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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행위 판치는 '사이버 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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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민은행 이모(31) 대리는 지난달부터 금융연수원이 운영하는 사이버연수의 간접투자상품 판매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하루 한 시간씩 듣는 것이 원칙이지만 제때 듣지 못해 주말에 한꺼번에 몰아서 듣기 예사다.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두 달 동안 계속되는 수업을 이 대리가 수강하는 것은 인사이동 때 투자 관련 부서로 우선 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나 학교가 강사.강의실을 구하는 어려움을 덜고, 수강생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사이버 강의가 늘고 있으나 대리시험 등 부정행위가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몰아 듣기에 대리시험까지=대표적인 것이 강의 동영상을 형식적으로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3월부터 4주 동안 서울시공무원 e교육원에서 사회복지 과정을 수강한 서울시청 공무원 김모(40)씨. 그는 "사무실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제대로 강의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원인이 와서 대화를 하거나 옆 사무실에 갔다올 때도 강의는 계속 진행됐다고 한다. 심지어 업무가 바쁠 경우 집에 연락해 아내에게 대신 로그인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출석했다.

서울시 민방위담당관실 관계자는 "대리출석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 사이버 민방위교육을 확대하도록 구청에 독려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이버 민방위교육은 2002년 도입됐으나 서울 강남.송파.강서구, 경기 과천시, 제주 북제주군 등 여섯 군데에서만 시행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부정행위가 많다. 상사가 부하에게 시험을 대신 치르게 하거나 옆 자리에 앉은 동료끼리 서로 답안 작성을 돕는 것은 일반적이다. 부서나 지점끼리 점수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잘못을 보고도 모른 체하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시 공무원 김씨는 "관련 업무 매뉴얼을 펴놓고 시험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 부정행위 대책 마련 비상=한양사이버대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학생들이 컴퓨터에 시험 화면을 띄워놓고 다른 작업을 하면 경고창이 뜨도록 했다. 또 두 사람 이상이 비슷한 아이피(IP) 주소로 시험을 치른 것이 적발되면 F학점을 주거나 재시험을 치르도록 한다. 인하대는 온라인 출석 점수의 비중을 총점의 10%로 낮추고 집이나 PC방이 아닌 학내 컴퓨터실 등에 모아놓고 감독 입회하에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지난해 금융권 직원 2만3000여 명의 연수를 담당한 금융연수원은 오프라인 시험의 비중을 60% 이상으로 늘렸다. 서울시는 사이버 강의 80% 이상을 들은 공무원에 한해 집합교육 참가와 최종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등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 늘어나는 사이버 강의=서울시는 민원처리능력 향상 과정.교통행정 등 37개 직무관련 강좌를 사이버로 교육하고 있다. 교육부는 2003년 'e-러닝센터 지원사업'을 시작해 현재 130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전국의 2, 4년제 385개 대학을 10개 권역으로 묶어 사이버 강의를 진행하고 콘텐트를 공유하도록 할 계획이다.

인하대 학사개발팀 강미남씨는 "많은 학생이 수강할 수 있고, 콘텐트를 한 번 제작해 두면 여러 번 활용할 수 있어 사이버 강의는 비용절감의 효과도 있다"며 "2003년 2학기에 도입한 뒤 개설 강좌가 늘어 현재 100여 개 과목을 2만여 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근영.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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