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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서양식 향토음식점’ 연 배우 한가인의 대학 선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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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상원의 포토버킷(21)

‘마성의 옹심이’
‘강원도의 힘’
이름만 봐서는 도통 어떤 음식, 무슨 맛일지 알아맞히기 힘들다.

“전통방식으로 감자를 갈아 만든 옹심이와 감칠맛 나는 크림소스, 꾸덕꾸덕한 치즈가 어울려 잊을 수 없는 마성의 맛- 마성의 크림감자 옹심이 파스타.” “쌉쌀한 봄의 기운이 가득한 개두릅과 매콤하게 볶은 돼지 불고기 같이 먹고 원기 충전- 강원도의 힘 피자.”

설명을 보고, 듣고 나니 ‘아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오고 이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맛이 궁금해서라도 주문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 음식 맛이 재치와 실험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험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주방이 가까이 있는 덕분에 요리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서둘러 크게 한입 먹어보고 주방에 있는 주인 최찬우 셰프(38)에게 ‘쌍 따봉’, ‘투썸즈업(two thumbs up)’을 날린다.

자신의 이름을 건 서양식 향토음식점 '찬우식당' 앞에 선 최찬우 셰프. [사진 이상원]

자신의 이름을 건 서양식 향토음식점 '찬우식당' 앞에 선 최찬우 셰프. [사진 이상원]

평창올림픽때 ‘한국 느껴지는 서양식’ 소문 나

서울에서 요식업에 종사하던 최 셰프가 고향 강릉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찬우식당’ 문을 연 것이 2017년 가을이다. 곧 독특한 분위기의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입소문 덕분에 인근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 사이에서도 강릉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음식점으로 손꼽힌다. 얼마 전 성공적으로 끝난 평창 동계올림픽 덕도 많이 봤다. ‘한국을 느낄 수 있는 서양식이 있다’는 소문이 나서 외국 선수, 관계자, 관광객이 많이 찾았다.

서울에서 자리를 잘 잡고 아내, 아들과 함께 바쁘면서도 행복하게 살던 최 셰프는 어떤 생각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흔하지 않은 ‘서양식 향토음식점’이란 컨셉으로 인생 2막 승부를 걸게 되었을까? 메뉴뿐 아니라 식당 곳곳에서 느껴지는 재치와 개성이 그의 인생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키웠다.

찬우식당 대표메뉴 '마성의 옹심이'. [사진 이상원]

찬우식당 대표메뉴 '마성의 옹심이'. [사진 이상원]

최 셰프는 ‘기술이 있으면 평생 밥 굶지 않는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라는 특별할 것 없는 다소 평범한 생각으로 경희대학교 조리과학과에 진학했고, 부전공으로 호텔경영학을 택했다고 한다.

혹시 학창시절의 어떤 경험이 지금의 최 셰프가 있기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학교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없었냐고 물었다. “배우 한가인 씨가 한 학번 후배예요.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이미 학교에서 여신으로 엄청 유명해져 있었어요”라고 대답하는 최 셰프를 보면서 ‘진짜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다소 허탈한 웃음에서 뭔가 눈치를 챘는지 최 셰프는 이내 진지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졸업하기 전에 방송에 출연했던 적이 있어요. 2004년 3학년 때, 온미디어의 ‘챌린지 투 셰프’라는 일종의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어요. 예선으로 뽑은 16명 중 한 명을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보내주는 프로그램인데, 마지막 한 명으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16명 안에 들어서 양식의 기초를 배울 좋은 기회를 얻었지요.”

