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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 뱀장어 고향은...3000㎞ 떨어진 수심 3㎞ 해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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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

뱀장어

뱀장어(민물장어)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뱀장어에 대해 “오장(五臟)이 허한 것을 보하고, 폐병을 고친다”고 서술했다. 힘이 아주 센 뱀장어는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비타민A와 비타민E도 많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뱀장어 양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내 뱀장어 생산량은 6419t에 이른다. 2013년 3361t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렇다면 이 많은 뱀장어의 고향은 어디일까. 국내 뱀장어 양식장에서 태어나고 자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연어와는 반대로 강에서 살다가 먼바다로 이동해 알을 낳는다. 뱀장어의 생활사(Life-cycle)은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가 먹는 뱀장어의 고향을 추적해보자.

<세계 두 번째로 인공 양식에 성공했지만>

2016년 6월 당시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이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세계 두번째로 성공한 뱀장어 완전양식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6월 당시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이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세계 두번째로 성공한 뱀장어 완전양식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뱀장어 양식은 멀리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시작됐으나 당시는 도망가지 못하게 가둬두는 수준이었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 뱀장어 양식을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실뱀장어를 잡아다가 기르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국립수산과학원은 국내에서 뱀장어 인공양식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2년 뱀장어가 낳은 알과 정자로 수정란을 만들고, 거기서 실뱀장어 생산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어서 뱀장어 성체(成體), 즉 다 자란 뱀장어를 길러낸 것이다. 2010년 성공한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하지만 아직은 거기까지다. 실험실 수준이다. 경제성 있는 대량양식까지는 진행되지 않았다. 귀하고 값비싼 재료로 만든 사료를 먹여 몇 마리 키우는 데 성공했지만, 그 방법으로는 경제성이 없다.

핵심은 뱀장어가 산란하는 해역 바닷물의 특수한 성분이다. 특히, ‘바다눈(marine snow)’이 문제다. 플랑크톤의 사체가 바다 아래로 눈처럼 가라앉는 현상을 바다눈이라고 한다. 여러 동식물 사체 부스러기와 유기물 등이 섞인 것이다.
부화한 뱀장어 알은 이 바다눈을 먹고 자라는데, 이 성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 해외 연구팀에서는 뱀장어 양식에 상어 알을 먹이로 쓰기도 하는데, 이 경우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국립수산과학원 양식관리과 이배익 박사는 “대량생산을 통해 자연산보다 싸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뱀장어 암컷과 수컷의 성(性) 성숙을 유도해 알과 정자를 얻어 수정란을 만들고, 부화시켜 적당한 먹이를 주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금도 적절한 먹이를 개발하고, 최적의 사육 조건을 찾아내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해까지 부화한 어린 뱀장어의 생존율을 5%에서 17%로 높였다. 2020년까지 대량 생산, 즉 1만 마리(2t가량)를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연구팀의 목표다.

뱀장어 양식 추진 과정 [중앙포토]

뱀장어 양식 추진 과정 [중앙포토]

뱀장어 양식 과정 [중앙포토]

뱀장어 양식 과정 [중앙포토]

<뱀장어의 고향은 마리아나 해구>

유럽에서 잡힌 실뱀장어 [중앙포토]

유럽에서 잡힌 실뱀장어 [중앙포토]

전 세계에는 19종의 뱀장어가 있다. 유럽뱀장어(Anguilla anguilla)나 한국·중국·일본의 동아시아뱀장어(Anguilla japonica) 등이 어디서 태어나는지는 해양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오랜 미스터리였다. 생물학·분류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가 진흙에서 저절로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학자들도 얼마 전까지 민물에서 5~7년을 보내고는 바다로 나가 적도 부근 깊은 곳까지 수천㎞를 이동해 알을 낳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학계는 1970년대부터 뱀장어 산란장소를 본격 추적에 나섰고, 실패를 거듭하다 최근 서서히 그 신비를 풀어헤치고 있다.

일단 뱀장어가 먼 거리를 이동해 산란장을 찾고, 다시 육지의 강과 하천을 찾는 데 대해 학자들은 지구 자기장과 해류 등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뱀장어나 북미뱀장어는 북대서양 중앙부에 위치한 사르가소 해(Sargasso Sea)에서 산란한다. 수심 400~700m에 내려가 알을 낳고 정자를 뿌려 수정한다.

동아시아뱀장어는 한반도에서 3000여㎞ 떨어진 필리핀 인근 마리아나 해구 부근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부터 동아시아뱀장어 산란 장소를 추적해온 일본 도쿄대학 대기해양연구소 쓰카모토 가쓰미(塚本勝已) 교수팀은 2009년 5월 처음으로 마리아나 제도 서쪽 160m 수심에서 뱀장어 알 31개를 채집하는 데 성공했다. 수심 3000~4000m에 높이 1000m 이상의 해산(海山)이 이어져 있는 ‘서(西)마리아나 해령(海嶺)’의 남단 해역에서 플랑크톤 그물로 채집했다. 뱀장어 알의 지름은 평균 1.6㎜였다.

