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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문재인 정부의 경제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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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 <2018년 5월 18일 30면>
대통령의 진단과 처방은 맞는데 혁신성장 왜 안 될까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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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혁신성장 보고 대회’에서 미래 차와 드론 등 8대 핵심 선도사업을 통해 2022년까지 일자리 30만 개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하면서 지난 1년간의 성과로 올해 1분기 신설 법인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코스닥지수는 32.2% 올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이 이런 성과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혁신성장의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부족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 “경쟁국들은 뛰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느낌” 같은 문 대통령 발언이 국민 눈높이에 맞다. 문 대통령은 “혁신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 혁신”을 강조하며 속도감 있는 규제 혁신도 주문했다.

혁신이 더디다는 대통령의 진단도 맞고, 혁신의 걸림돌인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대통령의 처방도 맞다. 그런데도 혁신성장은 왜 변죽만 울린다는 평가가 나오는지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 지역 단위로 규제를 없애겠다고 2015년 발표한 규제프리존법은 대기업 특혜라는 여당의 반대로 국회를 넘지 못했다.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중요한 축”이라는 김동연 부총리의 독려도 소용없었다. 이 와중에 여당은 6·13 지방선거 5대 핵심 공약에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다시 끼워넣었다. 지지부진한 정책을 공약으로 재탕한 것이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득 주도 성장은 슘페터식 경제정책과 같이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슘페터식 경제정책은 기업가가 부단히 혁신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기업가가 토지·노동·자본 등 생산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해 창조적 파괴를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적폐청산’이란 이름 아래 조리돌림당하며 기죽어 있는 기업들을 보면 기술의 창조적 파괴는커녕 우리 경제 생태계가 창조적으로 파괴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한겨레 <2018년 5월 21일 27면>
‘경기 둔화’ 진단 흘려듣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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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기 국면에 대한 판단을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두고 정부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14일 페이스북에서 “여러 지표로 봐 경기가 침체 국면의 초입 단계에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문재인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다. 김 부의장은 지난해 5월 임명됐다. 그러나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17일 경제관계장관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경제계 원로로서 좋은 의미 있는 말씀을 주셨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경제 상황을 최근 통계를 갖고 특히 3, 4월 통계를 갖고 판단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엘지(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경기 침체까지는 아니지만 회복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경기가 급격히 꺾이고 있지는 않지만 성장세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펴려면 경기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경기 상황에 따라 대응해야 할 경제정책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경기 지표들을 보면 여러 흐름이 혼재돼 있어 어느 한 방향으로 단정 짓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수출이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고 소비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공업 생산과 설비투자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특히 고용 사정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지표보다 훨씬 나쁘다. 취업자 수 증가가 2월부터 석달 연속 10만명대로 부진한데,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 있던 201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경기 국면 판단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건 나름 이해가 간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이 정부가 불안감을 보이면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그 이상으로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긍정적 측면 위주로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본다면 이 또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책 집행의 때를 놓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논리 vs 논리
“혁신성장 변죽만 울린다는 지적에 고민해야” vs “긍정적 측면 위주로 낙관은 위험”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 17일에 열린 ‘2018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 대회’에서 기립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 17일에 열린 ‘2018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 대회’에서 기립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계청 3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광공업이 뒷걸음치면서 전체 산업생산은 2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경기선행지수도 3개월 연속으로 기준선인 100 이하로 떨어지며 경기 하강신호를 보내고 있다. 반면, 지난 17일 ‘혁신 성장 보고대회’에서 경제부총리는 “올해 1분기 신설 법인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코스닥지수는 32.2% 올랐다”며 “전체적으로 볼 때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반된 경제 지표들과 정부의 해석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은 모두 비판적이다. 한겨레는 “정부가 긍정적 측면 위주로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보다면 이 또한 위험한 일”이라며 경각심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중앙 또한 “국민이 이런 성과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의문”이라며, “혁신성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아직 부족하다”는 문대통령의 발언이 “(오히려) 국민 눈높이에 맞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기 지표에 대한 처방에 대해서는 두 사설의 입장이 날카롭게 갈린다. 한겨레는 “지금의 경제 상황을 최근 통계를 갖고, 특히 3,4월 통계를 갖고 판단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는 경제부총리 발언을 소개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운다. 최저임금인상 등을 통해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활성화되어 경제도 살아난다는 논리다. 소득주도 성장은 성격상 단기간에 경제 지표들이 상승 곡선을 그리기 힘들다. 한훈 기획재정부 혁신성장정책관도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는 두 단계를 거친다. 창업할 단계에는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 않지만, 창업기 이후에는 일거리가 늘어난다”로 설명한 바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한겨레는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이 정부가 불안감을 보이면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그 이상으로 위축 될 수 있다. 정부가 경기 국면 판단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건 나름 이해가 간다”고 평가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가시적인 성과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측면에서는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반면, 중앙은 “혁신이 더디다는 대통령의 진단도 맞고, 혁신의 걸림돌인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대통령의 처방도 맞다. 그런데도 혁신성장은 왜 변죽만 울린다는 평가가 나오는지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의 정책 방향을 꼬집는다. 중앙은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중요한 축”이라는 부총리의 ‘독려’를 강조하며, “소득주도 성장은 슘페터식 경제정책과 같이 가야 한다”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도 소개한다.

지난해 정부는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올해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취업자 수 증가는 3개월 연속 10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도소매업과 음식 및 숙박업의 4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8만8000명이나 감소했다. 6개월 동안 사라진 일자리 수도 44만7000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이런 지표들을 보면, 중앙이 왜 ‘규제개혁’을 앞세우며 “기업가가 토지·노동·자본 등 생산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해 창조적 파괴를 활발하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주장하는지가 분명하게 다가온다. 정부의 예산 투입과 개입만으로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굵직한 투자를 이끌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민간 분야다. 그 가운데서도 대기업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중앙은 정통 자유시장주의자의 입장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이라는 4개의 핵심 키워드를 앞세운다. 이 가운데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은 충돌하기 쉬운 개념이다. 소득주도 성장 측면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을 위해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 반면,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중앙과 한겨레는 서로 맞서는 두 개의 정책 방향들을 각각 대변하는 듯이 보인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이번 주에는 경기 흐름을 진단하는 여러 경제 지표들이 여럿 발표된다. 한국은행은 1분기 경제성장률 잠정치를, 통계청은 4월 산업활동동향을 발표한다. 이 결과에 따라 정부 경제 정책의 방향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대처를 기대한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