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재명 욕설 너무 심했다” vs “남경필, 남의 가정사 왜 들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새로운 상상 2018 국제 컨퍼런스’(15일)에 참석한 모습. [사진 각 후보 캠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새로운 상상 2018 국제 컨퍼런스’(15일)에 참석한 모습. [사진 각 후보 캠프]

경기도는 1300만 인구가 밀집한 대한민국 최대의 광역단체다. 규모 면에서 수도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선거 결과는 달랐다. 1995년 첫 지방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계열 후보가 엇비슷하게 당선된 서울시장과 달리 경기지사는 1998년 임창열 전 지사만 유일한 민주당(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당선자다.

동두천~평택 1호선 민심 르포 #안보 민감한 접경지 동두천 시민 #“통일 힘실을 1번”“먼 얘기, 난 2번” #의정부·수원서 만난 유권자들 #“털어 먼지 안 날까”“수신제가부터” #미군 부대 이전해간 평택 지역 #“힘든 경제 좀 살려주길” 한목소리

그런 경기도지만 이번 6·13 지방선거는 과거와 판이한 분위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운영 지지율 속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남경필 한국당 후보를 크게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중앙일보는 15~16일 이틀에 걸쳐 북으로는 동두천, 남으로는 평택에 이르는 수도권 1호선을 따라 이동하며 경기도 민심을 살폈다.

접경 지역이어서 안보 이슈에 민감한 동두천을 지난 15일 오전 가장 먼저 찾았다. 동두천중앙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 정진태(63)씨는 “나는 무조건 1번(민주당)”이라며 “문 대통령이 지금 통일시키려고 잘하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택시 기사 이종환(63)씨는 “나는 자유한국당”이라며 “(남북이 화해해서) 여기가 투자가 늘어나고 좋아지는 건 먼 훗날 얘기”라고 했다. 전철에서 막 내린 양승근(73)씨는 “문 대통령이 남북 문제를 잘하고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남북 분위기를 여당이 선거에 이용하려는 건 반대”라고 했다.

지방선거가 한 달도 안 남았지만 정치권에선 정책도, 이슈도 사라져 “선거가 실종됐다”는 말이 나온다.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 묻혀서다. 그러던 중 경기지사 선거엔 최근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논란이라는 이슈가 돌출했다.

의정부에서 만난 김수영(59·여·회사원)씨는 “(욕설 논란은) 웃기는 일이다. 남의 집안 치부, 남의 가정사를 들추는 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정부역 서부교차로를 걷던 노정민(58)·문양숙(55)씨 부부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했다.

평택에서 만난 회사원 오승호(37)씨는 “욕설 논란이 선거 이슈는 되겠지만 내 선택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수원역 앞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정성근(59)씨는 “(이)재명은 제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런 욕은 육십 평생에 처음 들어봤다”며 혀를 찼다. 의정부에서 보험회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천병호(58)씨는 “욕설 논란 때문에 봐야 할 것을 못 보면 안 된다”면서도 “이재명 후보는 별로다. 인구 1000만 조직의 장을 맡기에는 너무 즉흥적이고 가볍다”고 했다.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가 안산 택시 모범운전자 간담회(16일)에 참석한 모습. [사진 각 후보 캠프]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가 안산 택시 모범운전자 간담회(16일)에 참석한 모습. [사진 각 후보 캠프]

사실 기자가 만난 유권자 상당수는 누굴 뽑을 거냐는 질문에 “뽑을 사람이 없다”는 대답을 내놨다. 그런 민심의 단면이 드러난 건 지난 15일 초저녁 수원역전시장 닭발집 앞에서 맥주를 마시던 60대 남성 4명의 대화였다.

▶남성1=“(이·남 후보) 두 사람 다 똑같다. 하나는 욕을 그렇게 하고, 다른 하나는 이혼해서 가정을 버렸잖아.”

▶남성2=“문재인 지지자가 남경필이도 싫지만 이재명이는 더 싫다는 거야.”

▶남성3=“(휴대전화 들어 보이면서) 이거 봐봐. (욕설 내용) 나오잖아. 인터넷 보면 다 나와.”

▶남성4=“남경필도 아들이 문제고. 두 사람 모두 수신제가부터 해야지.”

경기지사 선거엔 이재명·남경필 후보 외에도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 이홍우 정의당 후보 등이 뛰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후보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다. 후보가 누군지보다 문 대통령과 정당을 언급하는 시민이 여럿이었다. 강영복(46·동두천·건강원 사장)씨는 “나라 자체가 힘든데 한국당은 국회 앞에서 밥도 안 먹고 천막에서 농성만 한다”고 했다. 수원시 매산동에서 만난 주부 우세영(46)씨는 “(남북 화해라지만) 정부가 북한에 돈을 보낼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재명·남경필 후보는 지난 4년간 각각 성남시와 경기도를 이끌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 후보는 성남에서 추진했던 청년 배당 정책 등을 경기도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남경필 후보는 도지사 경험을 바탕으로 “4년간 일자리 70만 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다.

김은석(20·동두천)씨는 “이 후보가 시장을 하면서 빚도 갚고 성남을 잘 이끌었다”고 했고, 의정부에서 만난 장하나(39)씨는 “성남에 사는 워킹맘 친구가 성남시 복지 정책이 많이 좋다고 하더라”고 했다. 안양 1번가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혜인(23)씨는 “저처럼 취업 준비하는 사람은 청년 배당 같은 정책이 피부에 와닿는다”고 했다.

반면 안양역 앞에서 불우이웃돕기 자원봉사를 하던 이재훈(29)씨는 “이 후보는 포퓰리즘이 너무 심하다”며 “선별적 복지를 통해 진짜 필요한 계층에 돈이 쓰여야 한다”고 했다. 평택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곽정호(45·사업)씨는 “남 지사가 지사일은 잘 한 것 같다. 복지도 좋지만 땀을 흘려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16일 평택은 종일 잔뜩 구름이 끼었다. 마침 이날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 회담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남북 대화 분위기도 조금은 흐려졌다.

평택역을 지나던 대학생 김민지(24)씨는 “나는 문 대통령 지지자”라며 “민주당 후보를 뽑아 힘을 주면 남북 협력 정책을 추진하기 좋을 것”이라고 했다. 조문을 위해 안양에서 평택에 왔다는 신동문(77)씨는 “남북 대화와 선거는 별개”라며 역 계단을 내려갔다.

경기도 양끝의 동두천과 평택은 주한미군과 인연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광현 동두천 소상공인연합회장은 “20년 전 동두천은 지나가는 개도 달러를 물고 다니던 곳이었지만 미군 부대가 평택으로 가면서 너무 어렵다”고 했다. 원철재 평택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미군이 늘어나고 대기업도 들어왔지만 막상 지역에서 돈을 쓰지는 않아 우리는 힘들다”고 했다. 이들은 지사 후보들에게 “지역 경제를 살려달라”고 입을 모았다.

동두천·의정부·안양·수원·평택=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