전문가들은 캄캄한 그믐 때나 초승달이 뜨는 시기에 맞춰 수심 200m쯤에 알을 낳으면, 알이 서서히 바다 표면으로 떠오르면서 부화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뭇잎 모양에서 연필 모양으로 변태>

뱀장어의 알은 부화해 투명한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 ‘머리가 가늘다’라는 뜻)라고 불리는 버들잎 모양 혹은 대나무잎 모양의 유생(幼生) 시기를 거치게 된다. 렙토세팔루스는 개구리로 따지면 올챙이인 셈이다.

넓적한 렙토세팔루스는 관(tube) 모양, 혹은 연필 모양의 실뱀장어로 바뀐다. 실뱀장어는 6개월에 걸쳐 육지의 하천을 향해 이동한다. 실뱀장어로 전환할 때 젤라틴과 비슷한 렙토세팔루스의 골격은 사라지고 실뱀장어의 제대로된 뼈로 거듭난다. 크기는 7~8㎝에서 5~6㎝로 줄어들고, 모양도 리본(잎) 모양에서 관 모양으로 바뀐다.

실뱀장어는 유리뱀장어(glass eel)로 불리는데, 투명하기 때문에 포식자의 눈을 피할 수 있다. 강에서 생활을 시작한 실뱀장어는 부화 후 2년까지는 암수 구별이 어렵다. 몸길이가 35㎝는 돼야 구별이 가능하다. 6년쯤(5~7년) 자라면 노란색을 띠게 띤다. 바로 황뱀장어(yellow eel)다.

황뱀장어는 가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바다로 떠난다. 하지만 곧바로 바다 산란장으로 가지 못한다. 담수에 살던 뱀장어가 짠 바닷물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3개월 강어귀에 머무는 사이 몸은 은색으로 변한다. 은뱀장어(sliver eel)다.

바다로 들어간 뱀장어들은 산란장에 이르기까지 수개월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이동한다. 산란장에 도착할 무렵 위와 장은 퇴화해 사라지고 커다란 눈과 생식소, 꼬리만 남는다. 산란한 후에는 최후를 맞게 된다.

이처럼 뱀장어의 생활사가 복잡하고 변화가 심한 것은 혹스 유전자(Hox cluster) 숫자가 많기 때문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뱀장어에는 동물 종의 뇌와 골격, 턱 등의 분화에 관여하는 혹스 유전자가 8벌이나 있다.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혹스 유전자를 4벌 갖고 있고, 일부 물고기 중에는 7벌을 가진 종류도 있다. 뱀장어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창고기의 경우는 혹스 유전자가 단 1벌뿐인데, 대신에 뇌·골격·턱이 없다.

<줄어드는 뱀장어…멸종위기종?>

지난 4월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어민들은 한강하구를 끈벌레가 점령하면서 실뱀장어 조업을 망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4월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어민들은 한강하구를 끈벌레가 점령하면서 실뱀장어 조업을 망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매년 겨울과 봄 서해와 남해에서는 실뱀장어잡이가 벌어진다. 바다에서 태어나 육지의 하천으로 올라가는 성냥개비만 한 뱀장어 치어들이다. 어민들은 망사 같은 그물이나 뜰채로 건져 올린다.

하지만 하천이 오염되고, 하구 둑이나 보로 가로막히면서 점점 뱀장어가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되고 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실시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에서는 “보를 쌓으면 은어·뱀장어 등 바다와 강을 오가는 물고기의 이동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4대강 보에는 물고기가 다닐 수 있는 어도(魚道)가 있으나, 구조적으로 힘센 물고기만 사용할 수 있는 어도이고, 실뱀장어처럼 약한 물고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1970~80년대와 비교하면 유럽뱀장어나 미국뱀장어의 어획량은 1% 수준으로, 동아시아뱀장어는 20% 수준으로 줄었다. 덩달아 모천(母川)으로 되돌아오는 실뱀장어도 줄었다.
실뱀장어 한 마리 값이 7000원까지 이를 때도 있었다. 요즘도 1㎏ 가격이 2000만 원이 넘는다. 이 바람에 국내에서도 실뱀장어의 60~90%를 수입해 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4일 강원 양구군 양구선착장에서 어린 뱀장어와 쏘가리를 소양호에 방류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양구군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8월 4일 강원 양구군 양구선착장에서 어린 뱀장어와 쏘가리를 소양호에 방류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양구군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7월 강원 고성군 거진읍 오정저수지에서 열린 어린 뱀장어 방류행사에서 윤승근 고성군수를 비롯한 주민들이 어린 뱀장어 2만여 마리를 방류하고 있다. [고성군청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7월 강원 고성군 거진읍 오정저수지에서 열린 어린 뱀장어 방류행사에서 윤승근 고성군수를 비롯한 주민들이 어린 뱀장어 2만여 마리를 방류하고 있다. [고성군청 제공=연합뉴스]

충북 옥천군 등 지방자치단체나 어업단체는 금강 상류인 대청호 등에 실뱀장어를 방류하기도 한다. 이들 실뱀장어가 자라서 바다로 나가고, 실뱀장어가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공번식 기술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잡은 실뱀장어의 일부를 방류하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유럽산뱀장어도 우리 식탁에 올라>

뱀장어 [중앙포토]

뱀장어 [중앙포토]

국내 뱀장어 소비량의 10% 정도는 외국산이다. 해양수산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6년 국내에 수입된 뱀장어는 모두 702t, 1269만 달러(약 137억원)어치였다. 2012년 141t의 약 5배다.