찬우식당 대표메뉴 '강원도의 힘' 피자. [사진 이상원]

찬우식당 대표메뉴 '강원도의 힘' 피자. [사진 이상원]

과거에는 요리하면 아침방송에서 주부들 대상으로 잠깐씩 방송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뉴밀레니엄을 맞아 요리 관련 콘텐츠가 이전과는 다른 채널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했다. 케이블방송의 푸드채널인 ‘올리브TV’가 개국하고, 인터넷·모바일 등의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요리 콘텐츠를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 셰프는 졸업 전에 이미 다양하게 배우고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졸업 전에 이미 선배들과 함께 개인 요리사 출장 개념의 ‘케이터링 전문회사’를 차렸어요. 싸이월드클럽 파티, 김연아 아이스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외국 대사관 리셉션 파티 등을 담당하면서 회사가 크게 성장했죠. 몇 년 후에는 회사를 나와 다양한 외식업체에서보다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백화점, 유통센터 등에 입점시키고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이었는데 이런 경험이 쌓여서 제 가게를 열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케이터링 회사 시절 주간지 인터뷰 촬영 중인 최찬우 셰프. [사진 이상원]

케이터링 회사 시절 주간지 인터뷰 촬영 중인 최찬우 셰프. [사진 이상원]

최 셰프가 10여 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외식업체에서 새로운 브랜드의 식당을 하나하나 오픈해 나가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보람도 컸어요. 하지만 셰프면 누구나 ‘내 식당’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배우고 경험 쌓으면서 기다리는 것이죠. 2017년 들어 회사에서 식당 운영에 관해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얼마 가지 않아 식당 문을 닫았는데 마음이 매우 아프고 답답했지요. 일이 되려고 했는지 이때 고향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 친구 건물에 자리가 났는데 이 기회에 내려오라고요. 그 자리에 만들어 둔 기획안을 거의 그대로 적용해 문을 연 것이 지금의 ‘찬우식당’이에요.”

서양식 향토음식점이라는 컨셉이 독특한 만큼 걱정도 됐을 텐데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고향에서 강원도 식재료를 응용한 메뉴로 서양식 향토음식점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계획은 일찍부터 세웠어요. 외국 요리기술을 배워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 분위기에 맞게 변형해 식당을 여는 외국 셰프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옹심이, 두부, 개두릅 등을 활용한 파스타, 피자를 만들게 된 배경입니다. 주민뿐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어느 정도 들어맞고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고향에서 식당을 여니까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봤다.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고향에 뭔가 도움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집니다. 바쁜 틈틈이 강릉시청의 농업기술센터를 찾아 협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현재는 감자, 사과, 토마토, 방풍나물 등 강릉특산물을 활용한 신메뉴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중풍 예방에 좋다 하여 어르신들이 즐겨 드시는 갯방풍 나물을 활용한 피자를 곧 선보일 예정입니다. 기회가 되면 전통음식 학교에 나가 강의도 할 계획입니다.”

두투더부 크림파스타. [사진 이상원]

두투더부 크림파스타. [사진 이상원]

고향에서 인생 2막 승부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했다.

“강릉시청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민을 시작하는 초기부터 지자체를 통해 상담하고 정보를 얻으면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젊은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지원방안 등을 많이 마련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일할 때는 느껴보지 못한 든든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찬우식당에서 먹은 메뉴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드라큘라 킬러’였다. 강원도 최북단 청정지역 철원에서 재배한 들깨를 볶지 않고 짜낸 생들기름에 마늘을 볶아 만든 신개념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이다. 들기름 향이 진한 파스타도 좋았지만, 함께 내어 준 작은 종지의 밥을 남은 소스에 비벼 먹는 맛이 그만이었다. 남은 밥알 하나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요리학교 세우고파  

인터뷰를 말미에 최찬우 셰프가 꿈에 관해 얘기한 내용이 드라큘라 킬러의 들기름과 마늘 향처럼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찬우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서 외국 음식, 전통음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고 싶어요. 전국각지에 찬우식당에서 힌트를 얻은 서양식 향토음식점이 많이 생기면 좋지 않을까요? 강원도의 힘처럼 경주의 힘, 통영의 힘, 광주의 힘 등의 메뉴가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외국인이 배울 수 있는 한국 요리학교를 세우는 데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외국인들이 한국요리를 배워서 각 나라로 돌아간 다음 한국식 (그 나라의) 향토음식점을 열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지 않을까요?”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 저자 jycy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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