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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흡연, 애들 담배 심부름 OK…흡연도 '응답하라 198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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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가에 앉은 승객이 담배를 입에 문다.

버스에서 흡연 중인 시민. [사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버스에서 흡연 중인 시민. [사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두 남성이 담배를 피운다.

금연 포스터가 붙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성들. [중앙포토]

금연 포스터가 붙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성들. [중앙포토]

사무실 책상 앞의 회사원들도 담배를 피운다.

한 은행 직원이 명예퇴직 실시 통보서를 받고 고민중이다. 사무실 한가운데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중앙포토]

한 은행 직원이 명예퇴직 실시 통보서를 받고 고민중이다. 사무실 한가운데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는 공장을 세워 담배를 독점 제조ㆍ판매한다.

정부 전매청이 공장에서 담배를 생산하는 모습. [중앙포토]

정부 전매청이 공장에서 담배를 생산하는 모습. [중앙포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바꾼 30년 금연 운동

비행기ㆍ학교ㆍ병원 내 흡연부터 아이들 담배 심부름까지.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바라볼 상황들이다. 하지만 모두 20~30년밖에 지나지 않은 풍경이기도 하다. 31일 제31회 세계금연의날을 맞이해서 열리는 '담배종결전을 위한 정책포럼'에선 담배 규제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6명의 발표가 이어진다. 이 중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국립암센터 금연지원센터장)은 30년 금연 운동이 바꾼 일상의 풍경을 제시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즈음에 짤막한 토막 영어를 새겨놓은 '올림픽 생활 영어' 담배 제품도 나왔다. [중앙포토]

1988년 서울올림픽 즈음에 짤막한 토막 영어를 새겨놓은 '올림픽 생활 영어' 담배 제품도 나왔다. [중앙포토]

국내 첫 금연 단체인 금연운동협의회가 발족한 1988년은 어땠을까. 기본적으로 담배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다. 정부 전매청에선 담배를 독점해서 판매했다. 흡연 유해성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명확히 알지 못했다. 간접흡연 개념이나 금연구역이 아예 없다 보니 모든 버스와 기차, 비행기에서 흡연할 수 있었다. 병원에선 의사가 환자 앞에서 담배를 편하게 피웠다. 교실도 마찬가지였다. 교사가 학생 앞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웠다. 부모들도 자녀가 있는 안방이나 거실에서 흡연하는 게 일상이었다.

1992년 7월 새마을호 금연 열차 운행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모습. 당시만 해도 대중교통 수단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흔했다. [사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1992년 7월 새마을호 금연 열차 운행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모습. 당시만 해도 대중교통 수단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흔했다. [사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그러다 보니 남성 흡연율은 70%를 훌쩍 넘겼다. 90년 기준으로 75.5%, 성인 남성 4명 중 3명을 담배를 피웠다는 의미다. 이 당시에 남성은 성인이 되면 담배를 피우는 게 ‘정상’이고, 오히려 피우지 않는 것이 ‘비정상’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에게도 "슈퍼 가서 담배 사와라"는 심부름이 예삿일이었다. 담배 소비량도 꾸준히 늘면서 90년대엔 연간 50억갑을 수차례 넘어섰다.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시행으로 도입된 금연건물을 지정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시행으로 도입된 금연건물을 지정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하지만 금연 운동에 따른 인식 확대, 정부 규제 강화 등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풍경은 서서히 바뀌었다. 금연운동협의회가 금연 캠페인에 앞장섰다. 이러한 금연 운동 확산에 따라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고 ‘금연구역’이 처음 등장했다.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 학교, 병원 등에서 담배를 피우기 어렵게 된 것이다. 1999년엔 금연운동협의회가 KT&G를 상대로 흡연 피해자 공동소송을 처음 제기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2005년 담배규제기본협약 비준 촉구 성명 발표, 2012·2014년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촉구 1인 시위 등이 이어졌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 하루 두 갑씩 피웠습니다. 이젠 정말 후회됩니다. 1년 전에만 끊었어도….“

특히 2002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TV 금연 광고에 나오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폐암과 싸우던 그는 ”흡연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국민 여러분 담배 끊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그해 8월 숨졌다. 국내 금연 광고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흡연 폐해가 ‘남 일이 아니다’는 인식도 빠르게 퍼졌다.

세계금연의날에 진행중인 대국민 캠페인. 1990년대 이후로 금연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중앙포토]

세계금연의날에 진행중인 대국민 캠페인. 1990년대 이후로 금연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중앙포토]

현재는 30년 전과 많은 게 달라졌다. 비행기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간 벌금을 물 수 있다. 지하철역 출입구 근처, 당구장 등 실내ㆍ외 금연구역도 크게 늘었다. 대표적인 비가격 금연 정책인 담뱃갑 경고그림이 도입됐고, 담배 1갑당 가격도 4500원으로 올랐다. 이에 따라 남성 흡연율은 2015년 사상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했다. 담배 반출량도 30억갑 안팎으로 줄었다. 간접흡연에 대한 국민 인식도 크게 개선됐다. 간접흡연 노출률(가정)은 2005년 18.5%에서 2016년 6.4%로 급감했다.

길거리 환풍구 위에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중앙포토]

길거리 환풍구 위에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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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홍관 회장은 "담배의 해악이 여전히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만 해마다 6만명 넘게 흡연 때문에 숨지는 것으로 집계된다. 흡연에 따른 건강보험 추가 진료비도 2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청소년이 자주 노출되는 편의점 내 담배 광고도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상황이다. 담뱃값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서홍관 회장은 "담뱃값을 OECD 평균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면서 ”전자담배와 머금는 담배 등도 일반 담배와 동일한 수준으로 규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왼쪽 두번째)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면 교체된 담배 경고그림과 문구를 발표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과 담뱃갑 경고그림 부착은 대표적인 금연 정책으로 꼽힌다. [뉴스1]

권준욱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왼쪽 두번째)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면 교체된 담배 경고그림과 문구를 발표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과 담뱃갑 경고그림 부착은 대표적인 금연 정책으로 꼽힌다. [뉴스1]

이날 포럼에 참여한 다른 담배 전문가들도 더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담배 규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국민 건강을 위해선 모든 담배 제품과 약용을 제외한 모든 니코틴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담배 및 니코틴 규제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신종 담배 제품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편의점 내 담배 광고ㆍ진열 금지, 무광고 담뱃갑(플레인 패키징) 도입, 담뱃갑 경고그림 면적 확대, 단계적인 실내 전면 금연 등도 앞으로 추진할 대안으로 제시됐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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