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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뮤지컬은 하고 나면 특별해져" 어린이 뮤지컬 극단 '끼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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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용 소품 가발을 착용한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홍선주 대표와 함께 고양이 흉내를 내고 있다.

뮤지컬용 소품 가발을 착용한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홍선주 대표와 함께 고양이 흉내를 내고 있다.

"뮤지컬은 특별한 아이가 하는 게 아니라 하고 나서 특별해지는 거예요."

동작 구성, 소품 준비도 척척…어린이들이 직접 나서 즐겁게 완성하는 뮤지컬 무대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초·중학생 아이들을 모아 1년에 두 번 극을 올리는 어린이 뮤지컬 극단이 있습니다. 지난 2011년 4월 창단된 부산 유일의 어린이 극단 '끼리'예요. 뮤지컬학을 전공하고 타 극단에서 활동했던 홍선주 배우가 대표를 맡아, '모해? 모해!' '빵구 오케스트라' '생각의 숲' '꿈도둑 아저씨' 등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왔습니다. 오는 6월엔 200석 규모의 소향아트홀 소극장에서 새로운 뮤지컬 '캣츠'를 무대에 올린다는데요. 학예회에서 뮤지컬을 했을 정도로 공연에 관심이 많은 홍아랑 학생기자가 취재에 나섰습니다.

공연 연습에 몰두하는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

공연 연습에 몰두하는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

끼리 연습실은 부산 수영구 연수로의 한 건물 지하 1층에 있습니다. 방음벽으로 둘러싼 공간엔 음향을 위한 컴퓨터를 비롯해 소품·의자가 놓였고, 어린이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도 있죠. 오전반(10시~1시)·오후반(3~6시) 각 20명, 총 40명이 배우로 활동하고, 안무가·선생님 등이 함께하죠. 학생기자가 찾은 날엔 얼마 남지 않은 공연을 완벽히 하기 위해 어린이 배우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어요.

극단 이름은 복수성을 가진 명사 뒤에 붙어 어떤 부류들이 함께한다는 뜻을 가진 접미사 '끼리'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디에 붙어도 유대감을 표현할 수 있어 골랐다는군요. 또, 코끼리의 '끼리'에서 따왔는데요. 코끼리는 수십 마리가 무리 생활을 하고, 구성원은 평생을 함께합니다. 서로를 보호하는 행동도 특출나죠. 아름다운 단체생활과 유대감, 서로를 돕는 마음을 닮자는 포부죠. "뮤지컬 극단을 꾸린 건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남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몸을 쓰는 춤·노래·연기가 분명 도움될 거라는 확신 덕분이었죠." 홍 대표의 말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처음 갔던 소중 학생기자도 친구들 도움을 받아 금방 공연에 녹아들었죠.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이민서 어린이 배우에게 뮤지컬에 나오는 동작을 배우고 있다.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이민서 어린이 배우에게 뮤지컬에 나오는 동작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가진 개성과 재능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자라면서 발견하는 데 누군가와 어울리면서 구성원이 돼 보고 남을 돕는 경험은 크게 도움될 겁니다. 주변 친구가 못하면 돕고 내가 못하면 도움받는 경험은 대들보예요." 끼리는 해마다 각각 6~7월, 11~12월께 오디션을 실시한 후 5개월을 연습해 공연을 올리는데요. 이날 만난 어린이 배우들은 14기였습니다. 친구 따라 왔다가 친구보다 오래 남았다는 이준영(부산 동현중 1)군은 지난 3년간 '모해? 모해!' '빵구 오케스트라' '생각의 숲' '꿈도둑 아저씨' 공연에 섰죠. "1년에 두 번씩은 공연에 올랐던 거예요. 이번 작품은 벌써 여섯 번째입니다. 장래희망 같은 건 아직 없어요. 그냥 하는 거죠."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과 홍아랑 학생기자(가운데 보라색)가 '서곡'의 마지막 장면 포즈를 취했다.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과 홍아랑 학생기자(가운데 보라색)가 '서곡'의 마지막 장면 포즈를 취했다.

