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UNDAY 탐사] 집단폭행한 소녀 2명 새 꿈 찾는 데도 ‘골든 타임’ 있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84호 02면

대전 여중생 집단폭행, 그 후 2년

'폭력소녀' 현아가 홀로섭니다. 그의 마음 잡아준 어른 덕입니다. 2년 전 ‘대전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 현아(당시 16세·가명)는 거리를 배회하던 가출 청소년이었다. 재판을 받고 지난해 8월 대전의 청소년회복시설 ‘한밭누리’에 맡겨졌다. 선생님들의 끈질긴 관심은 현아를 반성과 재기의 길로 이끌었다. 현아는 20일 이곳을 떠나 한 영구임대 주택(49㎡)에 입주할 예정이다. 가출이 아닌 첫 홀로서기다. 지역사회의 어른들은 기꺼이 버팀목이 돼 줬다. 시설에 입소한 후 중복 지원이라는 이유로 기초생활 생계비 지급이 정지되자 한 판사는 관할 구청에 법 해석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서를 보내줬다. 현아는 이 돈과 선생님들이 보탠 돈으로 보증금 230만원을 마련했다. 세간은 인근 교회의 어른들이 채워줬다. 현아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한밭누리 이해경 선생님과 마주 앉은 현아는 절망과 분노를 반성과 희망으로 바꾼 1년을 떠올렸다. 프리랜서 김성태

'폭력소녀' 현아가 홀로섭니다. 그의 마음 잡아준 어른 덕입니다. 2년 전 ‘대전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 현아(당시 16세·가명)는 거리를 배회하던 가출 청소년이었다. 재판을 받고 지난해 8월 대전의 청소년회복시설 ‘한밭누리’에 맡겨졌다. 선생님들의 끈질긴 관심은 현아를 반성과 재기의 길로 이끌었다. 현아는 20일 이곳을 떠나 한 영구임대 주택(49㎡)에 입주할 예정이다. 가출이 아닌 첫 홀로서기다. 지역사회의 어른들은 기꺼이 버팀목이 돼 줬다. 시설에 입소한 후 중복 지원이라는 이유로 기초생활 생계비 지급이 정지되자 한 판사는 관할 구청에 법 해석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서를 보내줬다. 현아는 이 돈과 선생님들이 보탠 돈으로 보증금 230만원을 마련했다. 세간은 인근 교회의 어른들이 채워줬다. 현아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한밭누리 이해경 선생님과 마주 앉은 현아는 절망과 분노를 반성과 희망으로 바꾼 1년을 떠올렸다. 프리랜서 김성태

2016년 11월 21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의 S모텔. 한 객실에 대전 전역과 충남 천안, 경기도 등에서 모여든 가출 청소년 12명이 들락거렸고, 이튿날 경찰이 들이닥쳤다. A양(당시 16세, 이하 나이는 모두 사건 당시 기준)은 “한나절 동안 일방적으로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이 사건을 ‘대전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보도했다. 그로부터 2년, 12명의 아이들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중앙SUNDAY는 이들의 흔적들을 따라가 봤다.

가해자 8명 소년원·회복시설로 #6명은 방황, 지명수배된 아이도 #자원봉사자와 어울리고 후원받아 #회복지원시설 간 2명은 새 출발 #비행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이 #제자리 돌아갈 가능성 더 높아

지난 16일 대전의 청소년회복지원시설 한밭누리의 식구들이 늦은 저녁을 위해 둘러앉았다. 인근 대학과 지역사회에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은 청소년들과 한 가족이 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16일 대전의 청소년회복지원시설 한밭누리의 식구들이 늦은 저녁을 위해 둘러앉았다. 인근 대학과 지역사회에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은 청소년들과 한 가족이 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요즘도 SNS에 “같이 술 마실 사람 찾아요”

피해자를 포함한 12명의 소녀들은 대부분 조손·한부모 가정이거나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12명 중 7명이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대전시내와 공원 등에서 만나 서로의 ‘가족’(가출팸)이 됐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일부는 노래방 도우미를 했다. 거리에서 만난 ‘삼촌’들이 다리를 놨다. 일부는 물건을 훔쳤다. 이들의 진로는 “A양(피해자)이 뒷담화를 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에 경찰이 개입한 뒤 갈렸다.

