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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합법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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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심재우
심재우 기자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연고를 둔 북미 아이스하키리그의 신생구단 골든나이츠가 첫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네바다주의 스포츠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들 못지않게 골든나이츠의 선전에 울고 웃는 이들이 또 있었다. 스포츠 도박사들이다.

영국에서는 윌리엄힐 등 도박업체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1992년에 제정된 ‘프로·아마추어 스포츠보호법(PASPA)’에 따라 네바다·델라웨어·몬태나·오리건 4개 주를 제외하고는 스포츠 도박이 금지된 상태였다. 스포츠 도박장을 운영해 온 라스베이거스시는 그동안 승부조작을 우려해 프로팀 유치를 꺼려 왔는데, 골든나이츠의 흥행몰이로 뜻하지 않게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이득을 맛보고 있다.

지난 14일 미 대법원이 스포츠 도박을 불법으로 규정한 연방법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함에 따라 스포츠 도박 산업이 미 전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뉴저지주는 미 동부의 대표적인 카지노 도시 애틀랜틱시티에 스포츠 도박을 허용해 달라며 수년간 법정 다툼까지 벌여왔다. 현재 4개 주에서 연간 5000억원의 스포츠 베팅이 이뤄졌는데, 합법화할 경우 160조원으로 추정되는 스포츠 도박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 경제적 효과를 노리며 음지에서 양지로 진출하고 있는 또 다른 사례가 마리화나다. 올해 초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캘리포니아주는 기호용 마리화나 시장을 연간 7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하고, 매년 1조원씩 주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매사추세츠·콜로라도 등 9개 주와 워싱턴DC가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뉴욕주도 고민이다. 합법화를 선언한 여러 주가 마리화나 수요를 쓸어담고 있는 와중에 불법으로 단속해 봤자 실익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뉴욕 경찰도 마리화나 합법화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뉴욕시 경찰이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자들을 체포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16일에는 뉴욕 지검도 마리화나 관련 범죄를 더 이상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마리화나 관련 체포가 흑인과 히스패닉에 집중되면서 불평등 논란을 야기해 왔고, 불필요한 체포에 드는 인력과 비용을 실질적인 치안 유지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것이다. 합법화를 통한 세수 확대는 교육 예산 증액이나 공무원 연금 고갈 문제 해소 등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불법에서 합법의 영역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인식의 전환이 미국 각 주에서 실험 중이다. 나름 합리적인 잣대가 눈에 띈다.

심재우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