준영이는 "대본 외우는 걸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냥 그 상황을 생각해 보고 인물에 대입해 외우면 도움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주변을 옹기종기 둘러싼 동료 배우들은 "멋진 척 한다!"며 꺄르르 웃었죠. 농담을 주고받던 시간도 잠시, 연습을 시작했어요. 먼저 서곡을 하기 위해 어린이 배우들이 양쪽으로 나눠 섰습니다. 음악이 시작되자 8살 막내 김민경·맹시후 배우가 먼저 나오고, 뒤를 이어 각각 다리찢기·스트레칭·제자리 돌기·공중돌기를 하며 등장했죠.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홍선주 대표에게 극에 꼭 필요한 고양이 기본 동작을 배우고 있다.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홍선주 대표에게 극에 꼭 필요한 고양이 기본 동작을 배우고 있다.

고양이가 된 듯 손은 잔뜩 웅크렸고요. 음악에 맞춰 공중을 긁기도 하고 발을 마구 구르며 옆 사람을 껴안기도 했어요. 마지막엔 "야옹!" 하고 앞을 보며 절도 있는 동작으로 끝냈죠. 수첩을 들고 취재하던 아랑이도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 홍 대표가 주요 동작을 가르쳤죠. "하늘을 보고 손을 살포시 올리세요. 손끝은 고양이가 된 듯 사뿐사뿐 굴려봐요" 설명을 따라 움직이자 한 마리 고양이가 된 듯 극에 어우러졌어요. 동갑 친구 배서윤(부산 대현초 4) 배우가 아랑이의 팔을 잡아끌고 무대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갔죠. "하늘을 긁는 거야. 허우적허우적""자, 이제 야옹하면 돼" "야옹!"

엔딩 장면 포즈를 취한 배서윤 어린이 배우(왼쪽)와 홍아랑 학생기자.

엔딩 장면 포즈를 취한 배서윤 어린이 배우(왼쪽)와 홍아랑 학생기자.

자, 이번엔 무도회장에 가볼까요. 아랑이는 일단 지켜본 후 따라 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이 “1년에 한 번 만나지, 야옹” 하자 배우들은 금세 장면을 알아차리고 한데 모였어요. 여러 명이 짝지어 곳곳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작은 탁자 뒤에 숨었다가 양손을 앞으로 뻗고, 탁자에 올라가 멋진 자세를 취하기도 했죠. 배우들은 한 소절씩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기교 없는 맑은 목소리들이 연습실을 채우며 “할 수 있어” 구절까지 다 함께 마무리했죠.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이 얼마 남지 않은 공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무대 곳곳에 흩어져 있던 배우들이 가운데 모여 노래하는 장면이다.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이 얼마 남지 않은 공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무대 곳곳에 흩어져 있던 배우들이 가운데 모여 노래하는 장면이다.

각자 뮤지컬 배우처럼 발성 연습을 한 뒤 본격적으로 극연습에 들어갔는데요. “인간들은 멍청하니까!” “다시 시작” 선생님은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어린이 배우들을 지도했죠. “제일 하면 안 되는 것은 입으로만 연기하는 거예요” 섬세한 표정 연기와 대사에 어울리는 행동도 익혀야 합니다. "배고프면 어떻게 배고프지?" "먹을 땐 어떨까?" 배우들은 금방 새로운 동작을 구현했죠. 대사를 틀렸을 경우를 대비한 연습도 있었고, 즐거우면 어떻게 즐거운지, 슬프면 얼마나 슬픈지 어린이 배우들이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는 과정이었습니다.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극의 한 장면을 위해 다리 찢기 연습을 하고 있다. 옆에서 이민서 배우가 돕고 있다. 홍 학생기자가 처음 하는 동작을 해내자 끼리 극단 배우들은 박수치며 응원했다.

홍아랑 학생기자(왼쪽)가 극의 한 장면을 위해 다리 찢기 연습을 하고 있다. 옆에서 이민서 배우가 돕고 있다. 홍 학생기자가 처음 하는 동작을 해내자 끼리 극단 배우들은 박수치며 응원했다.

대사 검사 시간엔 누구 하나가 틀리면 다 같이 앉았다 일어났다를 2회 실시했어요. 깔깔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정신을(앉으며) 차리자(일어서며)” 하고는 또 뭐가 그리 웃긴지 웃음보가 터졌죠. 안무 선생님이 “너넨 벌 서는 거 같지가 않아”라고 농담하자 또 여기저기서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어요. 보다 못한 열네 살 민준이가 “야 우리 좀 잘해봐. 빨리 서봐”라고 동료 배우들을 다독였죠. 귀여운 모습에 이번엔 선생님들이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은 대본집을 펴고 삼삼오오 모여 서로 대사를 확인했어요.

