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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서 ‘방치’된 그들 … 출소해도 5명 중 2명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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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코리아 │ 2018 교도소 실태 보고서 ①

‘절도 전과 7범’ 김석원(39·가명)씨의 삶은 불행했다. 손을 뻗어도 붙잡을 기회의 끈은 많지 않았다. 처벌에 초점을 맞춘 법의 잣대는 가혹했다. 수감 생활 중에 새 삶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출소 때만 되면 도리어 막막했다. 또 다른 범죄의 유혹이 그를 옥죄었다. 결국 그에겐 ‘생계형 절도 누범’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교정 사각지대 놓인 단기 수형자 #음식도둑, 빈집털이 등 생계형 많아 #교정 정책은 강력범·장기수 집중 #제대로 된 직업훈련도 못 받아 #“작업장려금 1만원 쥐고 출소” #생활고에 다시 절도, 가중처벌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봤다. 네살 때 부모를 잃고 강원도 홍천의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중퇴(2학년)한 뒤엔 서울 신당동에 있는 봉제공장 숙소에서 먹고 자며 3년을 보냈다. 공장이 문을 닫으며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집도, 직업도 없던 그때 나쁜 마음이 싹텄다. 낯익은 주택가를 방황하다 빈집에 들어갔다. 물건 하나를 훔쳐 나왔다. 2만원이 든 돼지저금통. 법은 냉정했다. 첫 범죄에 첫 구속. 액수가 작고 미수에 그쳤지만 가족과 집이 없는 게 문제였다. 전과자 낙인은 그렇게 찍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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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다시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월 급여 30만~40만원에 숙소를 제공하는 공장이었다. 1년쯤 지나 일감이 끊겼다. 배를 곯다 여관 주인 지갑에서 10만원짜리 수표 2장을 훔쳤다. 두 번째 죗값은 징역 10월. 이번엔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다. 교도관이 인적 사항 몇 가지를 묻고는 서류철에 노끈 끼우는 교도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10여 분 만에 방이 배정됐는데 9명이 쓰는 혼거방이었다. 낮엔 작업, 밤엔 몸을 옆으로 뉘어 칼잠 자기를 반복했다. 교정·교화 교육은 없었다. 형기가 짧아 직업훈련을 신청할 기회도 없었다.

출소 날, 홀로 철문을 나선 그의 손엔 작업장려금 1만2000원이 쥐어졌다. 범죄의 유혹을 떨쳐내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친구의 도움으로 함께 자취 생활을 하며 4년을 손 씻고 지냈다. 김씨는 “처음으로 집과 가족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가 입대하면서 그의 삶은 다시 뒤틀렸다. 공장 숙소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또 빈집에 들어가 20만원을 훔쳤다.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됐다. 수감생활은 다를 게 없었다. 배우고 싶었던 목공 교육은 신청 시점과 잔여 형기가 맞지 않았다. 전과 3범인 탓에 교도작업 기회도 없었다. ‘준비 없는’ 출소는 5년 전과 같았다. 절도와 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네 번째 ‘감방 생활’ 때 배운 페인트칠(건축도장)은 사회에선 쓸모 없었다. 전과 6범일 때(2013년) 접한 인성교육도 범죄의 고리를 끊어 주지 못했다. 그는 이제 출소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갈 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전국 교도소 53곳에는 김씨 같은 수감자가 적지 않다. 2012년 이후 1년 미만 징역형을 선고받은 단기 수감자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절도 범죄자가 36.7%로 가장 많다. 절도는 모든 범죄 중 재복역률(40%)이 가장 높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대법원 판결문 열람서비스에서 ‘동종전과’ ‘상습’ ‘누범’ 등의 키워드로 검색한 1심 판결문 사례 30건 중 29건이 절도 누범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해 주차된 화물차에서 물건을 훔쳐 11번째 징역(1년 선고, 총 복역기간 9년)을 살게 된 유모(44)씨의 판결문엔 ‘글을 잘 알지 못하는 농아로 장애신청 수당조차 못하고, 가족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조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교도소의 교정·교화 정책이 강력범죄자와 장기수에 집중돼 있어 단기수는 사실상 교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형기별 차이는 뚜렷하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징역 1년 미만의 단기 수형자는 7%만이 인성교육을 받았다. 교도작업 참여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반면 징역 1년 이상 수형자는 이 비율이 각각 33%, 66%에 달했다. 직업훈련도 마찬가지다.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짧은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교도소에 들어가선 방치 상태가 된다. 교도소에서도 새 삶에 대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력 코리아

10년 뒤의 한국의 매력적인 모습을 상정하고 국내외 현장 취재를 통해 실행 방안까지 제시해 정책을 변화시키려는 프로젝트. 중앙일보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인 ‘리셋 코리아’의 18개 분과 200여 명의 전문가들이 논의를 통해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보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국가의 정책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한번 취재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지속적으로 취재·보도할 예정이다.

◆ 특별취재팀=윤호진·윤정민·하준호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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