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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북한 개발의 환상을 접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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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북한 개발의 첫 단계는 급속한 사회·경제 변화에 따른 혼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북한에 적절하고 유용한 조언을 제공할 국제자문위원회를 설립하는 일이다. 이 위원회는 북한이 직면하게 될 어려움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전 세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돼야 한다. 그 전문가들은 투자은행이나 기업과는 관련이 없어야 한다.

광물 자원과 값싼 노동력 노리는 #무분별한 개발 논리에서 벗어나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도 고려한 #국제적 모범 사례의 과정이 돼야

북한에 매장돼 있는 석탄과 각종 광물을 통해 얻게 될 이익에 큰 관심을 가진 다국적 기업들이 있고, 북한은 가난한 나라다. 관료들은 이런 유혹에 빠져 미래 세대의 한국인이 후회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확보할 때까지 북한의 모든 광물 자원 개발을 동결해야 한다. 또 북한의 천연자원 개발은 과학적 연구 결과에 기반하여 엄격하게 규제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 광물 자원 개발에 따른 이익은 교육, 통치 방식의 개선, 복지 측면에서 북한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

1950~60년대에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스탠더드오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진행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소수의 현지인은 부유해졌지만 주민들의 평균적 교육 및 임금 수준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사례가 북한에서 반복되는 걸 막아야 한다.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시도는 한반도의 문화적·사회적 통합을 늦출 뿐이다. 북한의 일부 계층이 개발 이득을 독점하는 통일은 재앙으로 간주해야 한다. 북한 개발이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계획· 운영되는 아파트 단지와 고속도로, 소비를 조장하는 백화점 도입 등에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에 대한 교육이 먼저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한 대학 진학의 수단이 되서는 곤란하다.

임마누엘 칼럼 5/25

임마누엘 칼럼 5/25

인프라는 북한에 중요한 문제다. 북한에 새로운 기반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 주민들의 환경에 적합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며,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 및 일반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광고를 통해 소비와 낭비를 부추기고 대형 주택 및 대형 차량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이 그 지역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은 현재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100% 재생 가능한 경제를 창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모델이 성공한다면 장차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시범사례가 되고, 한국에도 상당한 인식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모든 건물은 벽 전체에 충분한 단열재와 이중· 삼중의 창을 갖추고 태양 전지판으로 덮는 방안을 마련하고, 에너지 효율 및 생성과 관련해 가능한 가장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또한 최대한 풍력과 기타 형태의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면서 지역 차원에서 시민들이 유지 보수와 관리를 하도록 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사회의 설계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개발이 약간 더디더라도 화석 연료의 수입이나 수출이 없는 100% 신재생 에너지 생산에 주력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단기적 흥분에 편승하지 말고 더 큰 사회적 소외감을 창출하는 화려한 호텔, 고급 레스토랑이나 술집보다는 협동 농업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절약과 검소는 부실한 경제계획으로 인한 결과이지만 절약이 결코 죄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가급적 지역에서 재배된 건강한 채소를 먹고, 설탕이 들어간 가공식품에 중독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자원을 낭비하거나 충동에 탐닉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선진국보다 뒤처져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는 한국 전통문화의 가르침처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과의 논의를 마치고 돌아와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 전력 생산 사업을 미국의 민간 부문이 담당할 것처럼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이 시사하는 것은 북한의 개발 방법을 결정하는 주체가 비정부기구(NGO)나 대학 또는 기타 전문가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민간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이뤄진 각종 북한 관련 논의에서 석탄 및 기후변화와 관련된 문제는 다뤄지지도 않았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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