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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적의 낙하산 부대'…정권1년차 공공기관 잔혹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자리 재난인데 낙하산 인사 잔치를 벌이고 있다.”
지난 17일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노무현재단 사무처장 출신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이 임명되자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논평이다.
안 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홍보처 차장을 역임하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단체인 더불어포럼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관광 업무와 거리가 먼데 현 정부의 ‘공신’이라는 이유로 등용됐다는 게 자유한국당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안 사장이 관광 분야 경력은 없지만 관광산업에 대해 관심이 높다”고 해명했다.

지난 17일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단체인 더불어포럼 사무처장을 지낸 안 사장은 관광 관련 업무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야당으로부터 '캠코더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앙포토]

지난 17일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단체인 더불어포럼 사무처장을 지낸 안 사장은 관광 관련 업무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야당으로부터 '캠코더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는 지난 대선 공약집에서 ‘9년 적폐청산(제1장)’의 세부 과제로 ‘적재적소의 인사’를 들었다. 또 이를 위해 ‘능력과 전문성에 기초한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로 대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야권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진행된 인사를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라고 규정짓고 비판해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중앙일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 1년간 공공기관장 97명이 바뀌었는데(2018년 5월 20일 기준), 이중 34명이 야권이 주장하는 ‘캠코더’ 인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오 사장은 86그룹 운동권 출신으로 17ㆍ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오 사장은 86그룹 운동권 출신으로 17ㆍ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대 국회 입성에 실패한 민주당 전직 의원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기관장 자리에 앉은 한국국제협력단(이미경)ㆍ한국농어촌공사(최규성)ㆍ한국철도공사(오영식)ㆍ국민연금공단(김성주)ㆍ국민건강보험공단(김용익)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 1달 가량 된 지난 지난해 6월 당직자들에게 공공기관 파견 희망자를 조사하는 단체 문자를 돌린 일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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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을 비판하는 야당도 과거 여당 시절 예외없이 ‘낙하산’을 내려보냈다. 같은 집권 1년차 때 공공기관 인사를 대상으로 같은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기준을 적용해 보면, 박근혜 정부 때는 41명, 이명박 정부 때는 61명이 이에 해당된다. 정권 교체 후 1년간 권력의 끈을 붙잡고 내려온 ‘낙하산’ 부대가 공공기관을 접수하는 일이 관행이 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임기 첫 해 공공기관에 뿌려진 '캠코더' 낙하산 인사 규모.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임기 첫 해 공공기관에 뿌려진 '캠코더' 낙하산 인사 규모.

[디지털스페셜] "공기업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우리는 무적의 '낙하산 부대'

‘고소영’ ‘서수남’의 추억  

사실 정권 교체 후 낙하산 부대의 공공기관 점령이 처음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소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가 회자됐다. 실제 임기 첫해 임명된 공공기관장 102명 중 절반이 넘는 58명이 ‘고소영’ 출신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기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기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중앙포토]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전 대통령의 임기 첫해 산하 33개 공공기관 가운데 31개 기관장이 교체되거나 공석이 되며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유인촌 당시 문화부 장관은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뒤를 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고소영’ 낙하산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내는 것은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되는 일입니다.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2012년 12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낙하산' 인사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역시 이같은 관행을 되풀이했다.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낙하산' 인사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역시 이같은 관행을 되풀이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박근혜 정부 역시 임기 첫해 공공기관장을 무려 125명 교체했는데, 이중 78명이 ‘서수남(서울대-교수-영남)’ 출신이었다.

2013년 2월 20일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친박의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이 임명된 인사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에게 공공기관 임원 자격 요건을 강화해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겠다고 보고하던 중이었다.

새 정권이 공공기관을 ‘전리품’처럼 다루며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데 대해 엄태섭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청와대나 장관급 인사만큼 주목을 끌지 않으면서도, 억대 연봉을 받는 곳. 즉, 선거에 기여한 ‘공신’들에게 인심을 베풀기에 적절한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양상.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는 '서수남(서울대-교수-영남)', 문재인 정부는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가 많이 임명됐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양상.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는 '서수남(서울대-교수-영남)', 문재인 정부는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가 많이 임명됐다.

