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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개그 앞장 서는 개그콘서트…우리는 옛 '개콘'이 그립다

중앙일보

입력

개그콘서트의 '뷰티잉사이드'. 못 생겼다는 이유로 맞는 박휘순. [사진 KBS]

개그콘서트의 '뷰티잉사이드'. 못 생겼다는 이유로 맞는 박휘순. [사진 KBS]

“이제 산뜻한 아이템도 보이지 않고, 저질 방송의 극치를 보여주는 개그콘서트가 됐다.” 지난 13일, 지상파에서 유일하게 남은 KBS의 공개 코미디쇼 ‘개그콘서트(개콘)’ 방송이 끝난 뒤 홈페이지에 시청자가 남긴 내용이다. 놀랍지 않다. 매주 개콘이 끝난 후 홈페이지를 찾으면 이렇듯 비슷한 내용의 비판이 적혀 있는 게 일상이 됐다.

개콘은 한때 참신한 소재들로 온 가족의 일요일 저녁을 책임졌던 가족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은 가족들과는커녕 성인 어른이 혼자 참고 보기에도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 됐다. 참신하고 색다른 개그 소재는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를 외모 비하와 뜬금없는 폭력, 더럽고 가학적인 소재, 시대 흐름에 뒤처진 유머가 대신하고 있다.

발바닥 각질 먹인다고? 더러운 건 웃긴 게 아니다 

13일 방송을 다시 보자. ‘욜로민박’이란 코너에서 코미디언 김지민과 김준호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허름한 민박집의 주인으로 나온다. 이들은 돌아가며 서로에게 더러운 무언가를 먹이고, 그것에서 웃음을 유도한다. 김지민이 발바닥에 뜨던 부항을 가져다가 김준호가 고량주를 따라 마시는 식이다. 그리고는 외친다. “고량주가 아니라 꼬랑내주 아니에요?”

개그콘서트의 '욜로민박'. [사진 KBS]

개그콘서트의 '욜로민박'. [사진 KBS]

비슷한 상황은 계속 된다. 각질 제거한다며 발바닥을 박박 긁어 각질(물론 진짜 각질은 아니다)을 떼어내고, 민박집 손님은 이걸 “파마산 치즈”라며 피자에 뿌려 먹는다.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의 표정에서 웃음보다는 더러움에 대한 뜨악함이 먼저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못 생겨서 때리고, 그게 웃기다는 개콘

또 다른 코너 ‘뷰티잉사이드’는 외모 비하가 콩트의 중심에 선다. 강유미와 송병철은 커플로 등장하는데, 얼굴이 수시로 바뀐다는 설정이다. 자고 일어나면 남자 주인공의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내용을 담은 2015년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차용했다. 이날 환자로 등장한 강유미는, “사실은 얼굴이 바뀐다”는 송병철의 고백에 “사람 얼굴은 바뀌기 나름이야, 앞으로도 바뀔 거고”라고 말하며 자신이 과거에 성형수술을 한 사실을 우스꽝스럽게 소비한다. 이를 듣던 송병철도 “수술은 이제 그만”이라며 성형수술이 희화화되는 데 가담한다.

이 코너에서 송병철은 "죽을 사온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무대에서 사라지는데, 이때마다 송병철 대신 등장하는 이는 못 생기거나 뚱뚱함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개그맨들이다. 이들은 얼굴이 달라졌을 뿐 자신을 ‘송병철’이라고 주장하는데, 강유미를 이들을 향해 뺨을 후려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다.

개그콘서트의 '뷰티잉사이드' [사진 KBS]

개그콘서트의 '뷰티잉사이드' [사진 KBS]

절정은 코너 ‘내시천하’다. 이 코너에 나오는 김준호 등 개그맨들은 '내시'로 등장한다. 이들은 ‘남근’이 없는 내시라는 이유로 자신들을 여성으로 그리는데, 그 모습이 비정상적이다. 왕의 첩이 돼 "'중전'으로 들어갈 것"이라며 좋아하고, "남자들이 환장한다"며 비키니나 T팬티를 입고 나오는 식이다. 발상 자체가 유치할 뿐 아니라, 단순히 '남근'의 유무 여부로 성별을 결정짓는 그 자체로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다.

더 나아가 스스로를 (‘남근’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으로 규정한 이들은 여성을 '남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비키니나 T팬티를 입은 존재'로 격하시킨다. 시대에 뒤떨어질뿐더러, 대체 어떤 지점에서 웃어야 하는지 당최 알 수 없다. 사례를 들려면 수없이 들 수 있다. 그만큼 개콘은 가학성, 후진적 유머와 무지에서 기인한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개콘이 빈번한 노출과 가학·폭력·모욕·비하 개그 투성이의 반인권적 예능이 됐다"며 "외부 수혈을 통해 선·후배 관계에서 자유로운 역동성을 키우고 콩트식 개그만을 고집하는 데에서 벗어나는 등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의 '내시천하'. 내시로 분장한 개그맨 김준호가 "이렇게 해야 남자들이 환장한다"며 T 팬티를 입고 나왔다.[사진 KBS]

개그콘서트의 '내시천하'. 내시로 분장한 개그맨 김준호가 "이렇게 해야 남자들이 환장한다"며 T 팬티를 입고 나왔다.[사진 KBS]

이같은 지적에 으레 "코미디는 코미디로 보자"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웃기지도 않을뿐더러 잘못된 인식을 강화한다면, 그리고 그걸 만들고 퍼뜨리는 데 수신료가 들어가고 공공재가 사용된다면, "코미디일 뿐"이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얘기가 없다.

1999년부터 이어져 온 개콘은 수많은 코미디언이 자신의 재능과 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고마운 무대였고, 시청자들에게는 코미디의 참맛을 알려준 훌륭한 코미디 쇼였다. 특히 공개 코미디 쇼가 사라져 코미디언들이 설 무대 자체가 없는 요즘, 개콘은 참 기특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꿋꿋이 공개 코미디 쇼를 지키며 콘텐트 다양화에 기여하는 KBS를 보며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새삼 느낀다.

지난달 25일 개그콘서트 한 장면. 성형한 여성을 조롱하고 있다. [사진 KBS]

지난달 25일 개그콘서트 한 장면. 성형한 여성을 조롱하고 있다. [사진 KBS]

하지만 이 ‘당위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콘텐트로부터 오는 불편함을 ‘당위성’ 하나만으로 참고 볼 시청자는 이제는 없다. 유튜브 같은 1인 방송 플랫폼이 퍼지며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이다. 1인 방송에는 더 더럽고 더 가학적인 콘텐트가 범람한다. 여기에 코미디언까지 가세할 필요는 없다. 웃기는 게 직업인 코미디언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요즘이지만, 그래서 더 뼈를 깎는 각성이 필요하다. 지난해 5월 900회 특집 당시 개콘 제작진은 "19년 전처럼 모험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 모험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며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형식상 변화, 관점의 변화 등을 천천히 준비해 확 바꿔볼까 한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모험'이 실천되길 응원해본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노진호의 이나불] 시리즈

[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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