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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문재인 개헌안’의 쓸쓸한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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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24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은 두 개의 ‘64’와 마주했다. 먼저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건 64년 만이다. 대통령 3선 연임을 담은 자유당의 개헌안은 1954년 11월 18일 부결됐다. 그러나 다음날 자유당은 사사오입으로 의결정족수를 136명에서 135명으로 줄이는 꼼수를 썼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통하는 2차 개헌이었다. 이후 1987년 9차 개헌까지 개헌안 부결은 없었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투표 불성립’ 선언까지 걸린 시간도 64분이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으로 표결을 반대했고 민주당 의원 3명이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성토했다. 표결 후 정 의장은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64년 만의 역사적인 일은 64분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사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헌법 개정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3분의 2(192명) 이상의 찬성에 한참 못 미치는 114명이 표결에 참여한 까닭이다. 평화당(14석)·정의당(6석) 등 여권에 우호적인 야당이 전원 참석했더라도 113석을 가진 한국당이 불참하면 애초 달성 불가능한 목표였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여야 모두 합의가 돼야 가능했던 ‘1987년 체제’의 종식은 지난 3월 사실상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청와대는 대통령 개정안 발의 입장을 밝힌 뒤 사흘에 걸쳐 ‘살라미’ 방식으로 TV로 생중계를 통해 대국민 여론전을 폈다. 국회와의 소통은 소홀히 하자 모든 야당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이 보인 반응도 실망스러웠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역사적 책무를 저버린 야당들에 대해서는 국민이 반드시 기억하고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직무유기”라고 비판한 뒤 “대통령 개정안을 재상정해서 표결할 수 있는지 답을 찾겠다”고 했다. 재상정을 시도하게 되면 여야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야당에도 근원적인 책임이 있다. 지난해 5월 대선에 나선 모든 후보는 6·1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약속했다. 당시 대선에 나선 야당 후보들은 지금 모두 각 정당의 대표 또는 실력자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기보다는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게 정략적으로 유리한지만 따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청와대는 이날 결과를 받아든 뒤 “새로운 개헌 동력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문 대통령 개헌안’은 쓸쓸히 퇴장했다. 하지만 국회가 제 몫을 못한다는 비판은 계속 비등하다.

허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