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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잔 먹었다면 약은 2시간 후 복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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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인호의 알면 약 모르면 술 (8)

음식과 함께 마시는 술이란 뜻의 반주라는 단어가 있듯 술은 음식과 함께할 때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질병 치유와 건강 유지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약물을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함께 복용하면 안 되는 약물과 음식, 그리고 함께 복용할 때 효능이 바뀌거나 예상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약물들의 상호 작용, 즉 병용 금기에 해당하는 여러 조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양들의 침묵' 속의 끼안티 와인  

범죄 스릴러 영화로 유명한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s)의 한 장면엔 이러한 약물과 음식, 와인에 대한 병용 금기의 예가 나온다. 생간-콩 요리-이탈리아의 끼안티 와인의 조합이다.

신참내기 FBI 요원인 스탈링(조디 포스터)은 엽기적 연쇄 살인범에 대한 수사의 힌트를 얻기 위해 이 분야의 전문가인 렉터 한니발(앤서니 홉킨스) 박사를 찾아간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한니발은 환자들을 살해해 식육한 혐의 등으로 정신 이상 범죄자들의 병동에 감금된 상태다.

독심술의 대가이기도 한 그이기에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주위의 충고를 들었음에도 박사와의 대화에 순간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자신을 꿰뚫어 보는 박사의 냉소에 그녀는 박사 자신도 그렇게 분석해 보라며 저항한다. 그러자 박사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또렷하게 말을 뱉는다.

"실은 조사원 한 명이 나를 시험하려 했던 적이 있었지. 그래서 나는 그 친구 간을 빼서 파바빈(누에콩)이랑 먹어줬지. 근사한 끼안티 와인과 함께 말이야."

여기서 한니발은 왜 하필 그저 조사원을 죽였다거나 또는 그의 간을 빼서 먹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에콩과 끼안티 와인을 언급하며 곁들여 먹었다고 했을까. 바로 이 대사가 영화 속 한니발 박사의 냉소적인 성격과 은유를 통해 말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서 FBI 프로파일러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ㆍ오른쪽)이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 박사를 심문하고 있다. [중앙포토]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서 FBI 프로파일러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ㆍ오른쪽)이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 박사를 심문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금은 빈도가 줄었지만 정신 질환이나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복용하는 약물 중에 ‘마오 억제제(mono-amine oxidase inhibitors)’라는 약이 있다. 이 약은 생체 내 아민류인 도파민, 세로토닌 등을 증가시켜 항우울작용을 나타낸다.

그런데 티라민(Tyramine)은 혈압 증진 효과가 가장 강력한 아미노산으로 분자식에 아민기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마오 억제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티라민을 많이 함유한 음식을 먹을 때는 부작용으로 심각한 고혈압을 초래 할 수 있다. 아민류인 티라민이 많은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간, 누에콩, 와인이다.

와인과 함께 복용하면 부작용 ‘마오 억제제’ 

그러니깐 ‘내가 그의 간과 콩을 끼안티 와인과 함께 먹었다’는 한니발의 고백은 ▶그가 정신병동에 감금되어 있다는 점(마오 억제제를 복용 중일 것이라는 정황 증거) ▶ 그가 정신과 전문의라 이러한 부작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으로 유추할 때 한니발은 그를 식육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신의 결백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농담이다.

영화가 아닌 원작에는 끼안티(Chianti) 와인이 아닌 아마로네(Amarone) 와인이 대사로 쓰였다.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보다 대중적인 와인인 끼안티를 사용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끼안티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인 산지오베제 (Sangiovese)가 갖는 상징적 의미도 한몫했으리라.

‘산지오베제’는 라틴어 ‘산귀스 요비스 (Sanguis Jovis)’에서 유래된 말로 ‘쥬피터(Jovis, 제우스)의 피 (Sanguis)’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간과 함께 먹었노라고 겁을 주는 와인으로 제격이지 않은가?

왼쪽은 이탈리아 와인의 명가 안티노리(Antinori)에서 만드는 끼안티 와인. 오른쪽은 적포도인 산지오베제 품종.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인 끼안티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등의 와인을 만들 때 쓰는 품종이다. 흙내음과 블루베리, 체리 등의 복합적인 과일 풍미와 높은 산도와 탄닌을 갖춘 와인을 만들어낸다. [사진 조인호(좌), 위키피디아(우)]

왼쪽은 이탈리아 와인의 명가 안티노리(Antinori)에서 만드는 끼안티 와인. 오른쪽은 적포도인 산지오베제 품종.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인 끼안티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등의 와인을 만들 때 쓰는 품종이다. 흙내음과 블루베리, 체리 등의 복합적인 과일 풍미와 높은 산도와 탄닌을 갖춘 와인을 만들어낸다. [사진 조인호(좌), 위키피디아(우)]

극심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이러한 병용 금기를 제외하고라도 약물과 와인을 함께 복용하거나 장기간의 음주 후 약을 먹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술을 잘 안 마시는 사람이 갑자기 섭취한 알코올은 간에서의 약물 대사 효소(사이토크롬 P-450)를 경쟁적으로 저해하여 약물의 농도를 높여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술을 장기간 섭취한 사람의 음주는 약물 대사 효소군의 활성을 촉진해 약물의 대사를 빠르게 한다. 약효가 짧아지게 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알코올은 약물의 대사와 생체 이용률에 영향을 주고 의도치 않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당뇨 환자가 술 먹으면 저혈당 위험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약 중 감기와 알레르기에 주로 쓰이는 항히스타민제는 알코올로 인해 진정과 졸음의 작용이 심해진다. 항생제는 알코올로 인해 생체 이용률이 저하된다. 당뇨에 복용하는 약물들은 알코올로 인해 그 효능이 증가해 저혈당 위험을 야기한다.

따라서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이가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할 경우엔 충분한 시간을 둬야 한다. 알코올과 약물을 해독, 대사하는 간의 능력은 그 효소들의 유무와 정도에 따라 개인 차이가 있다. 위장관 내 흡수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함께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와 그 여부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와인 한잔(100mL)에 해당하는 알코올이 체내에서 모두 소실되는데 약 2시간이 필요하다. 와인 한병에 포함된 알코올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는 12시간 이상이 소요되니 이를 참고해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인호 약사·와인 파워블로거 inho3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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