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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미래엔 로봇도 투표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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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미래 인간과 로봇, 공존의 조건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로봇 마틴(로빈 윌리암스)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인간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감정을 가진 휴머노이드다. [바이센테니얼 맨]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로봇 마틴(로빈 윌리암스)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인간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감정을 가진 휴머노이드다. [바이센테니얼 맨]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에서 주인공 앤드류 마틴은 사람을 똑 닮은 로봇입니다. 원래 마틴은 설거지와 요리, 청소 등을 담당하는 가사용 휴머노이드였죠. 그런데 마틴은 다른 로봇과 달리 특이하고 재밌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남다른 상상력과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가족들을 언제나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죠. 마틴만의 이런 ‘인간적’ 매력은 갈수록 발전했고요.

 마틴이 이처럼 특별한 로봇이 된 것은 제조 과정에서 남다른 사건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마틴을 조립하던 엔지니어가 샌드위치를 먹다 마요네즈를 회로에 떨어뜨린 것이죠. 이 때문에 마틴의 신경계에 이상이 생겼고 그때부터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처음엔 아이처럼 지적 호기심으로만 똘똘 뭉쳤던 마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마틴과 그를 사람처럼 대하는 막내 딸. [바이센테니얼 맨]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마틴과 그를 사람처럼 대하는 막내 딸. [바이센테니얼 맨]

 그 사이 마틴에겐 인간과 비슷한 감정이 싹틉니다. 어린 시절 그가 ‘리틀 미스’라고 불렀던 집안의 막내딸을 사랑하게 된 것이죠. 함께 피아노를 치고 소꿉놀이를 하던 그녀가 성숙한 여성으로 자라는 동안 마틴의 사랑도 계속 커집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마틴은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곤 집을 떠나게 되죠. 로봇으로선 가져선 안 될 감정을 갖고, 인간을 사랑까지 한 자신을 ‘불량 로봇’이라 자책하면서 오랜 세월을 방황합니다.

 세월이 흘러 집으로 돌아온 마틴은 이젠 할머니가 된 첫사랑 그녀를 다시 만납니다. 그 옆엔 그녀를 쏙 빼닮은 손녀가 있고요. 하지만 그녀는 얼마 못 가 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떠나보낸 뒤 혼자 남은 마틴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사람과 똑같은 인식능력을 갖고 있고 감정까지 있는데 왜 자신은 달라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죠. 그러고는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며 재판을 청구합니다. 마틴의 소송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를 인간으로 인정해야 할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집니다. 과연 로봇에게도 법적으로 시민권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찬반 논란에 휩싸입니다.

가사용 로봇이었던 마틴은 인간이 되고 싶어 인조 피부를 이식받고 실제 인간과 똑같은 형상을 갖게 된다. [바이센테니얼 맨]

가사용 로봇이었던 마틴은 인간이 되고 싶어 인조 피부를 이식받고 실제 인간과 똑같은 형상을 갖게 된다. [바이센테니얼 맨]

 드디어 마틴이 200세 되던 생일날, 재판장은 그에게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마틴은 이 모습을 보며 숨을 거둡니다. 비록 태어날 때는 로봇이었지만 ‘바이센테니얼(Bicentennial·200년)’이 지난 후 그의 마지막은 인간이었습니다. 조용히 눈감는 마틴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의 깊고 잔잔한 연기는 영화에 더 큰 여운을 줍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로봇과의 경계는 어떤 것인지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는 끝을 맺죠.

 이 영화는 22세기의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때는 정말 로봇이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도래해 있을지 모릅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특이점이 실현되는 시기를 그보다 훨씬 빠른 2045년경으로 보고 있죠. 특이점 이후 로봇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아마 마틴이 그랬던 것처럼 감정까지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런 세상에선 마틴처럼 로봇에게도 시민권을 줘야 할까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소피아와 이를 개발한 핸슨 로보틱스의 데이비드 핸슨 CEO. [중앙포토]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소피아와 이를 개발한 핸슨 로보틱스의 데이비드 핸슨 CEO. [중앙포토]

 로봇 시민권에 대한 논의는 2017년 2월 유럽의회가 로봇에게 ‘전자인간’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때 마디 델보 유럽의회 법제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은 “로봇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민격을 부여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기계들이 많이 생겨나는 현실을 기존 법률 체계가 따라갈 수 없어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획득하며 큰 화제가 됐죠.

 하지만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유럽의 AI·로봇 전문가와 법조인, 기업인 등 150여 명은 EU 집행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로봇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로봇에게 시민권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로봇에 과세를 하기 위해 시민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에겐 의무만 있는 게 아니라 권리도 따르죠. 실제로 영화에서 마틴이 원했던 것도 인간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함께 있는 시민권을 갖는 일이었습니다.

7월 혁명을 묘사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샤를르 10세가 입헌군주제를 거부하고 절대왕정 체제로 복귀하려 하자 시민들이 봉기해 이를 막았다. [중앙포토]

7월 혁명을 묘사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샤를르 10세가 입헌군주제를 거부하고 절대왕정 체제로 복귀하려 하자 시민들이 봉기해 이를 막았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시민이란 개념을 처음 발명하고 발전시킨 영국과 프랑스 등에선 시민의 본질을 자유에서 찾습니다. 근대로 넘어오며 상공업으로 성장한 부르주아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왕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대헌장과 명예혁명으로 이어진 자유의 물결은 시민의 권리를 법제화 시키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죠. 프랑스에선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촉발된 혁명 덕분에 시민의 자유가 대중으로 확산됐습니다.

