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트럼프의 ‘디스 이즈 어 굿맨(This is a good man)’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친애하는 위원장’. 이렇게 트럼프의 편지는 시작한다. 미국인 기자 친구는 “아름다운 영어”라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을 지낸 웬디 셔먼은 “열세 살짜리 애가 쓴 것 같다”고 깎아내렸다. 양론이 있지만, 내가 보기엔 ‘적당한 협박을 섞으면서도 상대가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선수’의 연애편지였다. 허핑턴포스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리라이팅(다시 쓰기)했다.

한·미 관계 불신감 표출한 트럼프 #‘솔직·공평’ 중재자 원칙 충실해야

“은아, 맘이 너무 아프지만 이렇게 화내는 너를 보니 12일에 만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안 만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아. (중략)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모두가, 특히 네가 놓친 거야.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혹시 맘이 바뀌면 언제라도 전화나 편지 줘. -트럼프 오빠가.”

이 편지 한 장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쳇말로 ‘깨갱’했다. 하루도 안 돼 문재인 대통령에게 SOS 요청을 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트럼프 오빠’가 볼 때는 상대방(김정은)은 ‘한 방(핵)’은 있을지 몰라도 아직 어리숙한 ‘애’로 보였는지 모른다.

그럼 우리는 지금 워싱턴에서 어떤 존재일까. 남북 정상회담 때문에 가려졌지만 일주일 전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은 불편한 한·미 관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날 트럼프 표정에는 조롱·불쾌감·거만함이 역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키며 “디스 이즈 어 굿맨(This is a good man)”이라고 했다. 일국의 대통령 면전에서 쓸 표현이 아니다. 2001년 부시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디스 맨(this man, 이 사람)”이라고 불러 논란이 됐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습관적 표현인가 해서 시진핑·아베와 만났을 때의 트럼프 발언을 다 찾아봤다. 그런 표현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작정’을 하고 회담에 임한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이 정도로 (당신을) 칭찬했으니 나 잘했지? A플러스(A+) 받아도 되지?”라고 트럼프가 너스레 떤 것을, “트럼프가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A+를 줬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과 서울의 ‘체감 한·미 관계’가 차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어이없는 현실이다.

미국의 불만은 대충 이런 것이다. 한국이 전하는 말과 북한에 듣는 말이 다르다. 북한과 직거래하려 하는데 한국은 늘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 한국은 동맹(미국)보다 북한을 중시한다. 정보가 샌다. 당사국도 아니면서 ‘99.9% 북·미 회담 성사’ 같은 쓸데없는 말만 한다. 이런 의구심과 불신이 북·미 회담 취소 발표 때의 ‘코리아 패싱’으로 드러났다. 정상이 회담한 지 이틀도 안 돼 바로 사전 통보 없이 뒤통수를 친 것은 동맹 60년사에 전례 없는 일이다.

이런 수모를 당해도, 미국이 원치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숙명이 ‘중재’라면 해야 한다. 별도리가 없다. 다만 ‘솔직함’과 ‘공평함’이란 중재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문 대통령은 통일각 남북 정상회담에서 ‘조·미 정상회담’이라 표현했다. 방명록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썼다. 청와대는 “북한에 가선 그쪽 언어를 써주는 게 통상적 예우”라고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 22일 워싱턴에 온 문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이라 말하는 걸 단 한 차례도 듣지 못했다. 정상회담 회견 내내 ‘북·미 정상회담’이라고 했다. 우리 통역만 열심히 ‘미·북’으로 순서를 바꿨다. 청와대가 말한 ‘상대방 예우’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해도 계속 자초하면 의도가 되는 법이다. 지금보다 한층 더 긴박해질 ‘싱가포르 후’의 한·미 관계, 중재자 역할을 생각하면 일거수일투족에 보다 세심할 필요가 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