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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팽팽한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29일 누가 웃을까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앞. [중앙포토]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앞. [중앙포토]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을 두고 주요 이해관계자 의견이 계속 엇갈리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의 첫 번째 절차인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일부 사업 분할·합병을 두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17일 ‘개편 반대’를 권고하자, 키움자산운용은 18일 ‘개편안에 찬성 의견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6일에도 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같은 사안에 반대를 권고하자 트러스톤자산운용이 17일 ‘찬성 하겠다’고 맞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주요 주주에게 의결권 찬·반 여부를 '조언'하는 자문사라면, 트러스톤자산운용·키움자산운용은 현대차그룹의 주식을 보유한 주요 주주다. 두 자산운용사는 도합 현대모비스 주식 22만6027주(0.23%)와 현대글로비스 주식 19만8978주(0.53%)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표면적으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반대를 권고한 이유는 분할·합병의 형태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오는 29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개편안이 통과할 경우 모듈·AS부품사업 중 국내부문만 현대글로비스에 이관한다. 해외 모듈·AS부품사업은 현대모비스에 그대로 남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똑같은 사업부문을 국내·외로 쪼개버리면 역량이 분산한다는 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국내 모듈·AS사업부문과 현대글로비스의 물류사업은 속성상 비슷한 부분이 있다”며 “같은 기업이 운영할 경우 시너지가 크다”고 맞선다. 예컨대 현대모비스는 국내 5개 지역에 물류센터를 설치하고 있고, 현대글로비스도 10개 지역에서 물류센터를 운영 중인데, 상당 지역이 겹친다는 것이다. 두 사업을 현대글로비스가 영위하면 물류센터를 통합운영하면서 고정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다.

현대차 지배구조 변화. [중앙포토]

현대차 지배구조 변화. [중앙포토]

대신지배구조연구소도 절차상 문제를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현대모비스의 모듈·AS사업부문을 당장 분할해서 현대글로비스에 이관하기 보다, 일단 이 사업부문을 주식시장에 상장한 다음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상장사인 현대모비스 시장가치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상장부터 해서 정확한 시장가치를 확인하자는 의도다.

하지만 이럴 경우 물리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장기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려면 통상 대표주관사를 선정한 이후에도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3월 말까지 지배구조 개편의 밑그림을 그리라’고 제시했던 요구도 사실상 맞추기 어려워진다.

김영선 현대글로비스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현대모비스의 모듈·AS사업부문을 합병하면 현대글로비스는 부품제조→조달물류→조립→운송→완성차제조→검사→탁송→애프터서비스로 이어지는 자동차 산업 공급망 사슬에서 부품·완성차 제조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일괄적으로 지원한다”며 “이렇게 되면 중복투자를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팽팽히 맞서는 찬반 논리가 서로를 설득하기 어려운 건 양측이 서로 속내를 숨기면서 명분만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개편안 반대의 이유로 “서운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 재벌 기업 오너 일가가 승계하면 기관투자자는 항상 결과적으로 두둑한 돈을 챙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간 한국 주요 대기업은 승계 작업을 위해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지주사로 분할하는 기업은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이 주식에 투자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이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렸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주들이 받을 수 있었던 돈이 세금 형태로 정부로 넘어갔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이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돈을 챙겨달라는 주장을 내세울 명분이 부족해 분할·합병의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2018 베이징 모터쇼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신차 발표회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8 베이징 모터쇼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신차 발표회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명분론을 내세우는 건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이유로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를 앞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끝나면 현대차그룹은 현행 4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모두 사라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향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과론이지만 사실상 일부 승계 작업을 진행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밝히고 있다.

승부는 오는 29일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날 현대모비스가 특별결의사항인 일부 사업부문 분할 안건을 통과하려면 의결권 있는 지분 중 3분의 1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30.17%의 우호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외국인 주주가 48.57%를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자·소액주주가 나머지 지분(11.44%)을 들고 있다. 이날 개편안이 부결하면 국내 대규모 재벌기업에서 비(非)대주주가 지배구조 개편을 저지한 최초의 사례로 남는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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