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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 끊기고 제자 없고…채화칠기 장인의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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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4)

1964년 문화재의 보존·관리·활용에 대해 자문하는 문화재위원회가 설립됐다. 설립 근거는 1962년 제정·공포된 문화재보호법으로, 이 법에 따라 처음으로 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보호하는 규정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1964년부터 중요 무형문화재가 지정되기 시작했으며, 문화재 보유자는 생계비와 문화재의 전수교육비를 받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됐다.

모든 무형문화재는 사람이 계승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후계자를 양성하는 전수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철회돼 전수 지원이 중단된 분야가 있다. 바로 채화칠기 분야다.

45년째 채화칠기 한 우물 판 양유전 장인

45년째 채화칠기 한 우물 판 양유전 장인의 작업 모습. [사진 이정은]

45년째 채화칠기 한 우물 판 양유전 장인의 작업 모습. [사진 이정은]

비록 중요무형문화재는 아니지만 홀로 이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기인’의 경지에 오른 장인이 있다. 양유전 장인이다. 그는 전통기법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 자료도 수집해 연구했다.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작업하다 1964년 강원도 원주에 정착한 스승 고 김봉룡 선생님을 따라 1974년 터전을 옮긴 후로 오로지 이 채화칠기, 한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옻칠을 시작한 지 50년이 지났고, 채화칠기에 매달린 지는 올해로 45년째다.

채화칠기는 옻칠에다가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낼 수 있는 안료를 혼합해 다양한 문양을 장식해 넣는 기법이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유물로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출토된 칠기 그릇이 대표적인 채화칠기 작품이다.

채화칠기 유물 사진. 1971년에 지정된 보물 제559호. 높이 9cm, [사진 삼성리움미술관]

채화칠기 유물 사진. 1971년에 지정된 보물 제559호. 높이 9cm, [사진 삼성리움미술관]

이 내면에는 붉은색의 주칠을 하고, 위쪽 중앙부에는 적색, 청색, 녹색의 3가지 색으로 비룡과 쌍수운문을 완성했다.

전통 채화는 옻칠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가장 큰 매력은 선이다. 선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선묘를 기본으로 한다. 칠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오랜 연구와 단련을 통해 완성되는 양 장인의 작품은 전통 칠화의 고풍스러운 깊이감을 주는 동시에 섬세함이 기가 막힐 정도다.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작품들은 그가 수많은 고민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 초월적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해준다.

“나는 국보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안타깝게도 나를 문화재라는 제도권에서 받아주지 않았죠. 중요무형문화재는 그 분야에 대부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중요무형문화재가 아닐지라도 마음으로 다해 보물을 만들고 있어요.”

양유전 장인의 작업실과 기록 노트. [사진 이정은]

양유전 장인의 작업실과 기록 노트. [사진 이정은]

그가 경상남도나 강원도 문화재가 되려고 했다면 이미 30년 전에 지원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문화재와 도문화재를 이중으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중요무형문화재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이 문화재 지정 제도는 어느 순간 바뀌어 버렸다.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시점에서 제도권의 성숙함이 따라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채화칠기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옻칠 공예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맥은 희미해지고 나전칠기에 밀려 역사적 뿌리마저 흔들리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2013년부터 도제 중단

양유전 장인의 작업하는 손. [사진 이정은]

양유전 장인의 작업하는 손. [사진 이정은]

“나는 더 이상 제자가 없어요. 내가 급여를 줘야 하는데 줄 수 없기 때문이죠. 비단 내 문제만은 아닐 것에요. 전수해 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2013년까지는 그래도 마지막 제자를 산속에서 작업하며 받았었죠. 5년 전까지는 도제인 제자가 있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전수자를 더는 키울 수 없었어요.

현재 나한테 배운 젊은 분들이 경기도나 전라북도 남원에 있어요. 은퇴 이후 10년 동안 취미로 가르친 사람은 사실 제자는 아니에요. 그런 분에게는 내 재능을 기부하며 도와줄 뿐이죠. 진정한 이수자를 양산하려면 지속적인 도제교육이 따라주어야만 해요.

죽을 때까지 이것만 하는 사람을 제자로 키워 전통을 이어가면 좋겠어요. 먹고 작업하고 자고 반복하고 해야 진정한 경지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도제가 아니면 해낼 수 없죠. 하지만 도제는 돈을 주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당연히 생계가 마련돼야 작업에 집중하며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능력이 안 돼요.”

장인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업한 내용을 기록한다. 무려 45년 동안이다. 이 수십 개의 기록 수첩에는 재료를 어떻게 혼합하고 비가 올 때, 맑을 때, 추울 때, 더울 때 옻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서술돼 있다고 한다.

보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

찬합 디테일컷. [사진 이정은]

찬합 디테일컷. [사진 이정은]

그래도 미래의 장인은 희망이 있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전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옻칠은 손으로만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젊은 공예가나 문화재 전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20년만 버티고 30년 후까지 고집스럽게 걸어가면 장래가 훤하게 밝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단련시켜야 해요. 그럼 반드시 내 업에 보상이 주어지고, 보물을 만들 수 있어요.”

올해로 70세인 그는 작업할 때 ‘보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보물은 21세기 유형문화재다. 작업하면서 라디오를 듣지 않으며, 사계절 내내 쉬지 않고 일만 한다. 겨울에는 눈이 오는 소리만 듣고 마치 수행을 하듯이 일을 한다. 장인에게 옻칠은 종교다.

건칠항아리(흑). [사진 이정은]

건칠항아리(흑). [사진 이정은]

장인은 손으로 느낀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한다. 맞다. 그리고 몸과 마음에 익힌 것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무엇이든 손의 감각과 경험을 그 어떤 기록도 따라갈 수 없다.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머리에만 넣는 것은 금방 잊어버린다. 종교를 가지고만 있어선 안 되고 항상 수행하고 마음을 단련시켜야 한다.

“내가 죽은 후에 작품들이 보물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소홀히 만들 수 없어요. 작품을 오래 살게 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에요.”

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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