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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J노믹스 1년 성적표 매겨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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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J노믹스’가 도입된 지도 딱 1년이 됐다. J노믹스의 정치적 매니페스토(구체적 예산과 추진 일정을 갖춘 선거 공약)는 사람 중심의 경제이고, 경제철학으로는 소득주도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 이론적 근거는 국제노동기구(ILO) 일각에서 주창하는 ‘임금주도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상대적으로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증가시켜 소비여력을 높일 경우 내수를 중심으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일자리 중심, 공정 경제, 혁신성장이란 세 가지 세부 목표를 제시했다.

사람중심 경제, 소득주도 성장 1년 #체감경기 나빠졌다는 응답이 50% #청년실업과 일자리정책 낙제점 #이제 성장동력 확충에 역점 둬야

그렇다면 지난 1년 동안 성적표는 어떨까. 유례가 없는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경제 정책 면에서는 그리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외교안보 부문과는 달리 경제쪽 지지율은 대략 50% 선에 머물고 있다. 특히 체감경기가 나빠졌다는 응답률 역시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더욱 박하다. 한국경제연구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9.6%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데 반해 부정적인 평가는 47.1%나 됐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경제정책, 그것도 현재진행형의 경제정책 효과를 평가하기에는 1년이란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국회 공전으로 집행하지도 못한 정책과제도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J노믹스의 단기적 성과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먼저 대통령이 집무실에 상황판까지 설치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세부목표인 일자리 창출 정책을 보자.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 증원 등이 핵심 액션플랜으로 추진됐다. 그런데 3월 실업률은 4.5%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현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청년실업률은 11.5%로 2년 만에 최고치였다. 결국 일자리 창출 면에서는 단기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안동현칼럼

안동현칼럼

최저임금 인상이나 52시간 근로시간제는 한국처럼 임금의 횡단면적 분포가 넓은 국가에서는 그 정책이 지향하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일 우려가 있다. 최저임금을 지불하는 고용주가 대부분 자영업자나 영세기업이다 보니 ‘을과 을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지불 능력에 한계가 있는 고용주는 최저임금 인상 조치에 고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즉 임금 분포의 밑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winsorizing)를 정책 당국자는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임금 분포의 밑단을 잘라내는 현상(truncation)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저소득 일자리가 오히려 사라지는 ‘구축(驅逐)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숙박 및 음식업에서 9개월째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자영업자의 54%가 소득이 줄었다고 응답한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52시간 근로시간제 역시 비슷한 우려가 있다.

반면 공정경제 부분에서는 성과가 있었다. 공정위 주도로 하도급의 불공정 관행에 경종을 울렸으며, 대기업의 지배구조나 터널링 이슈도 점진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이 가장 높이 평가한 정책이 공정거래 정책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다만 법률적 미비로 시스템에 기초한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기보다는 각 대기업의 상황에 따라 조금은 자의적인 해결 방법에 기대다 보니 일견 거칠어 보이기도 했다.

가장 아쉬운 세부과제는 혁신경제다. 지난 정권이 추진했던 ‘창조경제’가 정의부터 모호했던 것처럼 혁신경제 역시 방향성부터 명확하지 않다. 경제학자들이 남은 임기 동안 중점을 둬야 하는 과제로 70% 넘게 지적한 과제가 성장동력 확충이다. 이는 혁신경제의 성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김대중 정부 이래 지속해온 벤처 활성화 외에 뚜렷한 액션플랜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은 장기적 추세인 잠재성장률과 그 주위에 사이클을 그리며 움직이는 경기순환(비즈니스 사이클)으로 구분된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경기순환에 대해서는 케인지언의 수요정책으로 대응하고, 잠재성장률에 대해서는 슘페터식의 공급정책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집중해 온 정책은 소득 증대와 복지 확대 정책들이다. 이는 대부분 수요 확대 정책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경제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J노믹스가 주창하는 바와 같이 경제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면 남은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회복시킬 수 있는 공급 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