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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맛으로 중국서 월 수천만원 버는 서울대 출신 사장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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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코리아 타운으로 불리는 왕징(望京)에 조그만 한국 식당이 하나 있다. 이름은 순천집. 순대와 술국, 우거지탕, 김치찌개, 된장국, 삼겹살, 갈치조림 등을 파는 선술집 같은 한식당이다. 워낙 후미진 주택가에 있어 찾기도 힘들다. 식당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도 없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식당 해서 망하기 딱 좋은 위치다. 그런데 순천집엔 항상 손님이 넘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절정에 달했을 때도 손님들은 줄지 않았다. 사장은 손경찬(56)씨다. 서울대 출신이다. 그가 상식을 뒤엎고 한식으로 성공한 비결은 '역발상'이다. 모두가 맛의 '현지화'를 외칠 때 그는 비(非)현지와, 즉  '한국화'로 승부했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 남도의 맛을 고집했는데 그게 통했다. '역발상'의  쾌거다.

- 왕징의 조그만 한국 식당 #- 현지화 외칠때 한국화하는 역발상으로 승부

손경찬 사장 [출처: 차이나랩]

손경찬 사장 [출처: 차이나랩]

-한식 세계화를 말할 때 '맛의 현지화'를 강조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난 반대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더 믿는다. 식당을 열 때 주변에서 (한국적인 맛에)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은 어려워도 길게 보면 가장 한국적인 맛을 유지하는 게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 맛의 현지화를 하면 일단 한국 손님이 싫어한다. 중국인들도 처음에는 좋다고 할 줄 모르지만 길게 보면 중국 음식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 아닌가. 따라서 맛의 현지화는 중국이나 한국인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맛으로 승부했고 성공했다."

-가장 한국적인 맛의 기준은 무엇인가.
"고향이 전라남도 순천이다. 순천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남도의 얼큰하고 걸쭉한 맛이다. 그 맛을 살리기 위해 순천에서 직접 공수한 갓김치와 고들빼기김치도 내놓는다. 한국 손님 대부분은 당연히 좋아한다. 중국 손님들은 처음에는 이상한 맛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도의 독특한 맛에 단골손님이 된다."

한식당 순천집 [출처: 차이나랩]

한식당 순천집 [출처: 차이나랩]

-그럼 한국인 요리사가 음식을 하나.
"2015년 5월에 식당을 열었다. 그때는 저와 집사람, 그리고 한국인 요리사가 직접 음식을 했다. 이제는 중국인 요리사가 대부분 음식을 만든다. 주방의 시스템화 덕분이다."

-중국인이 전통적인 남도의 맛을 낼 수 있나.
"식당 사업은 주방이 처음이자 끝이다. 실력 있는 주방장과 계량화를 기본으로 한 조리의 시스템화가 중요하다. 순천집은 이 두 축이 안정되어 있다. 각각 음식의 계량화가 돼 있지 않으면 주방장이 바뀌었을 때 원래의 맛을 유지하기 힘들다. 술국과 순댓국, 김치찌개, 갈치조림 등 각각의 요리 계량화를 위해 2년여 동안 연구를 했다. 특히 육수 개발을 위해 한국에서 맛있다는 음식점 수십 곳을 돌아다니며 배웠다."

-왜 순천집인가.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자연에 순응한다는 의미 자체가 맘에 들었다. 중국인들도 순천(順天)집이라는 식당 이름에 편안한 마음이 든다고들 한다. 음식점 이름도 고객들에게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식당이 성공하려면 식당가에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순천집 위치는 너무 후미진 곳에 있고 찾기도 힘들다.
"요즘은 질(質)의 시대다.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는 게 요즘 중국인들이다.
좋은 위치는 임대료도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러나 여긴 임대료도 상대적으로 싸다. 맛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위치를 따진다. 중국에서 한국 식당 열면 열에 아홉은 망한다. 모두 남들과 비슷하고 자기만의 특장이 없어서 그렇다."

순천집 입구 [출처: 차이나랩]

순천집 입구 [출처: 차이나랩]

-중국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1989년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입시 학원을 했다. 한 5년 정도 했는데 돈을 좀 벌었다. 그리고 패션 사업과 네트워크 프로그램 개발도 했다.(손 사장은 서울대 입학하기 전 숭실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2002년 갑자기 중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넓은 천하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배낭을 메고 베이징으로 왔다. 그리고 복덕방에 들어 방을 얻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거의 무데뽀 식으로 사람들을 만나니 길이 열렸다. 준비한 자금으로 건물 임대 사업을 하면서 조금씩 베이징에 정착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아서 뛰고 또 뛰었더니 먹고 살 길이 열리더라."

-한식당을 하게 된 계기는.
"왕징에 한국인들이 적지 않은데 복덕방과 같은 편한 밥집 겸 술집이 없었다. 물론 한국 남도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음식도 없었다. 기존 한국 식당들은 대부분 현지인 입맛에 맞춰 이도 저도 아닌 맛이었다. 그래서 타깃을 순수한 남도 맛에 맞춰 식당을 열게 됐다. 사실 순천집은 맛 집이면서 고향처럼 막걸리나 소주 한잔하며 향수를 달래는 공간이기도 하다. 손님들이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맛이라고 말한다."

-그런 분위기가 중국인 손님들에겐 부담스럽지 않을까.
"처음엔 중국 손님들이 남도의 맛에 익숙하지 못했다. 대부분 다른 한국 음식점과 맛이 다르다고 불평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여기가 가장 전통적인 한국의 맛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중국 손님들이 오히려 신기해하며 다시 순천집을 찾았다. 그리고 약간 짜고 맵고 얼큰한 맛에 점점 익숙해져갔다. 중국 손님들 비율이 20% 정도 되는데 대부분 남도 맛에 중독(?) 된 단골들이다."

삼겹살 구이 [출처: 차이나랩]

삼겹살 구이 [출처: 차이나랩]

-마케팅은 어떻게 했나.
"음식 자체가 마케팅이다. 얼큰한 남도 맛에 취한 손님들이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손님이 다른 손님을 모시고 왔고 그게 오늘날 순천집 성공의 비결이다."

-중국에서 한식당을 열고 싶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주방과 계량화가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맛을 위해서다. 좋은 위치도 중요하지만 난 주방과 계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지화보다 한국적인 맛으로 승부하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결국엔 한국의 전통 맛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성공과 실패는 사업 과정 중의 느낌표일 뿐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없다고 생각한다."

-수입은 어떤가.
"매월 한국 돈으로 수천만원은 남긴다. 모두 한국의 맛에 충실한 덕이다."

-향후 계획은.
"베이징에 있는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한국의 맛으로 소통하고 위안을 받는 공간을 더 늘려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다른 메뉴를 개발하고 있는데 올해 순천집과는 다른 콘셉트의 식당을 열 계획이다. 물론 중국인들도 좋아하는 전통 한국 음식점이다. "

베이징=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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