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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천종호 판사 소년부 떠난 뒤 … 회복지원시설 갈림길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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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02면

대전 여중생 집단폭행, 그 후 2년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판잣집이라도 좋다. 애들이 집이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법원 정기 인사 후 시설 활용 머뭇 #정부 지원 없고 법원 교육비 의존 #“대부분 사명감으로 빚 내 시작 #두 손 드는 시설장 여럿 나올 것”

2013년 청소년회복지원시설을 해보겠다고 찾아온 김도명 목사 부부에게 천종호(사진) 부장판사가 한 말이다. 그러나 천종호의 ‘희망’은 지금 기로에 섰다. 지난 2월 정기 법관 인사에서 법원이 보직 순환 원칙을 관철해 천 판사가 소년부를 떠나면서 그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설득해 시작한 회복지원시설의 확산 및 제도화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2010년 경남의 ‘샬롬’을 시작으로 부산·울산·대전·충남 19개소로 늘어 온 회복지원시설은 현재 비행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가정환경이 열악해 집으로 돌려보낼 경우 재비행이 예상되는 청소년들에게 사법적 처분으로 마련해 줄 수 있는 보금자리다. 비슷한 상황인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보호시설로는 ‘6호 시설’(50~100명을 동시 수용하는 아동복지시설)이 있지만 비행 청소년들은 엄격한 규율에 따라 운영되는 이곳을 ‘집’이 아닌 수용시설로 여긴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청소년쉼터도 회복지원시설과 비슷하게 대안 가정 형태로 운영되지만 이곳에서는 범죄 전력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섞이지 못하고 갈등이 빈발해 문제가 됐다. 회복지원시설의 대체재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난 2월 이후 법원은 정착기에 접어든 이 시설 운용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시설당 8~9명 선이던 보호 인원은 현재 5명 이하로 줄었다. 법원이 회복지원시설에 청소년을 보내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숙희 대전가정법원장은 “시설들의 실태를 점검하며 관망 중”이라고 말했다. 사법 정책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는 “어떤 시설에 사람을 보내고 말고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 각급 법원과 담당 판사가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회복지원시설의 운영은 법원이 보호 대상자 1인당 50만원씩 제공하는 ‘교육비’에 의존해 왔다. 1년으로 치면 1인당 600만원꼴로 유사한 대안 가정 형태로 운영되는 청소년쉼터(2482만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없었다. 2016년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으로 회복지원시설에 정부가 예산을 투입할 근거가 생겼지만 기획재정부는 2018년도 예산에 1원도 반영하지 않았다. 소년원과 6호 시설 등을 관리하는 법무부도 법원이 별도로 관장하는 회복지원시설 운영에 부정적이다. 법원이 보호 대상자를 줄이자 회복지원시설들이 근근이 유지하던 ‘규모의 경제’가 바로 깨져나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설장은 “사명감 하나로 빚으로 집을 얻어 시작한 시설이 대부분”이라며 “이 상태가 6개월만 계속돼도 두 손 드는 시설장이 여럿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신중함에도 이유는 있다. 지난 1월 충남의 한 시설에서는 보호 중인 청소년 5명이 집단 이탈했다. 모범적 운영 사례로 언급되는 부산 지역의 청소년 시설들의 경우도 이탈이나 재비행 등으로 보호 기간 중 처분이 변경되는 비율이 30~40%(누적)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년전담 판사는 “중도 이탈은 심각한 문제다. 법원에 큰 부담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시설장은 “반 이상 만기 퇴소하고 이들의 재비행률이 10% 안팎에 불과한 곳이 많다. 퇴소자 재비행률이 40%에 육박하는 소년원에 비하면 훨씬 효과적인 셈이다. 이탈 가능성을 전제로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립을 돕자는 게 설립 취지인데 이탈률을 문제 삼는 것이 문제다”고 지적했다.

논란 속에 주목받는 곳은 광주광역시다. 최근 광주시는 회복지원시설 3개소를 시립으로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사업자를 공모해 다양한 청소년 보호사업을 펼쳐 온 천주교 살레시오회를 선정했다. 첫 시설의 문을 올해 중 열 계획이다. 법률상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필요성에 공감해 시비로 사업에 나선 것이다. 광주시청 관계자는 “활용할 주택을 물색 중”이라며 “청소년쉼터와 같은 수준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취재했나

중앙SUNDAY는 ‘호통판사’ 천종호(부산지법 부장판사)가 2015년 1월~2018년 2월 부산가정법원에서 처리한 소년 보호 사건을 전수 분석했다. 천 판사가 2010년 창원지법에서 첫 소년부 판사를 맡았을 때부터 올해 2월 부산가정법원 소년부를 떠날 때까지 만난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말투, 특징을 세세하게 기록한 메모의 뒷부분이다. 종이로만 남아 있는 메모를 모두 정량화해 분석했다. 중복되고 누락된 정보를 제외하니 1872명이었다. 이들의 죄명과 재범 여부, 가정환경과 본인 특성 등이 분석의 초점이다. 천 판사의 메모에는 배고프고, 아프고, 기댈 곳 없는 소년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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