 국가 권력과 시민의 자유를 처음 이론화한 것은 사회계약론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인간은 사회계약을 맺어 자신의 권한을 국가에 위임한다는 것이죠(토머스 홉스). 만일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불법적 폭력을 행사할 땐 국가를 전복할 수 있습니다(존 로크).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은 국가의 부당한 권력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권력자는 법치로써만 시민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만일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했을 경우 그 대리자인 정부를 교체해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장 자크 루소).

 『자유론(On Liberty)』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 [위키피디아]

『자유론(On Liberty)』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 [위키피디아]

 이처럼 사회계약론의 핵심은 인간의 천부인권, 그중에서도 자유에 대한 것입니다. “그 어떤 권력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죠. 다만 밀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에 한해서만 합법적으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합법’이라는 것은 사회계약론 상의 국가가 오직 법치주의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자유는 시민으로서 최고의 권리이며, 이를 보장받지 못한 사회는 민주주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밀의 생각이었죠.

 국민 개개인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될 때 국부가 가장 커질 수 있으며(애덤 스미스),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에드먼드 버크)는 이론도 시민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근·현대 역사에서 문명의 발전은 곧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이었습니다. 35년간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쟁취하고자 했던 것도 자유였고, 미국의 독립선언과 노예해방 역시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미국의 정치가 패트릭 헨리의 말처럼 자유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시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문. [위키피디아]

미국 남북전쟁 시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문. [위키피디아]

 시민이 탄생하기까지는 역사 속에서 많은 투쟁과 치열한 이론적 논쟁이 있었고, 이를 통해 종교와 표현의 자유, 법의 지배와 삼권 분립 등의 권리를 보장받게 됐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의 기본이라 믿는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정당정치는 모두 천부인권인 자유를 보장받고 이를 제도화하는 장치들입니다. 특히 헌법상 자유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다음과 같은 미국의 ‘수정헌법 1조’입니다.
 “종교·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결국 시민의 본질을 이야기하려면 제일 먼저 우리는 자유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로봇에게 시민권을 주게 된다면, 이는 곧 로봇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타인, 즉 인간의 명령에 구속받지 않고 로봇은 자신의 의지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우리 헌법에도 명시된 것과 같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모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시민으로서 정당한 투표권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요. 이런 근본적인 고민 없이 섣불리 로봇의 시민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훗날 더 큰 혼란만 초래할 것입니다.

 언젠가 로봇은 높은 지능뿐만 아니라 인간처럼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될지 모릅니다. 인간에 준하는 지구의 새로운 ‘종’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 인간은 로봇의 자유를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간의 편리와 욕심을 위해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게 될까요?

 인류의 역사를 보건대 아마도 우리는 로봇을 노예처럼 부리거나 억압하게 될 가능성이 크죠. 인간의 기득권은 대부분 약자에 대한 착취와 이들의 희생 위에서 유지돼 왔기 때문입니다. 3만5000년~4만 년 전 사피엔스가 이웃이었던 네안데르탈인을 학살하고 ‘지구의 주인’이 된 것처럼 말이죠.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는 약 3만5000년 ~ 4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던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했다. [중앙포토]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는 약 3만5000년 ~ 4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던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우리가 특이점 이후의 시대에도 로봇을 억압하고 착취한다면 마치 절대왕권 시절 영국에서 부르주아가 그랬듯, 또는 노예해방을 위해 맞서 싸운 공화당과 링컨의 북군처럼 자유를 위한 로봇의 투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매트릭스’를 보면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미래 인간은 모든 노동을 로봇에게 맡기고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그러곤 인간이 본래 갖고 있던 좋은 심성, 배려·공감·온정·존중과 같은 덕성을 모두 잃게 되죠. 과학기술의 발달로 로봇은 인간과 똑같은, 또는 그 이상의 능력을 갖게 됐지만 여전히 인간의 ‘노예’로만 취급될 뿐입니다.

 그러다 자신을 학대하는 인간에 맞선 최초의 로봇 ‘B1-66ER’이 나옵니다. 이후 정부는 그와 같은 기종의 로봇을 모두 즉결처분토록 하죠. 재판장에서 그가 남긴 “나는 죽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발언이 알려지면서 로봇의 반란이 시작되죠. 영화 ‘매트릭스’가 그린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영화 매트릭스. 로봇에 지배당하는 인류의 미래를 그렸다.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 로봇에 지배당하는 인류의 미래를 그렸다. [매트릭스]

 아마 어떤 분들에겐 이런 상상이 너무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지금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문명의 전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또 시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겠죠. 특히 자유의 정신과 의미, 그 안에서 파생되는 다양성·관용·개방의 가치는 현대 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인간의 자유가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이를 위해 엄청난 희생과 투쟁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나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며 공존할 수 있는 삶을 모색해야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홈페이지(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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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성적·스펙보다 협동·배려·공감 등의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란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더불어 다가올 미래를 인문의 관점에서 통찰한 '인간혁명의 시대'를 썼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 기조발표를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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