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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방식 놓고 북한과 미국 충돌 본격화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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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회담하자”(15일 오전 9시)→“회담을 중지한다”(16일 오전 0시 30분)
“북미 만남에 만족한다”(10일)→“조ㆍ미 수뇌상봉(북·미정상회담)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하라”(16일 오후 12시)
남북관계 정상화와 북ㆍ미 관계 개선을 향해 달려가던 북한이 16일 갑자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날 새벽 일방적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소하더니 정오 무렵엔 북·미 정상회담 취소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아무런 사전 조짐 없이 돌연 한국과 미국을 향해 동시에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맥스선더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F-22전투기가 16일 오전 훈련을 마치고 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맥스선더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F-22전투기가 16일 오전 훈련을 마치고 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당혹스런 모습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북측이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은 4월 27일 양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유감”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이런 내용이 담긴 전화통지문을 북측에 전달했다.

갑자기 북한이 “제 정신이 없이 놀아대는 남조선 당국에 책임이 있다”(조선중앙통신)는 저속한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반발한 이유는 뭘까.

북한이 문제삼은 ‘군사적 위협’(맥스선더 훈련)은 명분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진행한 대규모 독수리 연습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해한다”고 해놓고, 그보다 소규모의 맥스선더 훈련을 문제 삼은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맥스선더 훈련은 이미 지난 11일부터 진행중이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6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6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그래서 이날 북한의 ‘돌변’은 대미협상에서 끌려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본격적인 실무접촉이 진행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미국의 뜻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전 기싸움, 또는 미국의 여론조성에 대한 경고차원 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 강경 여론을 주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겨냥한 경고라는 것이다. 이와관련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 면담때 북한 비핵화 방식을 놓고 양측이 심각한 이견을 드러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며 “북한이 표면적으로 연합훈련을 문제삼았지만 이상 조짐은 지난주부터 나타났다”고 적었다. 동국대 고유환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리비아식 모델 거론과 협상의 문턱을 높이는 상황에 북한이 불만을 가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리비아가 핵을 포기한 뒤 정권이 무너졌다는 이유로 리비아식 모델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결국 비핵화 방식과 보상 순서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된 셈이다.
이미 미국내 북한전문가들도 김정은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고려대 남성욱 행정대학원장은 “북한은협상과정에서 최대한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내주지 않으고 보존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며 “미국이 적당히 타협할지, 아니면 CVID를 계속 밀어붙일지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 원장은 “이미 중국의 대북제재가 헐거워지고 있는 마당에 북한이 여차하면 판을 깨고 중국에 밀착하겠다는 경고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계관이 이날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 없다”고 한 것도 중국의 경제지원 움직임을 의식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을 통해 대미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북한이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변화는 1차적으로 22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으로 본다”며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체제안전 보장 등 북한의 입장을 잘 설명해주기를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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