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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넌 누구냐]⑥내신 성적의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변별력' 상대평가냐, '경쟁 완화' 절대평가냐 

77대 23.
현재 고교 2학년이 치르는 2020학년도 대입의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비율입니다. 20년 전의 2002학년도에 수시모집은 29%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매년 늘어나 이제 10명 중 8명이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갑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시 확대’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시모집을 늘릴지는 8월 국가교육회의가 발표할 대입 개편안의 핵심 중 하나죠.

‘수시냐, 정시냐’는 바꿔 말하면 ‘내신이냐, 수능이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시모집에는 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전형, 논술전형 등 다양한 전형이 있지만 고교 내신 성적이 중요한 요소로 반영됩니다. 정시모집은 무엇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가장 중요하죠.

수시모집 비중이 커진 지금은 내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힙니다.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죠. “수능보다 내신 경쟁이 더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육 당국은 내신 성적 제도를 바꾸려 하고 있는데요, 10년 가까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번 ‘대입, 넌 누구냐’에선 내신에 대해 알아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내신 성적은 기본적으로 ‘상대평가’ 등급으로 반영됩니다. 자신이 얻은 점수가 다른 학생의 점수에 비해 어떤지에 따라 등급이 결정됩니다. 상위 4%에 들면 1등급, 11%까지는 2등급, 23%까지는 3등급 식으로 9등급까지 매깁니다. 좋은 등급을 받으려면 ‘다른 학생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신 상대평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을 비판합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내가 잘하는 것이 중요한 시험이 아니라 다른 친구보다 잘해야 하는 시험이라 끝까지 안심할 수 없다“며 ”수능은 1년에 한 번, 60만이 넘는 동년배와 치르는 시험이지만 내신은 3년간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과목을 바로 옆 친구와 경쟁하는 시험“이라고 지적합니다. ”학생 간에 견제하는 분위기가 교실을 살벌하게 만들고 협업과 의사소통 능력을 배우기는 불가능하다“고도 주장합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고교 내신 ‘절대평가(성취평가제)’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절대평가는 다른 학생과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지 않고 자신의 점수에 따라 등급이 나옵니다. 교육부 방안은 A~E까지 5개 등급을 매기는 방법이었습니다. 90점 이상은 A, 80점 이상은 B, 70점 이상은 C를 받는 식입니다. 다른 친구의 점수와 관계없이 자기 점수만 90점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 얼마든지 A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되죠.

하지만 내신 절대평가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부에 A~E등급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실제 대입에서는 기존 상대평가를 쓰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절대평가의 부작용이 크다는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몰려있는 특목고나 자사고에서 최고 등급이 많이 늘어나 입시에서 유리해집니다. 실제 지난 2017년의 학교 성적 분포를 살펴보면 서울의 A일반고는 수학 A등급이 8.5%에 불과했지만 B자사고는 16.8%, C외고는 59%나 됩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또 절대평가를 하면 학교마다 A등급을 늘리기 위해 문제를 쉽게 내는 등의 방법으로 내신 성적을 부풀릴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5년 고교 교사 6900명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내신 절대평가를 위해 필요한 조치 1위가 '성적 부풀리기 방지 대책 마련'(27.9%)이었습니다. 교사들조차 성적 부풀리기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이죠.

성적 부풀리기로 A등급이 너무 많아지면 대학으로서도 누가 더 우수한지 변별할 수 없어 사실상 내신은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부는 2016년으로 절대평가 도입 결정을 미뤘다가 또다시 미뤄둔 상태입니다. 올해 8월에도 교육부가 내신 절대평가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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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제가 있지만 내신 절대평가는 언젠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2022년부터 도입할 '고교 학점제' 때문인데요. 이 제도는 대학처럼 학생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 학점을 따는 제도입니다. 수업에 따라 100명이 듣는 과목도, 10명만 듣는 과목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신 성적을 상대평가로 한다면 소수가 선택한 과목은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하게 됩니다. 학점제 취지가 무너지는 것이죠. 교육계에서는 “내신 절대평가는 고교 학점제의 선결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11월 고교학점제 형태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강서구 한서고를 찾아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11월 고교학점제 형태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강서구 한서고를 찾아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그때까지 ‘내신 부풀리기’나 ‘특목·자사고 유리’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부는 2011년 이후 아직도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내신 절대평가는 특목고·자사고 등 고교 서열화가 여전한 상황에서 섣불리 도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내신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채 정시 비율이나 수능 개편만을 다룬다면, 8월에 발표될 대입 개편안은 ‘반쪽 개편’에 그칠 수 있습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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