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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 14년 '한국판 장발장'···돼지저금통 2만원이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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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매력 코리아 │ 2018 교도소 실태 보고서 ①

교도소의 담장 높이는 5m가 넘는다. 그 높은 벽은 세상을 둘로 나눈다. 하지만 격리가 만든 안전망은 시한부다. ‘준비 안 된’ 출소자 수백 명이 매일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담장 안 그들은, 다시 담장 밖 우리의 이웃이 된다.

18세 장발장, 200만원 훔치고 14년 #새삶 교육 못 받아 재수감 반복 #재범 막을 예산, 1명당 월 만원뿐

지난달 12일 춘천교도소 접견실에서 김석원(39·가명)씨와 마주 앉았다. 파란색 수의에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잠시 쭈뼛거렸다.

전과가 얼마나 되나요.
“7범입니다. 모두 빈집털이, 절도를 하다 붙잡힌 겁니다.”

이후 두 시간에 걸쳐 그는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흔 남짓한 그의 삶 중 14년4개월은 교도소 창살 안에서 보낸 기억이다. 18세 때 빈집에 들어가 돼지저금통을 훔친 게 첫 범행이었다. 2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는 구속됐다. ‘도주 우려가 크다’는 이유였다. 고아로 자란 탓이 크구나 여겼다. 일이 없어 생계가 막막할 때마다 그는 빈집털이를 했다. 일곱 번의 범죄로 그가 훔친 돈은 200만원이 넘지 않았다. 교도소 생활은 대부분 먹고 자는 일의 반복이었다. 전과 6범 때가 돼서야 처음으로 교도소에서 인성교육을 받았다. 형기가 짧아 직업훈련을 신청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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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한 달여간 취재한 대한민국 교도소는 처벌의 공간이었다. 바깥 세상에서 ‘기회’가 부족했던 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도 새 삶을 위한 ‘두 번째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엔 생계형 절도로 1년 미만의 징역형을 수차례 선고받다가 결국 장기수가 돼버린 ‘장발장’이 많았다. 이들은 처벌에 초점을 맞춘 법의 잣대, 기회 없는 수감생활, 막막한 출소, 또 다른 범죄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한국 출소자 재복역률 10년 새 최고 수준 

특별취재팀이 지난 1일 법무부에 의뢰해 전국 교도소 53곳의 운영 예산을 분석했더니 범죄자 1명의 재범을 막는 데 쓰는 교정·교화 예산은 한 해 13만430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4년 전인 2014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다. 이는 초등학생 한 달치 평균 사교육비(25만3000원)의 절반에 불과한 액수다.

범죄자 1인당 교정·교화 예산은 올해 교정본부 총예산(1조5536억원)에서 ▶집중 인성교육 ▶학과 교육 ▶심리치료 ▶체험형 문화·예술 프로그램 등의 순수 교정·교화 예산(73억5800만원)을 따로 떼낸 뒤 현재 재소자 수(5만4785명)로 나눠 산출했다. 총예산에서 교정·교화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47%였다.

교도소의 부실한 교정 실태는 이미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출소자 재복역률은 24.7%를 기록했다. 출소자 4명 중 1명이 3년 안에 다시 범죄를 짓고 재수감된다는 의미다. 지난 10년 새 최고 수준이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이 정도 예산으로 재소자를 교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재소자들의 과밀·혼거 수용이 일상화돼 교도소가 ‘크라임 스쿨(범죄 학교)’이 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 안 된 범죄자가 출소하면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해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력 코리아

10년 뒤의 한국의 매력적인 모습을 상정하고 국내외 현장 취재를 통해 실행 방안까지 제시해 정책을 변화시키려는 프로젝트. 중앙일보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인 ‘리셋 코리아’의 18개 분과 200여 명의 전문가들이 논의를 통해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보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국가의 정책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한번 취재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지속적으로 취재·보도할 예정이다.

◆ 특별취재팀=윤호진·윤정민·하준호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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