사기죄로 판결했다. 조영남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Pop art)’처럼 조수에게 맡겼다며 대작 혐의를 부인해 왔다. 하지만 법원은 판매한 작품이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팝아트는 1950년대 후반 뉴욕을 중심으로 나타난 미술 분야다. 1960년대 미국의 앤디 워홀은 대표적인 팝아트 작가였다. 팝아트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것을 그림의 내용으로 고른다. 대중적인(popular)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 팝아트다. 앤디 워홀은 메릴린 먼로를 소재로 판화의 한 종류인 실크스크린을 대량 생산했다. 많은 조수를 두고 공장에서 작업하는 것을 공개했다.

조영남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의 요점은 이러하다. 앤디 워홀은 개념과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기계나 조수 등의 힘을 빌렸다. 이 작업방식은 현대미술의 주도적 흐름이다. 하지만 피고소인(조영남)의 작품 제작·판매 방식은 이와 다른 작품의 양식인 ‘회화’로 간주되므로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앤디 워홀의 작품은 판화인데 반해 조 씨의 그림은 붓으로 그리는 회화라는 차이가 있어 대작으로 판결한 것이다.

조영남 대작 그림. [중앙포토]

조영남 대작 그림. [중앙포토]

법원은 앤디 워홀처럼 작업방식을 공개하지 않은 점도 사기죄의 중요한 근거라고 얘기한다. 회화였던 솔 르윗의 작품은 고용인에게 문서만을 주고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고용인의 이름을 꼭 밝혔다.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만화를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작가다. 그는 작품 내용에 대한 개념을 만들고 공동 작업으로 35명의 조수에게 그림(회화)을 그리도록 한다. 조수들에게 붓 터치가 나타나지 않게 그릴 것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도 전시할 때는 조수들의 이름을 알려 대작 시비는 없었다고 한다.

조수 고용하는 개념미술, 100여년의 세계적 흐름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상은 터너상이다. 전통적 미술은 작가가 혼자서 뭘 만들까 그릴까 생각하고, 혼자서 끝까지 만들고 그리고 하는 것이다. 영국은 이런 전통적 방법이 아닌 것은 모두 개념미술로 묶는다. 터너상 수상에는 늘 ‘논란이 될 만한’ ‘도발적인’이란 언론 기사가 따른다.

터너상 수상자로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가 데미안 허스트다. 그는 지난해 개인전에 18m의 조각상을 비롯해 189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어마어마한 이 작품들은 250명 조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도 대작 시비는 없었다.

이탈리아 사회와 전 세계의 이슈메이커인 마우리치오카텔란은 행위예술가다. 그는 전문가들에게 조각 작품을 주문하고 그 작품을 가져다 전시회를 연다. 아직 사기죄로 고소당했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뒤샹 이후 100여년의 역사 동안 조수를 고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대해 영국의 회화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장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과연 작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조영남의 대작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입장과 시각이 있을 것이다. 대작한 송 모 씨는 그림 한 점에 1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대중은 노동 착취 같은 갑질에 해당한다며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진중권은 분명 조영남의 노동착취에 분노했고 미술이론만을 얘기했다. 그의 한국미술이론 수준을 지키려는 자세는 어려운 현실의 작가들마저 적으로 돌렸다. 조수를 두는 작업은 나라 안팎으로 소수의 관행이고 한국 정서에선 예민한 문제다.

“미술은 없고, 미술가만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대미술의 발전에 대한 얘기가 계속되면 좋겠다. 그래서 작가의 열정적인 창작 활동이 보호되고 미술시장이 잘 되기를 기대해본다. 작가들은 무엇을 그릴지 아이디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  아이디어를 주는 사람과 일하는 데미안 허스트는 미술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김환기 옆에는 수필가 김향안이 있다.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관계다.

작가 역할의 변화를 윗글에서 보았다. 작품 크기가 작더라도 아름답게 공동 작업하는 세상이 오지 말란 법은 없다. 뒤샹의 변기처럼 파격은 늘 미술사에 있었다. 곰브리치는 “미술은 없다. 미술가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서 단토의 “개념과 해석만 있으면 된다”는 이론이 지지를 얻는 세상이다. 모두가 기쁘게 작업하는 날을 그려본다.

송민 갤러리32 대표 gallery32@naver.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