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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풍경, 바람과 빛의 아름다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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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35면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영어보다 우리말이 훨씬 아름다운 단어가 많다. 그 중에서도 풍경과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두 언어가 가지는 격조의 차이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일 게다. 랜드스케이프는 토지 소유권이라는 뜻이 그 어원이며 지금의 단어를 직역해도 땅의 모양이나 조건을 의미하는 것이라 서양인에게 풍경은 그냥 물적 대상일 뿐이다. 이를 바람과 볕을 뜻하는 풍경(風景) 혹은 풍광(風光)이라는 우리말의 의미와 견주면 마치 장사치와 선승이 쓰는 언어의 차이처럼 보인다. 풍경과 비슷한 경관(景觀)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그 빛을 보는 일이며, 관광(觀光)은 놀고 먹는 일이 아니라 빛을 보는 일 즉 사물을 보고 깨닫는 뜻이라는 것이니 우리 선조들의 세상에 대한 사유와 문자의 향에는 헤아릴 길 없는 크기와 깊이가 있다.

도보다리 끝에 마주 앉은 두 사내 #주고받은 진실 들리지 않았지만 #폭력·증오·불신 내려놓게 한 풍경 #바람과 빛은 너무도 아름답게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었으니 #바로 그게 풍경의 본질이었다

풍경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자연풍경과 인공풍경으로 나뉜다. 인간이 손대지 않은 곳, 자연(自然)이라는 단어 그대로 스스로 있게 된 곳이 자연풍경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감동받는다면 그때는 그 생김이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일만이천개 형형색색의 봉우리가 이루는 금강산의 장관이나 상상 밖의 험준한 지형으로 기괴한 그랜드캐니언, 끝 간데 없는 사막의 극한 풍경 등…. 도무지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한 이런 자연풍경에서 우리는 그곳을 지배하는 초능력의 힘을 경외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지게 되는 감정이 기(奇)나 괴(怪)인 만큼 우리의 일상적 풍경이 아니어서 그 감동과 찬탄은 한순간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에게 보다 더 깊고 오랜 감동을 주는 것은 역시 우리의 구체적 삶이 만든 풍경이다. 오래전 북아프리카의 아틀라스산맥을 종단한 적이 있다. 지중해 연안을 사하라사막의 극한기후에서 지켜주는 2500㎞ 길이의 아틀라스 산맥 남쪽 면은 사막의 열풍으로 척박하기 그지 없는 풍경을 이룬다. 산맥 남쪽의 건조한 도로 위를 달리는 내내 벌거벗은 산과 뜨거운 모래 바람의 거친 풍경이 버스 옆을 스쳐 가기를 몇 시간째,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난 건축물에 황급히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내 페이스북 배경사진으로 삼은 이 풍경에는 사막화된 땅 위에 단층의 흙집이 담겼다. 가장 간단한 사각의 집 외벽은 모진 열풍에 할퀸 두터운 흙담이었고, 그 안에는 빛을 담는 마당과 한 칸의 방이 있을 터였다. 그 집 속에는 주어진 운명을 온몸을 다해 사는 이가 있을 게며, 그의 간단한 집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인간의 존재와 지속을 극명하게 표현한 결과였다.

이 절박한 아름다움,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런 풍경을 문화풍경(Kulturlandschaft)라고 칭하고 우리의 인간성은 여기에서 고양되며, 특히 종파주의적 관념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발현되는 아름다움은 우리 삶이 고통으로 새긴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했다. 풍경에 대해 많은 저술을 남긴 J. B. 잭슨은 풍경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본질은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자연의 풍경은 우리 일상적 삶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이며 우리가 만들고 가꾸며 우리를 지속하게 하는 문화풍경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까닭일 게다. 그 아틀라스 산맥의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내게 오래 각인되었다.

그러다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보게 된다. 바로 도보다리 풍경. 지난달 27일 열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가히 금세기 최고의 사건이었고 종일토록 생중계된 영상에 세계가 환호하였다. 많은 장면들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겠지만, 내게는 도보다리의 풍경이 압도적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그 다리는 원래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국가들이 정전협정의 준수 여부 내용을 정기적으로 문서로 교환하며 확인하도록 개울을 건너기 위해 만든 시설물이었다. 1994년 즈음 북한이 정전협정 파기를 내세우며 체코와 폴란드를 철수시켰지만 유엔 측의 중립국인 스위스와 스웨덴은 그대로 남아, 응답하는 상대방이 없어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도보다리를 건너 협정 준수 여부에 대한 연락을 취해왔다는 것이다. 대답 없는 다리. 20년 넘도록 그 다리의 끝은 그렇게 막혀 있었다.

그런데 8000만 민족의 생명,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 그래서 절대 고독에 사로잡혀 있을 두 사내가 그 다리의 끝에 마주 앉았다. 다리는 이 순간을 위해 그 끝이 조금 넓혀지고 푸른 색으로 깨끗이 칠해져 봄날 초록의 자연 속에 간결한 거주공간으로 나타났다. 그 속에서 두 사내가 주고받았을 진실, 들리지 않았지만 세계를 향해 절박하고 세계가 절박했던 그들의 진정성 가득한 몸짓은 롱테이크로 줌렌즈에 잡혔고, 되지빠귀·산솔새·청딱따구리 같은 이름마저 예쁜 새들의 소리와 그 위를 지나는 바람소리가 지켜보는 이들의 숨마저 삼켰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 내재해 있을 폭력과 증오, 불신들을 내려놓게 한 이 풍경, 바람과 빛은 너무도 아름답게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었으니 바로 그게 풍경의 본질이었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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