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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정경화 “지금도 낑낑댄다, 때려치울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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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의 자택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남이 듣고 감동할 연주를 하려면 내 팔에 먼저 소름이 돋아야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서울의 자택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남이 듣고 감동할 연주를 하려면 내 팔에 먼저 소름이 돋아야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1980년과 2018년의 녹음을 비교해서 들어보라. 바이올리니스트는 같고 피아니스트만 다르다. 정경화(70)가 38년 전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와 녹음한 프랑크의 소나타, 그리고 올해 케빈 케너와 함께 한 같은 곡이다. 80년 녹음은 설명 없이 들어도 정경화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릿발이다. 소리에 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카로운 연주, 확신으로 팽팽하게 뻗어 나가는 음색이다.

바이올린 소리잡기 한평생 #33번째 앨범 내고 다음달 독주회 #낭만주의 소나타 진가 들려줄 터 #“몸에 늘 음악이 있다, 자유롭다” #지구상에 하나뿐인 스타일 연마

38년 만의 연주라 좀 느슨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젊은 시절보다 뭉툭해지지 않은 채 그는 자기주장을 밀어붙인다. 프랑스 음악잡지 디아파송의 평처럼 “40년 전보다 환하게 빛나는 소리”다. “루푸는 당시에 너무 잘 나가던 피아니스트라 활도 덜덜 떨리고 주눅이 들어 지옥에서처럼 녹음했다”던 정경화는 “지금은 내 음악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 자유롭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연주는 여전하더라는 평에 “내 목소리가 평생 어디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정경화의 자유로움은 3월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연주에서도 돋보였다. 독일의 보훔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한 그는 3악장을 독특하게 시작했다. 악보에 적힌 대로 하는 대신 뒷부분 음표를 더 짧게 만들어서 마치 절뚝거리는 것처럼 도입부를 연주했다. 오케스트라가 똑같이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리듬이었다. 정경화는 “브람스 3악장을 그렇게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지구 상에서 나 하나뿐일 것”이라며 웃었다. “옛날에는 스승들의 지시를 받고 배우면서 브람스 3악장이 헝가리식 리듬이라는 걸 배웠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도장이 딱 찍힌다.”

정경화는 1961년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 전설적인 바이올린 스승인 이반 갈라미언에게 배웠고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70년 런던 데뷔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고 빠르게 성공했다. 베를린필, 뉴욕필, 빈필, 앙드레 프레빈, 버나드 하이팅크, 게오그르 솔티,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등 정경화와 함께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이름은 곧 1970년대 이후 세계 음악계의 중요한 계보를 이룬다.

숨 가쁘게 성공하면서도 영리하게 행동했다. 화려한 협주곡부터 학구적인 소나타, 대중적인 소품, 다른 악기들과 함께 하는 실내악 곡까지 레퍼토리의 폭을 넓혔고, 그 덕에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 요청을 받았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5년 동안 무대를 떠났다가 2010년 브람스 협주곡으로 재기했고 2016년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곡을 전곡 녹음하며 복귀했다. 그는 “바이올린을 놓은 기간에 음악에 대해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젊은 시절에 내 악기 안에 늘 음악이 담겨있었다면 지금은 내 몸에 음악이 늘 담겨있다”고 했다.

2년 만에 선택한 곡이 낭만주의 소나타다. 프랑스 작곡가 포레·프랑크를 녹음해 33번째 앨범을 3월 냈고 다음 달 독주회를 연다. 올해 70세가 된 그는 “이제 음악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워진 것을 느낀다”고 했다. 강렬하고 거침없던 연주 스타일과 달리 어린 시절의 그는 내성적이었다. “어디 나서라고 하면 말도 잘 못 하고 비실비실했다. 그러다가 연주만 하면 확 살아났다. 그래서 바이올린 안 하면 못살 것 같았다.” 그리고 착한 학생이었다. “그 젊고 쌩쌩할 때 노장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하는데 얼마나 느리고 무겁게 하는지 답답했지만 혼이 날까 무서워서 그대로 했다.”

수십 년 만에 브람스 협주곡도 ‘지구 상에 하나뿐인’ 스타일로 해버리는 자유를 얻었다. 물론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독주회를 앞둔 정경화는 “요즘 뱅글뱅글 돌며 산다”고 말했다. “머릿속에는 온종일 음악 생각이 난다. 그러다가 바이올린으로 소리를 딱 내보면 이게 아니다. 때려치울까 생각도 해보고 하나님에게 기도도 해보고, 강아지들한테 내가 할 수 있을지 물어보고 그러다 용기를 내서 또 소리를 내보면 이건 뭐 완전히 이상한….”

그는 이게 “손에 꽁다리를 딱 잡기까지의 과정”이라고 했다. “음표를 연주 못 하는 게 아니고 소리를 딱 잡아야 한다. 뱅뱅 돌고 낑낑대다가 소리가 잡히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만나느라 새벽 2~3시까지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악기를 잡아보곤 한다.”

녹음을 마치고 음반까지 나온 곡을 다시 연습하면서 이토록 고전하는 건 자유롭기 위해서다. “옛날에 갈라미언 선생님이 왜 약한 새끼손가락을 꼭 쓰도록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무대에서는 셋째나 넷째 손가락으로 연주해도 되지만 새끼손가락까지 훈련해놨다는 자신감 때문에 실제 연주에서 마음 놓고 할 수 있다. 있는 준비 없는 준비를 모두 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

손 부상 이후 악기를 바꿨던 정경화는 이번 독주회에서 젊은 시절 쓰던 바이올린을 다시 꺼내 든다. 과르니에리 델 제수다. 음반 녹음은 크기가 조금 작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했지만 더 무겁고 투박한 소리를 내는 과르니에리로 돌아왔다. 손 부상이 완전히 회복됐다는 뜻이기도 하고 내고자 하는 소리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경화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 한 악기다. 그는 “과르니에리로 바꾸는 바람에 연습 때마다 고생하고 있다. 소리의 끄트러미를 잡기까지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악기를 바꿔 고생할까. 정경화의 대답은 간단했다. “쉬우면 재미없다. 한번 정한대로 똑같이 평생 하면 나는 숨을 못 쉴 것 같다.” 6월 3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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