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현대차의 주인은 누구일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9면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회사의 진짜 주인은 나야 나.”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근 2달간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이 사태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해 관계자들이 각자 자신만이 지배구조 개편에 찬성 혹은 반대할 권리를 가진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재계에서 통상 ‘오너십(ownership·소유권)’은 최대 주주가 사내에 구축한 지배력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일가를 ‘오너’라고 부른다.

하지만 의결권 자문사 입장을 전하던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 생각은 달랐다. 금융투자업계는 “지분율을 많이 확보한 곳이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모비스는 외국인 투자자 지분(47.71%)이 현대차그룹 우호지분(30.17%)을 초과한다.

현대차 노동조합도 비슷하다.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자 현대차 노조는 “회사의 주인인 노동자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반대를 외쳤다.

이들의 이른바 ‘주인의식’은 모두 이론적 근거가 있다.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경영자는 그냥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다. 반대로 수탁인 이론에 따르면 경영자는 위탁자(주주) 의사와 무관하게 재량껏 주요 의사를 결정할 권한을 확보한 주인이다. 또 이해관계자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도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나만 주인이다’는 인식이다. 논리는 제각각이었지만, “내가 주인인데 왜 손해 봐야 하느냐”는 주장만큼은 한결같았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은 21일 지배구조 개편을 연기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라는 정부 압력은 계속되고 있고, 경쟁사는 미래차 연구개발(R&D)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주인들’ 때문에 현대차는 태엽을 거꾸로 감았다.

기업은 돈만 있다고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경영상 판단이나 일손만 갖고 경영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가 주인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공유해야 한다. ‘너도 주인’이라고 인정하고 함께 논의할 때 지배구조 개편의 실마리는 풀릴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기업이 여러 명의 시어머니를 갖는 구조인 건 특정 일방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어서다. 잘나서가 아니라 부족해서 권한을 서로에게 위임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주인들’에게 유리한 개편안은 튀어나올 수 있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