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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아 네월아 재건축? 여긴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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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 견본주택 모습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 견본주택 모습

“재건축 사업을 추진한 지 15년이 됐는데, 드디어 개발되기는 하나 봅니다.”

13년간 지지부진 대전 용운주공 #신탁사가 사업 맡으며 일사천리 #1년 만에 일반분양 1320가구 완판 #투명성 높고 자금조달 안정적 #업체 신인도, 수수료 잘 따져봐야

대전 동구 용운동 용운주공아파트의 신순이 재건축 조합장은 “아파트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분양이 성공한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2003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시공사 선정과 자금 조달 등의 문제로 그간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지방 광역시 소재이지만 선호도가 높은 입지가 아닌 데다 대단지여서 건설사와 금융권은 분양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2016년 12월 조합이 신탁사인 한국토지신탁을 사업 대행자로 선택하면서 사업이 재개됐다. 이후 1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총 2267가구 중 1320가구 일반분양)란 이름으로 일반분양했고, 계약 시작 3개월 만인 지난 4월 중순 ‘완판’됐다.

재건축·재개발시장에서 ‘신탁 방식’ 사업이 재조명받고 있다. 1000가구 넘는 대규모 사업장이 신탁 방식 재건축을 통해 분양이 100% 완료된 사례가 처음 나오면서다.

신탁 방식 정비사업은 주민들이 꾸리는 재건축·재개발 조합 대신 제3자인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사업을 도맡아 진행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6년 3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졌다. 박진수 한국토지신탁 도시재생사업 본부장은 “법 개정 이후 신탁사가 정비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지지부진하던 사업장이 활력을 되찾은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20여 곳의 사업장이 신탁 방식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에선 재건축 위주로 신탁 방식이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신탁 방식 재건축 ‘바람’이 불었던 여의도 시범·광장·공작·대교아파트를 비롯해 용산구 한성아파트, 서초구 방배삼호, 동작구 흑석11구역, 영등포구 신길10구역 등이 신탁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에선 부산 동삼1구역과 명륜2구역, 대전 문화2구역 등이 신탁 방식 정비사업을 선택했다.

이 사업의 장점은 무엇보다 조합 방식보다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설립하지 않아도 돼 사업 기간을 1~2년 정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건축 부담금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신탁사가 직접 나서기 때문에 사업자금 조달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투명성이 높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조합 집행부가 연루된 뇌물·횡령 등 비리 위험이 없어 주민들의 불신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신탁사들은 전문성 강화에 신경 쓰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SK건설·포스코건설 등 대형 건설사 출신의 정비사업 경력자를 추가로 영입하고 도시재생본부 내 정비사업팀 3개를 운영 중이다. 전문가들은 신탁방식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흐름이 퍼질 것으로 내다본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정비사업의 오랜 병폐인 조합 비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어 신탁 방식에 대한 관심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따져봐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신탁사 간 경쟁이 치열해 허위·과장광고가 많다는 점이다. ‘사업 기간을 ○년 앞당길 수 있다’ ‘사업비용을 ○억원 절감할 수 있다’는 식이다. 사업 추진 시 신탁 수수료가 적정한지도 살펴봐야 한다. 수수료는 대개 분양 매출의 2~4% 정도다. 조합원들 간 이해득실에 따른 의견 조율 문제로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김규정 위원은 “사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어 조합이 신탁 방식 자체를 재검토하는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 절차 [자료:부동산 신탁업계]

●조합 방식
추진위 구성→조합 설립→건축 심의→사업시행인가
→시공사 선정→조합원 분양→관리처분인가→착공

●신탁 방식
신탁사 지정→시공사 선정→건축 심의→사업시행
인가→조합원 분양→관리처분인가→착공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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