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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머리 이론 안 먹히는 집짓기, 6년 만에 겨우 끝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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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3)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편집자> 

2003년 봄 첫 삽을 뜬 후 여러 달이 흘러 10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산간의 가을은 짧고 겨울은 길기 때문이다.

우선 설계부터 확정해야 했다. 고등학교 후배라고 소개받은 젊은 사장으로부터 제시받은 기본 안에다 몇 가지 보완하고 공사비는 실비정산방식(실비+관리비)으로 정산하기로 했다.

8자의 동양철학적 의미 새긴 팔각 외형

집은 전체 단지와의 조화를 위해 아래층은 팔각 통나무집의 외형과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집 뒤편으로 4평 정도의 작은 방 2개를 달아내 2층을 얹는 방식으로 확정했다. 전체 외관의 조화를 위해 아래층엔 2중 지붕을 씌우고 2층의 외형도 8각을 유지했다. 굳이 공사하기 어렵고 돈도 더 들어가는 8각을 고집한데는 외관의 조화도 조화려니와 8자가 갖는 동양철학적 의미를 깊이 새긴 결과였다.

아래층에 달아낸 조그마한 방 2개엔 복층을 두고 2층에 침실을 배치함으로써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코자 했다. 난방 시스템은 석유 보일러를 쓰되 총 4개의 방에 개별 난방이 가능하도록 했다. 아래층 복층 2층 바닥은 전기온돌 판넬로 계획했다.

당초 통나무집이 워낙 허술하게 지어진터라 단열과 방충에 문제가 있었으므로 내벽은 완전히 털어내고 단열재로 충전한 후 OSB 합판으로 마감하려고 했다. 2층 계단은 외부 계단으로 하고 계단 밑에 기계실을 계획했다.

각 방은 개별적 취사와 숙식이 가능하도록 화장실과 주방을 완벽히 갖추기로 했다. 1층 큰방(해방)과 우측 작은방(달방)은 별도의 연결 출입문을 둬 필요 시 함께 사용할 수도 있도록 했다. 계획은 완벽해 보였고, 시공을 맡은 후배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어떤 요구도 수용할 것 같았다.

2003년 10월 7일 가을 하늘은 드높았고 꿈에도 그리던 문막 힐 타운 공사가 시작됐다.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사는 높고 푸른 가을 하늘만큼이나 상큼하게 출발했다.

완성된 산막 이층집. [사진 권대욱]

완성된 산막 이층집. [사진 권대욱]

얼마가지 않아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공사는 자꾸 늦어만 갔다. 먼저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실비정산식 공사비 산정방식이요, 둘째는 현장 감독의 문제였다.

실비정산방식의 덫  

실비정산방식으로 계약하다보니 그놈의 ‘실비’가 문제였다. 당시 너무 바빠 현장에 상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눈빛 선한 젊은이에게 나 대신 감독하고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기를 원했다. 문제는 이 젊은이(이후 안광선(眼光善) 씨라 칭하겠다)가 너무 고지식하다는 것과 현장소장 이하 일꾼들이 그의 통제를 우습게 알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현장사람 입장에서 보면 날은 추워져 가는데 일일이 영수증 챙기는 것도 그렇고, 때로는 영수증없이 하는 일도 많은데(예를 들어, 현장인건비) 안광선 씨는 증빙없는 돈은 한 푼도 지불할 수 없다 뻗댄다. 그러면 “네가 다 해먹어라”  이런 말이 오가고 안광선 씨도 “저 더이상 못하겠습니다”라고 나온다. 이러니 한편으론 현장 달래고 또 한편으론 안광선 씨를 달래느라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요 전쟁터였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이 다 나의 불찰이요 게으름 탓일진대 누구를 원망하겠나. 실비정산방식을 택한 것은 무엇 하나 마땅한 것이 없고 무엇 하나 쉬운 것 없는 산간오지 현장의 특성을 감안한 것이었다. 물건 하나 살려면 왕복 1시간이 걸리는 읍내까지 나가야하고, 혹시 배달이라도 시킬 양이면 배달 오는 업자는 예외 없이 투덜거리고 웃돈을 요구한다.

이 상황에선 정상적인 견적을 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치 못하다보니 수시로 계획이 바뀌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선 실비에 이윤을 보장해 주는 실비정산방식이 제격이라 여긴 것이다.

