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탐사] 비행 청소년들 44% “곤란한 일 생기면 친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

중앙선데이

입력 2018.05.19 01:20

업데이트 2018.05.1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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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04면

소년범 재범 막으려면 

학교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잇따른 비행 원인에 대해 뭐라고 생각할까. 중앙SUNDAY는 울산중부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학교폭력으로 입건된 전력이 있는 청소년 34명에 대해 익명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입건 전력 34명 설문조사
“부모에게 연락한다”는 38% 그쳐
비행 원인 “친구와 어울리려” 27%
8.8%는 “힘 되어준 어른 없다”

비행을 반복하게 되는 원인을 묻는 질문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란 답변이 26.5%로 가장 많았다. 부모의 보호가 미흡한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이미 비행을 저지르고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비행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욱해서”(14.7%), “보복하기 위해서”(11.8%)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울산중부서 학교전담경찰관(SPO)인 노석윤 경장은 “청소년들은 친구들 간 연결 고리가 굉장히 강해 친구가 하는데 자기만 안 하면 집단에서 소외되거나 따돌림당할 수 있다. 또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 혼자 있을 땐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정도였던 아이가 분위기에 휩쓸리면 같이 훔치러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또래 집단을 중요시하는 특성은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연락할 사람”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도 반영됐다. 친구에게 연락한다는 응답은 44.1%로 부모에게 연락한다는 답변 38.3%(엄마에게 연락 23.5% 포함)보다 많았다. 아버지만 따로 언급한 경우는 없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A군(15)은 “친구들이 부모님보다 훨씬 편하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스트레스받는 것도 싫고, 특히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워 얘기를 꺼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묻는 질문에는 “착한 친구”라는 답이 26.5%로 가장 많았다. 화목한 가정(22.4%)과 돈(20.4%), 자기관리(12.2%)도 필요한 요소로 꼽혔다. 설문에 답한 B군(14)은 “좋지 않은 자리는 피하고 먼저 다른 애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등 나부터 고쳐나가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이 되어준 ‘어른’이 누구냐는 문항에는 76.4%가 부모라 고 답했다. 선생님은 11.8%, 선배는 2.9%였다. ‘없다’는 응답도 8.8% 나왔다. 울산중부서 박종선 경장은 “경찰서까지 오게 된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경제적·정신적 보호를 받지 못한 경우이고 상습적 가정 폭력에 시달려 온 사례도 많다”며 “비행→처벌→재비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감시와 단속에 앞서 아이들의 정서와 고민을 깊이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취재했나
중앙SUNDAY는 ‘호통판사’ 천종호(부산지법 부장판사)가 2015년 1월~2018년 2월 부산가정법원에서 처리한 소년 보호 사건을 전수 분석했다. 천 판사가 2010년 창원지법에서 첫 소년부 판사를 맡았을 때부터 올해 2월 부산가정법원 소년부를 떠날 때까지 만난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말투, 특징을 세세하게 기록한 메모의 뒷부분이다. 종이로만 남아 있는 메모를 모두 정량화해 분석했다. 중복되고 누락된 정보를 제외하니 1872명이었다. 이들의 죄명과 재범 여부, 가정환경과 본인 특성 등이 분석의 초점이다. 천 판사의 메모에는 배고프고, 아프고, 기댈 곳 없는 소년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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