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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 손열음 “뭐든 상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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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강원도 원주 태생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올해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새로운 주제와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원도 원주 태생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올해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새로운 주제와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금 솔직히 얘기를 해보면, 피아니스트 손열음(32)의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취임이 마냥 밝고 희망적인 일은 아니다. 올해로 15년이 된 평창대관령음악제는 동계 올림픽 유치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됐다. 첫 예술감독은 바이올리니스트 강효(73), 두 번째는 정명화(74)·경화(70) 자매였다. 세계 음악계를 무대로 오랜 시간 활동해온 전임 감독들은 거기에서 만났던 음악가들을 평창으로 초청하고, 연주하거나 들었던 음악을 대관령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전임자들로부터 40세 정도를 건너뛰어 3월 취임한 3대 예술감독 손열음도 그럴 수 있을까. 2009년 반 클라이번,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입상을 계기로 한창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가 예술감독까지 잘할 수 있을까. 29일 만난 손열음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편견 또는 우려에 대한 손열음의 해결 방안을 들어봤다.

32세에 평창대관령음악제 총지휘 #전임 정명화·경화와 40년차 파격 #피아노 집중할 때에 맡아 고민 커 #외국교향악단 한국 단원 모을 것 #매일 e메일 30통 7월 무대 섭외

◆피아노 연주와 병행할 수 있을까=피아니스트로서 한창 연주가 많을 때다. 최근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을 냈고 지난 한 달 동안 폴란드·한국·영국·스페인·미국·세르비아 등 6개국 무대에서 독주·협연을 했다. 세계적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A와 계약을 한 것도 불과 1년 전이다. 말 그대로 연주만 하기에도 바쁜 피아니스트다. “처음에는 매니저가 예술감독 취임을 많이 반대했다.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 자체도 눈치를 줬던 매니저다. 나도 예술감독을 안 맡으려고 몇번이고 고사했다.”

손열음은 “나는 공간이 많이 필요한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연주하기 전에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혼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많이 든다. 확실히 시간은 물리적으로 쪼개진다. “한 번에 한 가지 일 밖에 못하기 때문에 연주 당일에는 음악제 일이 아무리 밀려있어도 하지 못하고 음악제 일을 하고 있으면 피아노 연습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피아니스트와 예술감독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방법은 의외의 실마리를 찾는다. “연주자 섭외, 프로그램 구성부터 세세한 일까지 챙기고 나면 말할 수 없이 허한 감정이 생긴다. 그런데 그때 든 생각이, ‘이 감정이 내 음악에 도움이 되겠다’는 거였다. 인간으로서 더 다양한 감정을 겪어봤으니까.” 손열음은 “음악제 예술감독은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음악은 하늘이 하라고 시킨 일인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젊은 게 아닐까=손열음은 “내가 생각하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이상적 모습은 크게 셋”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그래서 강원도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페스티벌이 되는 것이 둘이다. 마지막으로는 음악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음악과 무대에 있어서 모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손열음은 “음악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각 분야로 세분돼 전문가가 되고, 음악제뿐 아니라 음악계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이렇게 각 분야가 전문화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경험은 적을지 몰라도 문제의식만큼은 날카롭다. “본격적인 연주를 2010년쯤부터 미국에서 많이 시작했는데 어느 작은 도시를 가도 한국 음악가가 꼭 있었다. 반갑고 뭉클했다. 이 사람들을 한 번에 모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음악제에서 ‘고잉 홈(Going Home)’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단원을 불러모은다. 이들과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단원들이 함께하는 무대를 마련한다. 화려한 독주자만을 꿈꾸는 음악계 풍토에 대한 일침,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활동한 연주자의 외로움을 음악제의 주제로 불러들였다.

손열음은 “클래식 음악이 사람들에게 대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나 생각했다. 클래식 말고도 듣기 좋은 음악이 도처에 있으니까”라고 했다. 그 끝에 “클래식 음악의 가장 큰 효용은 추상성에서 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어떤 예술보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그 어떤 상상과 질문도 허용한다. 그 점을 음악제에서도 공유하고 싶었다.” 이번 음악제의 큰 주제는 ‘호기심(Curiosity), 멈추어 묻다’다. 평소 답 없는 질문을 즐기는 스타일대로 음악제의 주제를 추렸다.

손열음이 이끄는 첫 평창대관령음악제는 7월 23일부터 8월 5일까지 평창군 대관령면 알펜시아를 비롯한 강원도 전역에서 열린다. 공연은 모두 14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프, 현악4중주단인 노부스 콰르텟, 하피스트 라비니아 마이어, 첼리스트 안드레이 이오니처 등이 출연한다. 베토벤의 유명한 소나타 함머클라비어를 피아노 아닌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무대,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청중에게 즉석에서 받은 멜로디로 펼치는 즉흥 연주 무대가 손열음의 추천 공연이다.

손열음은 “2020년까지 연주자들 출연 계획을 잡고 있는 중”이라며 “매일 e메일을 30통 넘게 쓰고 4~5시간씩만 자면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게 처음이라 힘든 시간을 겪고 있지만 희한한 일은 그럴수록 피아노 연주에 대한 애정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우려와 기대, 편견과 부담 속에서 난생처음 해보는 일을 하며 손열음은 새로운 음악가로 진화 중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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