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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법 피하기 … 삼성생명·화재, 삼성전자 지분 1.4조원 매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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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그룹의 금융회사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30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총 1조4000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에 대응 #어제 증시 마감 직후 전격 처분 #두 금융사 지분 9%초반으로 줄어 #삼성생명, 지분 추가 매각도 검토

삼성생명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삼성전자 주식 약 1조1800억원 어치(약 2300만주)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매각 주관사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이 맡았다. 같은 날 삼성화재도 보유 중이던 삼성전자 주식 약 2100억원 어치(400만주)를 팔기로 했다. 블록딜을 할 때는 주식을 사갈 곳을 미리 정해 놓는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어디에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 금융계열사가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한 이유는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다. 금산법에 따라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10% 이상 가질 수 없다. 매각 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은 8.27%다. 삼성화재 보유 지분(1.45%)을 더해도 9.72%로 10%에 못 미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이 변수가 됐다. 삼성전자는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지난해부터 자사주를 소각하고 있다. 보유하던 전체 자사주(보통주 1798만 주 및 우선주 323만 주)의 절반은 소각했고 나머지는 올해 안에 소각할 계획이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전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올라간다.

만일 삼성전자가 올해 나머지 절반의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면 두 회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율은 10.45%로 높아진다. 따라서 10%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두 회사는 이날 공시에서 “금산법 위반 리스크를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매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는 삼성전자 지분율은 각각 7.92%, 1.38%로 낮아진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모두 소각해도 10%를 밑돌 수 있다. 삼성전자 주요 주주의 지분 블록딜 소식에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3.51% 크게 하락한 4만9500원을 기록했다. 삼성화재도 1.37% 내렸다. 반면 삼성생명은 0.94% 상승했다.

하지만 이번 블록딜이 끝은 아니다. 이와 별도로 도마 위에 올라와 있는 이슈도 있다. 소위 ‘3%룰’이라 불리는 보험업법이다. 보험사는 계열사 채권·주식을 자산의 3% 이하로만 가질 수 있다. 이때 보유 주식 가치는 금융위원회 고시인 보험업감독규정에 따라 취득원가로 평가한다. 취득원가로 따질 때 삼성생명의 자산 대비 삼성전자 지분 가치 비율은 3%에 훨씬 못 미쳐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다른 금융회사가 보유 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유독 보험만 취득원가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특혜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생명 총자산은 약 213조원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시가(26조원·이날 종가 기준)로 따지면 약 20조원 규모의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추후 지분 추가 매각 가능성에 대해 “국제회계기준(IFRS17) 이나 신지급여력제도(K-ICS) 등을 고려해 재무건전성 차원에서 종합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계속되는 압박도 부담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0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자발적으로 매각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일 10대 그룹 경영 전문인과 만나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분리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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