공사중인 산막의 모습. [사진 권대욱]

공사중인 산막의 모습. [사진 권대욱]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있는데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감독기능이 철저하고 모든 과정이 분업화돼어 있으며 거래가 투명한 외국의 사례를 강원도 산간오지에 적용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건설사 사장과 임원 20년 경력이 무슨 소용인가? 현실에 부딪혀 제 집하나 제대로 못 짓는 것을…….

이 때 느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책상머리 이론은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말이다. 댐 만들고, 도로 닦고, 학교 짓고, 아파트 짓고, 빌딩도 지었지만 다 입으로만 지은 것이다. 말로만 한 것이지 내가 직접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집짓지 말라며 떼쓰는 아랫마을 주민들  

겨우 이 문제를 수습하고 나니 이젠 아랫마을의 민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의 식수원이 인근에 있으니 정화조 있는 집은 지을 수 없다고 마구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식수원이 정화조보다 상류에 있어 오염과는 아무관계 없다 해도 막무가내요, 마을에 우물을 하나 파주겠다 해도 안된다 한다. 법률상 아무 문제가 없는 적법한 절차와 인허가를 받아 시행하는 공사도 민원 앞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장, 면장, 읍장이 동원되고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다. 현지 언론이 무슨 큰일인가 싶어 왔다가 결국 아무 일 아니구나하며 돌아간 일도 많았다. 결국 정화조 배수관을 1㎞나 묻고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혹한기 꽝꽝 얼어붙은 땅을 힘들여 파헤치고 배수관을 묻는 작업은 고통스러웠고 마음도 아팠다.

배수관 묻는 작업. [사진 권대욱]

배수관 묻는 작업. [사진 권대욱]

이래저래 공사는 늦어지고 겨울이 닥쳤다. 당초 11월 말이면 끝나리라 여겼던 공사는 12월이 돼서도 끝이 나지 않았고, 이곳저곳 하자에다 보완할 곳 투성이었다. 산중의 겨울은 빨리 오고 추위는 혹독하다. 갑자기 추워져 보일러 배관에 부동액을 넣지 않았다가 하루 아침에 꽁꽁 얼어붙은 배관을 녹이느라 갖은 고생을 다하기도 했다.

세월이 약이고, 이 또한 지나간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집은 꼴이 잡혔다. 2층집 베란다에서 아침 저녁을 맞이하니 기분이 환상이었다. 산속에 내가 원하는 집을 갖겠다는 꿈이 이뤄진 거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해 어느 눈 많이 오던 날 갑자기 그곳의 설경이 보고 싶어 승용차를 몰고 산길 오르다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갖은 고생 다하고 도착했던 집 2층에서 바라보던 황홀한 설경! 마침 그날 까치들이 집 앞 소나무에 집을 짓고 있었다. 하얀 설경과 까치집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산막 이층집에서 바라본 황홀한 설경. [사진 권대욱]

산막 이층집에서 바라본 황홀한 설경. [사진 권대욱]

다 됐다 싶었는데, 이번엔 준공검사가 발목을

이런 기쁨도 잠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집을 지으면 준공검사를 받고 등기를 해야 하는데 막상 준공검사를 하려니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경계측량상으로 우리집이 남의 땅을 20㎝ 정도 침범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자연경계만 믿고 개념 없이 공사를 한 것이었다. 나나 이곳 모든 사람이 당초 땅 경계가 우리 집 뒤 계곡인 줄 알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미리 못 챙긴 것이 한이지만 이미 집은 지어진 뒤니 허물 수도 없고 참 큰일이었다. 뿐만아니다. 정화조는 대지상에 있어야 하는데 떡하니 밭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측량을 해보고 GPS로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니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방법은 침범한 땅을 사들여 대지로 지목을 변경해야 하는데,우선 땅 주인이 팔아줄까도 문제이고 절차도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 땅의 지목이 밭이 아니고 임야로 되어 있으니 문제가 간단치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운도 따르고, 노력한 보람도 있어 땅을 편입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야 준공검사를 받고 등기도 마쳤다. 땅값을 후하게 쳐준 건 기본이고 혹시라도 팔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애태웠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땅 주인도 자기 땅인 줄 몰랐던 땅이었지만 그래도 팔아줬으니 고맙단 생각 뿐이다. 결국 2003년에 착공해 2009년에 준공했으니 집 하나 짓는 데 무려 6년의 세월이 걸렸던 셈이다.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totwkwon@amba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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