홍아랑 학생기자가 극의 기본 자세인 고양이 손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홍아랑 학생기자가 극의 기본 자세인 고양이 손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채무성(부산 좌산초 5)·문효인(부산 안남초 4)·주진혁·김민준(부산 동현중 1) 배우가 각자 아랑이에게 대본 외우는 요령을 전했습니다. "전체를 읽어요. 외워질 때까지 계속 읽는 거예요.""월화수목은 쉬고 금요일에 집중해서 외워요""대본 받으면 역할이 정해지잖아요. 그 주위 것만 보고 앞뒤로 어떤 내용이 있나 봐요.""거의 다 외웠는데 배운 지 얼마 안 된 것만 몰라요. 얼른 외워야죠." 친구들의 대본엔 자기 역할을 형광펜으로 표시하거나 연필로 어떻게 행동할지 적어둔 흔적이 빼곡했어요.

홍 대표는 "아이들이 이렇게 연습을 잘 해내고 공연까지 마치고 나면 그만한 감동이 없죠"라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ADHD 진단을 받은 5학년 학생이 주인공을 맡았던 '모해? 모해!'예요. 극이 끝나고 부모님도 저도 울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극단의 정체성과도 잘 맞는 공연이었던 셈이죠.

홍아랑 학생기자(가운데 보라색)가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과 공연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홍아랑 학생기자(가운데 보라색)가 극단 '끼리' 어린이 배우들과 공연 한 장면을 연습하고 있다.

어린이 뮤지컬 극단인 만큼 끼리의 창작 뮤지컬은 대부분 아이들이 실제 겪을 법한 이야기로 구성됐어요. 어린이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통해 어린이를 위로하고 마음공부를 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모해? 모해!'는 스마트폰 게임에 빠진 주인공 푸름이가 전통놀이밖에 없는 모해마을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리죠. 게임중독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작품입니다. '빵구 오케스트라'는 특이한 방귀 소리를 가진 주인공 강봉구가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해 놀림거리에서 다른 존재가 되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첫 장면 안무는 친구들이 구성했는데 실제 교실 놀이가 나와 훨씬 살아있는 장면이 됐죠." 홍 대표 설명처럼, 끼리 극단 어린이 배우들은 직접 극에 어울릴 만한 동작이나 소품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 '캣츠'도 마찬가지죠. 극중 먹보 역할을 맡은 준영이는 커다란 숟가락을 준비했어요. "은박지로 제 키만 한 숟가락을 만들었어요. 이걸 들고 노래하면 제 캐릭터를 더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극단 '끼리'가 과거 무대에 올랐던 모습이다. (사진=홍선주 대표 제공)

극단 '끼리'가 과거 무대에 올랐던 모습이다. (사진=홍선주 대표 제공)

어린이 뮤지컬 극단 끼리 공연 '캣츠'

일시: 6월 16·17일(오전반), 23·24일(오후반) 오후 1시·4시
장소: 부산 사상구 주례로 47 뉴밀레니엄관 지하 1층 소향아트홀
관람료: 1만원
배우: 초등학생~중학교 2년생
문의: 051-759-7112

어린이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무대 소품 뒤에 숨어 있다가 노래의 진행에 따라 뛰어 나와 역동적인 동작을 선보였다.

어린이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무대 소품 뒤에 숨어 있다가 노래의 진행에 따라 뛰어 나와 역동적인 동작을 선보였다.

학생기자 취재후기

홍아랑(부산 두실초 4)
비 오는 토요일에 찾은 연습실은 어린이 단원들의 열기로 가득했어요. 운 좋게 몇 가지 안무 동작을 배울 기회를 얻었죠. 제가 끼리 극단 배우가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초1부터 중2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어울려 즐겁게 연습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한 편의 뮤지컬을 완성하기까지 배우들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서로 배려하며 어우러지는 것이 더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쉬는 시간에 아이돌 노래를 다 같이 부르거나 자유롭게 대화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뮤지컬 연습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작년 학예회 무대를 위해 두 달 동안 연습했습니다. 대사는 같이 외우고 춤 연습은 따로 했어요. 그 기억이 나서 끼리에서의 시간이 더 즐거웠습니다.

부산=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동행취재 홍아랑(부산 두실초 4) 학생기자
사진 임익순(오픈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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