특히, 중간종묘(실뱀장어) 수입량은 4년 사이 1208㎏에서 18배인 2만1600㎏으로 늘었다. 국내 뱀장어 수요는 급증하는 데 비해 실뱀장어가 그만큼 적게 잡히기 때문이다.
수입 실뱀장어 중에서 동남아뱀장어(Anguilla bicolor와 Anguilla mamorata)가 71%를 차지했고, 유럽뱀장어가 17%, 동아시아 뱀장어는 12%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호주뱀장어였다.

다 자란 뱀장어도 수입된다. 동아시아뱀장어가 54%, 유럽뱀장어가 37%, 호주뱀장어가 6.4%, 북미뱀장어가 1.7%였다. 동남아뱀장어는 0.8%였다.

뱀장어 가운데 동아시아뱀장어는 2014년 6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red list), 즉 멸종위기 종 목록에 ‘위기(endangered)’ 단계로 등재됐다. 서식지 파괴와 남획, 이동 장벽 등으로 인해 숫자가 크게 줄었고, 이로 인해 다른 뱀장어 종의 국제 거래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유럽뱀장어 [중앙포토]

유럽뱀장어 [중앙포토]

유럽뱀장어는 2009년 유일하게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국제 거래에 관한 국제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 CITES)의 부속서 II 생물 종으로 등재됐다.
부속서 I 생물 종은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 종으로,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거래를 허용한다. 부속서 II 생물 종은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종의 생존을 저해하는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거래를 통제해야 하는 종이다. 부속서 III 생물 종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는 종이다.

이와 관련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뱀장어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스페인이나 영국 공항에서는 실뱀장어를 홍콩 등지로 밀수출하려다 적발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권선만 박사는 “유럽 국가들이 뱀장어 수출을 금지했지만, 지중해로 들어오는 뱀장어를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잡아서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뱀장어를 수입하려면 지방환경청에 신고해야 하고, 지방환경청에서는 매번 국립생물자원관 전문가의 심사를 받아 수입을 허가하고 있다.
최근 3개월 동안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심사한 건수는 약 30건 정도 된다.

<뱀장어와 비슷한 다른 장어 종류들>

뱀장어

뱀장어

가늘고 길게 생긴 물고기인 장어는 뱀장어를 포함해 전 세계에 약 800종이 있다.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어 종류에는 붕장어·갯장어·먹장어 등이 있는데, 이들은 바다에서만 산다.

붕장어

붕장어

▶붕장어(아나고) = 몸통은 가늘고 길며, 암컷은 보통 90㎝, 수컷은 보통 40㎝로 암컷이 더 크다. 서식장소로 바위틈보다는 얕은 바다의 모래 바닥을 더 좋아한다. 갯바위 낚시로도 잘 잡힌다. 주로 회로 먹는데, 전남 여수나 경남 통영 등지에서는 장어탕으로도 먹는다.
이에 비해 뱀장어(민물장어)는 주로 구워 먹는다. 이크티오톡신이란 독이 있어서 회로 먹으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열을 가하면 독성이 없어진다.

갯장어

갯장어

▶갯장어 = 이빨이 개 이빨처럼 생겼고 한번 물면 잘 놓지 않는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자산어보』에서도 견아려(犬牙鱱)로 기록하고 있다. 전남 갯마을에서는 ‘참장어’라고 하지만, ‘하모’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모는 일본어 ‘하무(はむ)’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래보다는 바위가 많은 곳에 서식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일본에 수출됐다. 회나 샤부샤부로 먹는다. 보통 붕장어보다는 커 2m나 되는 것도 있다.

먹장어

먹장어

▶먹장어(곰장어) = 턱이 없고 커다란 빨판처럼 생긴 주둥이를 갖고 있다. 붕장어나 갯장어 등 경골어류와는 계통이 완전히 다르다. 크기는 수컷이 55㎝, 암컷이 60㎝ 정도다. 곰장어는 보통 구워 먹는다. 부산 기장에서는 살아있는 장어를 짚불에 굽는 짚불 구이로 먹는다.

무태장어 [중앙포토]

무태장어 [중앙포토]

▶무태장어 = 제주도 천지연폭포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한때 1978년 천연기념물 258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남해안에도 서식하는 것이 확인돼 종 자체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고, 천지연 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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