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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쇄 매체의 디지털 전환, 성공 제1조건은 프리미엄 콘텐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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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프랑스 톱 패션잡지 로피시엘의 이메르 CEO

1921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한 패션 잡지 '로피시엘(L'Officiel)은 보그·엘르 등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지 중 하나로 꼽힌다. 창간 97주년을 맞은 이 잡지는 현재 프랑스·이탈리아·중국 등 32개국에서 발간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성 패션 잡지 '로피시엘 옴므'가 매월 라이선스 형식으로 발간된다.

최근 로피시엘을 비롯한 패션 잡지 업계의 가장 큰 화두도 '디지털 전환'이다. 디지털·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종이 잡지가 주요 사업 기반이었던 패션 잡지의 수익 모델에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패션 화보·기사 등을 실시간으로 소비하는 독자들은 더는 서점에 가서 잡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활자보다는 영상에 대한 수요·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잡지를 비롯한 인쇄 매체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로피시엘·로피시엘 옴므 등을 발간하는 프랑스 잘루 미디어 그룹은 이런 디지털 전환에 대한 고민을 비교적 일찍부터 시작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여전히 구독료 등 인쇄 매체에서 수익을 의존하는 전통 매체들과 달리 이 회사가 잡지·디지털·콘텐트 등에서 비교적 균형 있게 수익을 내는 이유다.

벤자민 이메르 잘루 미디어 그룹 CEO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에 대한 이해와 제대로 된 청사진이 없다면 인쇄 매체가 디지털로 체질 개선하는 데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 잘루 미디어 그룹]

벤자민 이메르 잘루 미디어 그룹 CEO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에 대한 이해와 제대로 된 청사진이 없다면 인쇄 매체가 디지털로 체질 개선하는 데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 잘루 미디어 그룹]

스몰 콘텐트는 트래픽에만 도움돼

잘루 미디어 그룹을 이끄는 벤자민 이메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려면 경쟁 매체를 참고할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랑 구글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오늘날 왜 잘나가는지에 대한 이해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외할아버지(조지 잘루)와 어머니(마리 호세 잘루)에 이어 2008년부터 회사를 이끄는 이메르는 로피시엘이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1년에 디지털 전환 작업을 끝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디지털에 대한 이해와 제대로 된 청사진이 없다면 인쇄 매체가 디지털로 체질 개선하는 데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메르는 이번 방한 기간 삼성전자·네이버 등 여러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여러 디지털 플랫폼 기업 등을 거친 마리아 시실리아가 2015년부터 이 회사의 디지털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고의 결과물 내려면 협업은 필수

"디지털은 CEO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디지털로 전환할 때가 됐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이 디지털로 바뀌지도 않는다. 전통 매체에 몸담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 공들인 일이 '베스트 디지털 매니저'를 모셔오는 일이었다. 나는 잡지가 아닌 다른 필드 경험이 많은 임직원들의 제안을 특히 귀 기울여 듣고 많은 영감을 받는다."

'로컬 콘텐트의 글로벌화'도 잘루 미디어 그룹의 주요 전략 중 하나다. 회사는 최근 한국을 비롯해 미국·이탈리아·멕시코 등 전 세계 여러 20여 개국에 특화된 '로피시엘 닷컴' 사이트를 구축하고 있다.

"진화한 IT 기술 덕을 많이 본다. 멕시코에서 지금 올라온 기사를 실시간으로 다른 국가에도 번역해 올릴 수 있다. 한국의 전도유망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를 인터뷰해서 20개국에 내보낸다면 얼마나 효과적이겠나.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에디터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로피시엘 닷컴'에서는 전세계 20여개국 에디터들이 생산하는 콘텐트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로피시엘 닷컴 캡처]

'로피시엘 닷컴'에서는 전세계 20여개국 에디터들이 생산하는 콘텐트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로피시엘 닷컴 캡처]

종이 잡지를 보던 독자들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모셔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로피시엘'이 만드는 콘텐트를 소비하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팔로우하고 ▶각종 오프라인 이벤트까지 참석하는 고객을 합치면 전 세계적으로 3000만명 정도 된다고 회사는 추산하고 있다. 이메르는 "나는 손에 잡히는 잡지도 여전히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인쇄물은 이제 디지털을 위한 마케팅 도구의 일환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진짜 프리미엄 콘텐트를 만든다면 그걸 얼마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인쇄 매체와 디지털 콘텐트를 어떻게 잘 연결할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메르는 "매일 생산하는 데일리 스몰 콘텐트에만 집중하면 트래픽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프리미엄 콘텐트가 나올 수 없다"며 "우리가 갈수록 ▶다큐멘터리 ▶유명 스타와 작가가 참여하는 화보·패션쇼 ▶저명인사의 인터뷰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잘루 미디어 그룹은 로피시엘 잡지·디지털 콘텐트가 소개하는 각종 제품·서비스 등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로피시엘 스토어'도 런칭하는 등 e커머스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사진 잘루 미디어 그룹]

잘루 미디어 그룹은 로피시엘 잡지·디지털 콘텐트가 소개하는 각종 제품·서비스 등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로피시엘 스토어'도 런칭하는 등 e커머스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사진 잘루 미디어 그룹]

그는 종이 잡지와 디지털 콘텐트부터 시작해 각종 이벤트, e커머스 사업까지 엮는 생태계를 구상 중이다. 내년에는 로피시엘 잡지·디지털 콘텐트가 소개하는 각종 제품·서비스 등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로피시엘 스토어'도 런칭할 계획이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은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 자기 브랜드로 독자·소비자들에게 직접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넷플릭스도 브랜디드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다. 우리가 벤치마킹하고 손잡아야 할 곳이 이렇게 많다. 나는 한 번도 전통 인쇄 매체를 참고해 본 적이 없다."

네이버·삼성전자와 합작사업 타진

이메르는 방한 기간 삼성전자·네이버·MCM 등 국내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여러 사업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삼성과는 이미 여러 차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로피시엘'은 2016년 창간 95주년 기념 특집호에서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잡지 커버에 넣었다. 화보 속 모델들은 갤럭시를 들고 셀카를 찍기도 했다. 이 사진들을 한데 모아 전시회도 개최했다. '브랜디드 콘텐트'를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례다. 그는 네이버에 대해서도 "검색 엔진을 넘어선 훌륭한 콘텐트 제작자 겸 공급자라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로피시엘'은 창간 95주년 기념 특별호를 삼성전자와 함께 협업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화보를 촬영하고, 모델들이 갤럭시를 들고 있는 모습이 화보에 들어가기도 했다. [사진 로피시엘]

'로피시엘'은 창간 95주년 기념 특별호를 삼성전자와 함께 협업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화보를 촬영하고, 모델들이 갤럭시를 들고 있는 모습이 화보에 들어가기도 했다. [사진 로피시엘]

그는 "기술·사업·콘텐트 역량 등을 잘 조합해 최고의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해선 삼성·네이버 등과 같은 최고의 회사들과 협업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메르는 "콘텐트는 산소 같은 것인데 왜 독자들에게 돈을 받으려고 하냐"며 "다들 유료화 전략, 구독 모델 등을 얘기하지만 기업들과 협업 전략을 잘 짜면 다른 발상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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