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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남북정상회담장 원형 테이블에 숨은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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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18)

협상 장소는 어디로 정하는 것이 좋을까? 안방에서 협상하는 것이 유리할까?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 좋을까? 제3의 장소가 유리할까?

협상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안방에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본인이 가진 자원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협상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안방에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본인이 가진 자원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안방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본인이 가진 인적·물적 자원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법무팀을 갖추고 있는 기업의 계약 담당자가 협상 장소를 본인의 회사 사무실로 정해 협상을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계약 협상 도중 급하게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담당 변호사를 직접 불러 의견을 듣는다면 협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 주는 장점도 있다. 상대방은 우리가 자기를 배려하면서 이번 거래를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우호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다. 상대방의 사무실이나 생산시설에 직접 방문함으로써 평소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정보를 얻을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첫 거래를 시작하는 공급업체와 협상을 하는 경우 첫 미팅을 그 공급업체의 공장에서 진행하면 공장가동률, 작업환경, 근무 인원 등의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협상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둘러보니 공장가동률이 60%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저희가 제안하는 거래조건을 맞춰주신다면 1년 이내에 공장가동률을 100%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물량을 맞춰드리겠습니다”와 같은 대화를 건넬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제3의 장소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양측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면 중간지점에서 만날 수도 있다. 어느 일방의 장소에서 협상을 진행할 경우 비밀유출의 우려로 제3의 장소를 협상지로 정할 수도 있다.

또 외국 고객사와의 분쟁해결을 위한 중재에선 준거법률 및 관할법원·중재원이 어느 일방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3국의 중재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 기업의 분쟁 발생 시 홍콩 국제중재센터에서 분쟁을 해결하도록 하는 경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확정되면서 구체적인 회담 장소가 어느 곳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외신을 통해 후보지로 꼽히고 있는 호텔 중 하나인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확정되면서 구체적인 회담 장소가 어느 곳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외신을 통해 후보지로 꼽히고 있는 호텔 중 하나인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년 6월 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장소 선정을 두고 워싱턴 D·C, 평양, 몽골, 괌, 스위스, 스웨덴, 판문점, 싱가포르 등 7~8곳의 후보지가 물망에 올랐다. 가장 먼저 후보지에서 배제된 것은 워싱턴 D·C와 평양이었는데, 양측 다 상대국의 수도에서 정상회담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또 괌은 미국령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반대했고, 북한에서 원했던 몽골의 울란바토르는 북한의 우방이라는 점과 경호 및 숙박을 위한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에서 미국이 반대했다. 한때 스위스와 스웨덴 등 유럽 국가도 고려됐지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사용하는 전용기로는 논스톱 비행이 어려워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을 수차례 언급하며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부각됐지만, 미국 백악관의 참모들이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고 협상 결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해 마지막에 후보지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는 싱가포르로 정해졌다. 싱가포르는 정치적 중립국이며, 경호, 숙박 및 언론 지원을 위한 최신 시설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또한 2015년 중국 시진핑 주석과 대만 마잉주 총통의 정상회담 등 굵직한 외교 회담과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경험이 있다.

지리적으로도 평양에서 5000km 이내에 위치해 약 1만km를 비행할 수 있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전용기로도 논스톱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드러났다. 협상 장소 결정을 둘러싸고 양국이 이렇게까지 고심을 하는 것을 보면 협상 장소가 협상의 분위기, 협상의 주도권 장악, 협상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형 테이블, 원만한 대화 분위기 조성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원형 테이블은 적대적인 느낌을 줄이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원만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원형 테이블은 적대적인 느낌을 줄이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원만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협상 장소뿐만 아니라, 심지어 협상 테이블과 자리 배치까지도 신경을 쓴다. 사각 테이블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느낌을 주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측면이 있는 반면, 원형 테이블은 적대적인 느낌을 줄이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원만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 정상회담 테이블을 보면, 기존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원형 테이블을 배치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남북 정상이 긴장감을 줄이고 허심탄회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테이블 폭을 2018mm로 정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서로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좁히려고 세심한 준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원형 테이블을 준비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사각 테이블에서 자리 배치를 삼각 구도 또는 다이아몬드 구도로 조정함으로써 대치되는 느낌을 줄일 수도 있다. 또 협상 참여자의 지위와 역할, 상황에 맞게 누가 어디에 앉을지도 전략적으로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

의자의 크기와 높이 등도 협상에 미묘한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국빈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은 더 크고 높은 의자에 앉고 상대방에게는 더 작고 낮은 의자를 배치해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상황을 만든다.

실제로 2017년 6월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이 한일관계 개선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총리 관저에 배치된 의자의 크기와 높낮이가 다른 것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해 의자를 교체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협상을 앞두고 장소선정, 테이블 형태, 자리 배치, 의자 크기와 높이 등의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치밀한 물밑작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글로벌협상연구소장 류재언 변호사 yoolbonla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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