법원과 수사 관계자, 지역사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12명 중 3명은 단순 목격자로 분류돼 8명이 소년보호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1명은 잠시 소년원에 보냈고, 4명은 청소년회복지원시설(이하 회복지원시설)로, 2명은 보호관찰을 붙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재판 중 성인이 된 1명은 검찰로 넘겨졌다. 12명 중 절반은 이후 다른 비행으로 결국 소년원 등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가장 나이가 어렸던 C양(15)은 당시엔 집으로 돌아갔지만 얼마 후 다시 절도를 저질러 회복지원시설에 보내졌다. C양은 지난 1월 어느 눈 오는 날 새벽 8㎞ 이상을 걸어나간 뒤 사라졌다. 지명수배 상태인 C양은 SNS에 요즘도 “같이 술 마실 사람을 찾는다”는 등의 글을 올린다. C양에 앞서 같은 시설에 살았던 D양(16)도 이탈했지만 곧 붙잡힌 뒤 ‘6호’로 처분이 변경돼 대구·경북의 한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졌다.

이 사건으로 유일하게 소년원에 다녀온 다른 도시 출신 E양(19), 경기도에서 내려왔던 F양(18)은 살던 곳으로 돌아가 보호관찰을 받으며 지낸다. F양은 이후에도 수차례 가출을 반복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사건 관계자는 “둘 다 이후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직업을 갖거나 학업을 재개하지 못한 채 방황 중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왕언니 격인 G양(19)도 최근 대전을 떠났고, 가벼운 처분을 받은 H양(17) 정도가 남아 있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은 현아(16·가명)와 혜진(16·가명)뿐이었다.

동갑내기 현아와 혜진의 당찬 도전

지난 1월, 한 청소년 연설대회에 한 소녀가 떨리는 표정으로 연단에 섰다. 현아였다.

“저는 사람들이 비행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아이입니다. 많이 두렵고 떨렸습니다. 과연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비행 청소년’이라는 단어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현아의 눈가가 빨개졌다. 격려의 박수에 말을 이었다.

“제 안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어떤 어른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준 선생님이 있었고….”

현아는 본선 진출자 10명에 들었다. 사회에서 경험한 첫 성과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현아의 마음이 움직인 건 소년분류심사원(소년재판에 앞둔 청소년을 수용해 예비 심사를 하는 기관)에 들어간 직후였다. 아이들은 쇠창살이 있고 죄수복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이곳을 감옥처럼 여긴다. 현아는 “죄인이 됐다는 생각에 겁도 났지만 매 주말 면회 오시는 할머니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할머니였는데 우는 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다”고 말했다. 어릴 적 이혼한 부모가 모두 떠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현아는 중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할머니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집을 떠났다.

현아는 최근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직업훈련으로 재무회계도 배운다. 혜진이 역시 고깃집에서 하루 11시간 아르바이트하며 자립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빠 곁을 2년간 떠났던 혜진이는 아빠집 옆에 새 집을 얻었다. 혜진이는 “남한테 피해를 준 만큼 간호사처럼 남을 돕는 직업을 갖고 싶다. 정말 잘못했으니까…”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다시 꿈을 갖게 된 출발점으로 회복지원시설 한밭누리 이해경 센터장과의 만남을 꼽는다. SNS에 신상이 노출돼 어디서도 고개를 들기 어려운 때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사찰에 맡겨져 자랐던 이 센터장은 아이들의 아픈 기억과 함께 호흡했다. 이 센터장은 “자원봉사자 언니·오빠들과 쉽게 어울리고 어른들의 후원도 받게 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둘은 가장 어린 축이었고, 소년재판에 넘겨진 게 처음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이 센터장은 “소년원 등을 거친 아이들보다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어떻게 취재했나

중앙SUNDAY는 ‘호통판사’ 천종호(부산지법 부장판사)가 2015년 1월~2018년 2월 부산가정법원에서 처리한 소년 보호 사건을 전수 분석했다. 천 판사가 2010년 창원지법에서 첫 소년부 판사를 맡았을 때부터 올해 2월 부산가정법원 소년부를 떠날 때까지 만난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말투, 특징을 세세하게 기록한 메모의 뒷부분이다. 종이로만 남아 있는 메모를 모두 정량화해 분석했다. 중복되고 누락된 정보를 제외하니 1872명이었다. 이들의 죄명과 재범 여부, 가정환경과 본인 특성 등이 분석의 초점이다. 천 판사의 메모에는 배고프고, 아프고, 기댈 곳 없는 소년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