사장-감사-이사 모두 ‘낙하산’ 한 식구

‘낙하산’은 공공기관장 뿐이 아니라 이사 및 감사 자리에도 떨어진다. 야권이 주장하는 ‘캠코더’ 인사 기준을 이사ㆍ감사까지 확대 적용해 보면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부대’는 65명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을 견제ㆍ감시해야 하는 자리까지 전부 한 식구로 채워지면 제대로 견제가 되겠냐”며 “재벌 족벌 경영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논란이 된 사례가 한국주택금융공사다. 지난 1월 취임한 이정환 사장은 이른바 ‘성골 캠코더’ 인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책상황실장을 역임했고, 지난 대선 땐 문 대통령의 부산시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19ㆍ20대 총선 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내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한국주택금융공사 창립 1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정환 사장이 주택금융공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이 사장 외에도 감사 및 이사에 더불어민주당 또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 인사들이 임명됐다. [연합뉴스]

지난 3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내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한국주택금융공사 창립 1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정환 사장이 주택금융공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이 사장 외에도 감사 및 이사에 더불어민주당 또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 인사들이 임명됐다. [연합뉴스]

주택공사 감사ㆍ비상임이사에 임명된 이동윤 전 부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과 조민주 변호사 역시 ‘문캠’(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이다. 또 다른 비상임이사 손봉상남경이엔지 상무는 문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부산 사상구의원을 지냈고, 노무현재단에서 일했다.

이 사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검찰과 감사원 조사를 연이어 받으며 한국거래소 이사장에서 떠밀리듯 물러난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책상황실장을 역임한 전력이 문제가 됐다는 말이 돌았다. 그가 물러난 뒤 한국거래소는 친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꿰찼다. 정권이 바뀌면서 역할만 바뀐 채 똑같은 ‘드라마’가 연출된 셈이다.

박광일 BNK 부산은행 노조위원장이 지난해 7월 28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은행 본점 1층에서 열린 BNK금융지주 회장 외부 낙하산 인사 반대 집회장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새로 취임한 김지완 BNK 회장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의 경제 고문을 지냈다. [송봉근 기자]

박광일 BNK 부산은행 노조위원장이 지난해 7월 28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은행 본점 1층에서 열린 BNK금융지주 회장 외부 낙하산 인사 반대 집회장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새로 취임한 김지완 BNK 회장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의 경제 고문을 지냈다. [송봉근 기자]

민간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서울시당 유세위원장을 지낸 유대운 전 민주당 의원이 이사장, 부산 ’노사모‘ 출신으로 친노그룹에서 ’미키 루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이상호씨가 감사를 맡고 있다.

유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 국토교통위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이씨도 건설이나 공제 업무 관련 경험이 없다. 이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사 업무라는 게 기본적으로 관련 규정을 잘 지키는지 보는 것이다. 그 정도는 다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주변 사람들이 ‘뭐라도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전문건설사들이 조합원인 민간기관이지만 국토교통부가 인가ㆍ감독을 맡고 있어 정부 ‘입김’이 센 곳이다. 이사장의 연봉은 3억5000만원, 감사 연봉은 2억70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겉으론 ‘탕평’을 말하지만…

공공기관 인사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포인트는 ‘출신지’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지역 탕평’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달랐다. 이명박 정부 땐 취임 후 1년간 임명된 공공기관장 102명 가운데 28명, 박근혜 정부 땐 118명 가운데 23명이 TK(대구 경북) 출신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역 차별을 근절하겠다”며 공기업에 블라인드 채용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문 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사 역시 ‘탕평’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1년간 교체된 공공기관장 97명 가운데 25명은 호남 출신이었다. 신임 인사의 1/4에 해당하는 규모다. 문 대통령의 고향인 PK 지역 인사도 22명 임명됐다. 이전 정권의 사랑을 받았던 TK 출신은 그 절반 수준인 13명에 그쳤다.
지역만 TK에서 호남ㆍPK로 달라졌을 뿐, ‘인사 쏠림’ 현상 자체는 현 정부 들어서도 여전한 셈이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인사 지역별 분포.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영남 인사가 중용된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호남 인사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인사 지역별 분포.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영남 인사가 중용된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호남 인사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청와대로 가는 차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밝혔다. [박종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청와대로 가는 차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밝혔다. [박종근 기자]

문 대통령은 1년 전인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청와대는 이 약속이 지켜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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