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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하나된 세상, 라틴팝이 밀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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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푸에르토리코 출신 대디 양키(왼쪽)와 루이스 폰시가 협업한 ‘데스파시토’는 유튜브 조회수 51억 뷰를 돌파했다. [유튜브 캡처]

푸에르토리코 출신 대디 양키(왼쪽)와 루이스 폰시가 협업한 ‘데스파시토’는 유튜브 조회수 51억 뷰를 돌파했다. [유튜브 캡처]

“스페인어로 된 노래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노래한 대디 양키와 저스틴 비버, 같이 가사를 익히고 춤춰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라티노 친구들을 비롯해 모든 이민자 여러분, 억양이 다르다고 놀림 받는 분들, 고향 푸에르토리코에 계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인종·장르 장벽 무너진 음악시장 #‘데스파시토’ 유튜브 51억뷰 돌파 #쿠바 출신 카베요 한국서도 인기 #방탄·슈주도 라틴 리듬 끌어들여 #방시혁 “라틴팝이 K팝의 롤모델”

지난달 2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루이스 폰시가 밝힌 수상 소감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그는 후보로 오른 7개 부문 중 ‘톱 핫 100 송(Top Hot 100 Song)’ 등 5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그가 발표한 ‘데스파시토(Despacito)’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최초로 조회 수 51억 뷰를 넘어섰지만, 지난 1월 그래미에서 3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번 빌보드에서 대중성과 상업성을 모두 인정받은 것이다.

카밀라 카베요

카밀라 카베요

전 세계 음악계에 라틴팝 바람이 뜨겁다. 쿠바 출신 카밀라 카베요의 ‘하바나(Havana)’가 수록된 첫 정규 앨범 ‘카밀라(Camila)’는 빌보드 싱글 및 앨범 차트 정상을 석권한 데 이어 국내 음원사이트에도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쿠바에서 아무것도 없는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소녀의 반란이었다. 걸그룹 피프스 하모니를 탈퇴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그녀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2년 만에 솔로 아티스트로 우뚝 선 것이다. 이들은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 혼혈로 하와이에서 태어난 브루노 마스와는 다르다. 고향의 음악으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다.

미국을 뒤흔든 라틴팝 열기는 한국으로도 이어졌다. 방탄소년단은 3집 앨범에 ‘하바나’를 작곡한 알리 탐포시 작곡가와 ‘데스파시토’ 믹싱 엔지니어 제이슨 조슈아와 손잡고 만든  ‘에어플레인(Airplane) pt.2’를 수록했다. 이국적인 라틴 리듬에 몸을 맡긴 이들은 멕시코 유랑악단 ‘엘 마리아치(El Mariachi)’를 자처한다. ‘우리가 가는 그곳이 어디든 이 세계 어디서라도 노래하겠다’는 내용이다. 제이홉은 “라틴팝 사운드가 핫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며 “협업을 통해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슈퍼주니어의 ‘로시엔토’는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라틴 차트에 오르며 현지 흥행에 성공했다. 라틴팝 가수 레슬리 그레이스(왼쪽)와 은혁. [유튜브 캡처]

슈퍼주니어의 ‘로시엔토’는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라틴 차트에 오르며 현지 흥행에 성공했다. 라틴팝 가수 레슬리 그레이스(왼쪽)와 은혁. [유튜브 캡처]

슈퍼주니어가 지난 4월 발표한 ‘로시엔토(Lo Siento)’도 해외 흥행에 성공했다. ‘로시엔토’는 스페인어로 ‘미안하다’는 뜻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라틴팝 가수 레슬리 그레이스가 피처링에 참여한 곡으로 K팝 최초로 빌보드 ‘라틴 디지털 송 차트’ 13위에 올랐다. 여기에 중남미 투어 ‘슈퍼쇼7’까지 가세하면서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소속사 SJ레이블 관계자는 “후렴구 대부분이 스페인어여서 걱정했는데 반응이 좋아 다음 곡도 라틴팝과 협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라틴팝 바람은 우연이 아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는 4월 발표한 ‘글로벌 뮤직 리포트 2018’에서 “기회의 확대가 로컬 히어로(local hero)의 탄생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디지털 기반 플랫폼이 증가하면서 루이스 폰시나 방탄소년단처럼 전통적인 주류 음악 세계 영역 바깥에서 온 가수들이 활약하기 용이한 구조가 만들어졌단 얘기다.

유니버설뮤직 CFO 보이드 무이르는 “신곡을 발표하는 즉시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소비할 수 있는 지금 같은 시대에 아티스트가 어디 출신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기본적으로 탈 인종, 탈 장르, 탈 기득권 소비 방식을 보인다”며 “문화권의 경계를 넘어서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데 거부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내에서 히스패닉 인구가 전체 인구의 18%에 달할 만큼 크게 늘며 라틴 문화상품에 대한 수요 자체가 급증한 것도 한 요인이다.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1970년대 960만명에서 2016년 5750만명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그렇다면 K팝도 라틴팝처럼 국적을 넘어선 주류 음악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빌보드 K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은 “라틴팝과 K팝 모두 매우 강력하고 열정적인 음악이다. 마니아 층이 즐겨듣는 음악에 가까웠으나 라틴팝은 ‘데스타시토’로 한계를 극복하며 더 시장이 커진 것”이라며 “K팝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싸이나 방탄소년단처럼 한두 아티스트의 활약으로 이뤄질 순 없고 더 많은 아티스트가 유입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방시혁 프로듀서의 지론과도 일치한다. 그는 라틴팝을 K팝의 롤모델로 꼽으며 “서구시장에서 서구의 것을 따라 하는 방법으로는 승산이 없다. 라틴팝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메인 장르로 자리 잡은 것처럼 K팝 자체의 볼륨이 더 커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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