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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솜방망이 처벌'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그 해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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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교통 사고가 발생한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 [중앙포토]

안타까운 교통 사고가 발생한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에서 안타까운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119 구급대원인 엄마가 6살짜리 딸과 함께 소풍 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차에 치인 겁니다. 이 사고로 딸이 숨지고 엄마도 크게 다쳤습니다.

 가해자가 당초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태도를 바꿨고 심지어 사고 며칠 뒤 해외여행을 떠났다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피해자 가족은 물론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는데요.

 도로교통법 맹점 탓 솜방망이 처벌?

당시 가해자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현행 도로교통법의 맹점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사유지여서 도로교통법 상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 탓에 교통사고를 내도 처벌을 받지 않거나 설령 처벌을 받아도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피해자 가족이 작성한 호소문. [중앙포토]

피해자 가족이 작성한 호소문. [중앙포토]

 그래서 피해자 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도로교통법의 허점을 지적하며 가해자 엄중 처벌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고, 청원 참여자도 2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만큼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분노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인데요.

 그런데 앞에서 나온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에 대한 얘기를 따져보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사실과 다릅니다. 우선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 내 도로가 현행 도로교통법 상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도로교통법은 ^도로법에 따른 도로 ^유료도로 ^농어촌 도로 ^사람 또는 차마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를 도로로 인정합니다.

 대부분 아파트 도로는 '도로 아님'  

 대법원 판례도 ^차량 차단기가 없으며 ^현실적으로 평소 차량출입을 통제하지 않아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허용되어온 아파트 단지 내 통행로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도로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는 차량 차단기가 있고, 경비원이 출입 차량을 통제하기 때문에 '도로'가 아닌 사유지, 즉 '도로 외 구역'으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반면 아파튼 단지 내에서는 교통사고를 내도 처벌을 안 받는다는 건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어떤 유형의 사고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르면 사망 사고를 낸 경우에는 가해자가 보험에 가입했고, 피해자와 합의를 했더라도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대전 아파트 단지 사고의 가해자도 역시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피해자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정도의 중상해를 입힌 경우는 도로와 도로 외 구역 모두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했으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합의가 안 되면 처벌 대상이 되는 겁니다.

 아파트 사고, 12대 중과실 적용 안 돼

 문제는 일반 상해일 때입니다.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는 원칙적으로 보험가입 시에는 처벌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고 후 조치를 취하지 않았거나, 음주측정에 불응하고,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면 무조건 처벌을 받습니다. 12대 중과실은 횡단보도 사고, 중앙선 침범 등 죄질이 무겁다고 분류된 교통사고 유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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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단지 등 도로 외 구역도 보험 가입 시 처벌하지 않고, 사고 후 미조치나 음주측정 불응 때 처벌하는 건 동일합니다. 그러나 도로에서 12대 중과실은 무조건 처벌하는 것과 달리 도로 외 구역은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음주·약물 운전인 경우만 처벌할 뿐입니다.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나오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법상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교통법규 위반을 단속할 권한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내에서 정한 속도 제한 규정을 위반해도 달리 제지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인데요. 아파트 단지 내 도로가 '안전 블랙홀' '안전 사각지대'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마도 아파트 단지는 사유지이니 경찰 등 공권력이 개입하기보다는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안전 규정을 지키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독일은 원칙적으로 아파트 단지, 학교 등은 사유지에는 교통안전 법규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일본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음식점, 편의점의 주차장 등을 제외하곤 원칙적으로 사유지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반면 홍콩, 캐나다는 사유지에도 적극적으로 교통안전 법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파트 교통사고 32만건 발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실 자율에 맡겨서 효과적으로만 작동한다면 좋을텐데 우리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7년 발생한 교통사고 중 '도로 외 구역' 사고가 전체(400만건)의 16.4%인 66만건이나 되는데요. 이 중 아파트가 절반에 가까운 32만건을 차지합니다. 대형마트, 놀이공원 등의 주차장 사고도 29만건이나 됩니다. 또 이들 '도로 외 구역' 사고의 유형을 보면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는 '차대 차'가 66%, '차대 사람'이 1.7%로 전체의 70%에 육박합니다.

 이 때문에 아파트 단지 도로 등 '안전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법을 정비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경찰청과 국토교통부 등이 TF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 중입니다.

 우선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비도로에도 보행자 보호 의무를 신설하고, 이를 위반 시 도로 또는 도로 외 구역 여부와 관계없이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바꿔 도로 외 구역에서도 12대 중과실의 경우 형사처벌 토록하는 내용도 추진 중인데요.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해서 보행자를 다치게 한 운전자의 형사처벌도 고려되고 있습니다.

 처벌 강화, 보행자 보호 노력 병행해야 

 아예 도로 외 구역만을 별도로 떼어내서 보행자 보호 의무와 처벌 규정 등을 담은 새로운 법을 제정하려는 계획도 논의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아파트 단지 내 단속과 계도 권한을 지자체나 주민자치보다는 교통경찰에 부여하는 방안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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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렇게 처벌만 강화하면 불필요하게 범법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하지만 현재의 법체계와 처벌 수준으로는 빈발하는 아파트 단지 내 사고를 막을 수 없어 보입니다. 차를 운전하고 있다면 그곳이 법적 도로이든 아니든, 늘 사고를 조심하고 보행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할 시점입니다. 아울러 보행자도 안전 법규를 제대로 지키도록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도입하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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