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시장에서 안 먹히는 소득주도 성장

중앙일보

입력 2018.05.2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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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논설위원

소득주도성장론이 정치권에서 불붙던 2015년 4월 7일, 학자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보수·진보 대토론회’에서다.

최악의 소득 불균형, 고용 위축 … 시장 신호 다급해져
버는 사람 소득 올리기보다 일 없는 사람 일자리부터

진보진영의 학자들은 포디즘을 들고 나왔다. 1914년 헨리 포드가 근로자의 임금을 당시 평균 임금의 두 배가 넘는 하루 5달러(현재 가치로 120달러)로 확 올려 소비를 진작시키고, 기업의 이윤도 두 배로 증가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업계에는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하는 기업인이 왜 없는가”라고 강변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광두 당시 서강대 석좌교수가 한마디 했다. 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 각국이 협조 안 하면 의미가 없는 과제다. 어느 한 나라만 올리면 경쟁력이 떨어져 그 나라만 손해 본다”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포드 자동차의 임금인상을 지적했는데 당시에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없었다. 만약 도요타가 있었는데도 그랬다면 시장을 도요타에게 모두 빼앗겼을 것이다. 상황이 전혀 다른 나라의 데이터나 사례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일은 최소한 전문지식을 가진 학자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채택했다. 최저임금을 16.4%나 확 올리며 포디즘을 시험 중이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고용시장은 쪼그라들고 있다. 회복 기미도 안 보인다. 물가는 치솟는 중이다. 그만큼 돈의 가치는 떨어졌다. 이런 판국에 청와대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친 영향은 없다”고 되뇌고 있다. 국책연구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다.

연구의 요지는 이랬다. ‘최저임금이 오른 뒤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고용은 안 줄었다. 음식·숙박업의 고용 감소는 2016년 7월부터 계속된 추세다. 최저임금 때문에 줄었다고 볼 수 없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고용총량은 고용인원(n)에 근로시간(h)을 곱해서 산출한다. 근로시간이 줄었다면 고용량이 줄었다고 보는 게 맞다. 더욱이 근로시간이 줄어든 건 단박에 인원을 감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임금을 줄여 인건비 총액을 맞추려는 고육책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근로시간 감축을 고용감축의 전 단계로, 강력한 고용감소 신호로 해석하는 이유다. 한데 고용이 안 줄고, 최저임금 영향도 없다니 납득하기 힘들다.

‘음식·숙박업의 고용 감소는 오랜 추세’라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그 추세를 해석한 시점인 2016년 7월은 사드 보복이 시작된 때다. 시장이 급격한 환경 변화에 반응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사드 보복이 풀린 올해 들어서도 왜 음식·숙박업의 고용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하락세를 이어갈까. 그 의문을 푸는 게 제대로 고용시장을 분석하는 것일 거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안 준다면 3조원에 달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없다.

때마침 소득주도성장론의 올해 첫 성적표가 나왔다. 지난 3개월 동안 소득이 많은 상위 계층과 적은 하위 계층 간의 배율(5분위 배율)이 6배였다.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높다. 소득 불평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소득주도성장론은 일자리가 있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논리다. 돈을 버는 사람의 소득을 더 높이자는 것이니 말이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겐 선전 구호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일자리가 생기게 하는 게 우선이다. 그건 민간의 몫이다. 민간부문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조르고, 누르고, 끌고 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풀고, 북돋우고, 설득해야 가능하다.

2015년에 지금의 여당이 제기했던 질문을 다시 던진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도대체 어떻게 볼 것인가?’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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