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탐사] 단 1명이라도 … 엇나가는 아이들 보듬어줄 어른 필요

중앙선데이

입력 2018.05.19 01:28

업데이트 2018.05.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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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03면

소년범, 그들의 속사정

# “아빠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두 살 때 도망갔어요.” 남 얘기하듯 담담했다. “원래부터 가져본 적이 없어서 엄마·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전혀 없습니다. 굳이 가지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어요….”

‘소년범 대부’ 판사의 재판 메모
배고프고 아프고 기댈 곳 없어
그늘진 청소년들 현실 고스란히

비행 전력 세 차례 넘는 아이들
“열악한 가정환경 때문” 59.39%

우울증·분노조절장애 등 겪어
셋 중 한 명은 거리로 내몰려

청소년회복지원시설인 라파를 거쳐 지금은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예승이(19). 예승이는 할머니와 고모의 손에 길러졌다. 중학교 1학년 때 첫 사고(?)를 친 예승이는 라파에 오기 전까지 절도·폭행 등 ‘성범죄만 빼곤 다 했다’고 할 정도의 사고뭉치였다.

#지호(19·가명)는 중1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얼마 안 가 집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후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할머니와 단 둘이 남겨진 그는 중3 시절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에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술에 손을 댔고 주취 폭력으로 여덟 차례 경찰서를 들락거리다 소년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술만 마시면 화가 나고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출발점은 가정이었다. 전체 1872명의 소년범 중 절반 가까운 897명(47.9%)은 이혼·사별·가출 등으로 인한 한부모·조손 가정 등 ‘가정환경 취약 요소’가 있었다. 부모가 있더라도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거나, 가정폭력을 쓰거나, 어머니의 신체·정신상의 문제로 실질적인 보호력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의 직업으로는 무직(20.68%)이 가장 많았고 영세 자영업(19.11%), 일용직(13.37%) 순이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천 판사 메모 속 아이들은 우울증·틱·분노조절장애 등을 겪거나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아이도 많았다. 천 판사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 곤란을 겪는 아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재판을 받고 1년 이내 다시 범죄를 저지른 그룹(697명), 범죄 전력이 세 차례 이상 되는 그룹(388명)의 ‘가정환경 취약 요소’ 비율은 각각 58.8%, 59.39%로 전체 평균(47.9%)보다 높았다.

가정의 지지력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겉돌았다. ‘문제아’로 낙인찍히면 한두 차례 전학→자퇴→대안학교→자퇴 수순으로 흘러간다. 격리된 아이들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비행을 반복했다. ‘2000년생 부산 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수현이(18·가명)는 문신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났다. 수현이는 부모가 이혼했고 아버지는 범죄에 연루돼 해외로 피신했다. 문신을 본 교사가 “부모가 도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저러느냐”고 던진 말에 화가 난 수현이는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려 퇴학당했다.

가정과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전체 소년범 세 명 중 한 명(33.42%)이 가출 경험이 있었다. 돈 없고 안전망 없는 거리에서 ‘가출팸’을 형성하는 아이들은 곧 범죄에 발을 들였다. 남녀 불문 오토바이·차량털이, PC방과 편의점 현금 절도 등 재산범죄(41.3%)가 가장 많았다. 집단 폭행을 비롯한 폭력범죄(23.1%), 성범죄와 방화 등 강력 범죄(14.4%)가 뒤를 이었다.

특히 여성 청소년 314명 중 51명(16.2%)이 성매매나 성범죄 피해 경험이 있었다.

보육원(고아원) 출신인 민아(18·가명)는 사법형 그룹홈 둥지센터 등에 입소하고도 이탈을 반복했다. 지난해 이탈했을 땐 성매매 포주 일당에게 4개월간 붙잡혀 있다 도망했다. 이후 민아는 좀 더 강력한 소년보호 처분인 6호(아동복지시설 수용) 처분을 받았다. 시설 입소 전 민아는 임윤택 둥지센터장에게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꾸 사고 쳐서 죄송해요. 그런데 제가 평범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사는 게 평범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천 판사의 메모엔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소년원 선생님’ ‘경찰’ ‘판사’라고 쓴 게 많았다. 사법 단계에 접어들고서야 ‘괜찮은 어른’을 처음 만난 아이들의 피드백이었다. 이승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아이들은 인상 깊은 어른 한 명에게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며 “비행이 심화되기 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다잡아 줄 단 한 명의 어른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천 판사는 “보호처분을 받은 한 아이가 사흘간 노숙을 하며 쫄쫄 굶다가 법원에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비행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소년법상 보호처분(1~10호)은 수강명령·봉사활동 등 사회 내 처분(1~5호)과 소년원 등 시설에 유치하는 처분(6~10호)으로 나뉜다. 뒤로 갈수록 엄한 처벌이다. 이번 분석 대상자의 절반 이상(52.3%)은 재범이었고 평균 8.4개월 만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124명(12.7%)은 과거 소년원 등 엄한 처벌을 받고도 다시 비행을 저질렀다. 직전 처분에서 371명(37.9%)이 보호관찰관의 감독을 받게 돼 있었지만 재범을 막진 못했다. 비행 예방의 핵심 기제인 보호관찰이 인력 부족 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박선영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장 단계에 있는 소년범의 경우 엄벌보다 회복적·교육적 처분이 재비행률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국내외 여러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입증되고 있다”며 “무조건적 엄벌주의는 장기적·실효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떻게 취재했나
중앙SUNDAY는 ‘호통판사’ 천종호(부산지법 부장판사)가 2015년 1월~2018년 2월 부산가정법원에서 처리한 소년 보호 사건을 전수 분석했다. 천 판사가 2010년 창원지법에서 첫 소년부 판사를 맡았을 때부터 올해 2월 부산가정법원 소년부를 떠날 때까지 만난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말투, 특징을 세세하게 기록한 메모의 뒷부분이다. 종이로만 남아 있는 메모를 모두 정량화해 분석했다. 중복되고 누락된 정보를 제외하니 1872명이었다. 이들의 죄명과 재범 여부, 가정환경과 본인 특성 등이 분석의 초점이다. 천 판사의 메모에는 배고프고, 아프고, 기댈 곳 없는 소년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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