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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끝에 주연이 된 인주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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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프로 4년 차에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인주연. 오랜 기다림이 값진 우승으로 돌아왔다. [우상조 기자]

프로 4년 차에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인주연. 오랜 기다림이 값진 우승으로 돌아왔다. [우상조 기자]

“축하 메시지만 200개 넘게 받았어요. 그런데도 우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프로 4년 차 59개 대회 만에 첫 우승 #어려운 환경 속 프로골퍼 꿈 키워 #상금 벌기 위해 1·2부 투어 병행도

프로 4년째를 맞은 인주연(21)은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 골프장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2차 연장 끝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에겐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숱한 역경을 이겨내면서 59개 대회 도전 끝에 거둔 값진 결실이었다.

여자 프로골프계에 ‘새로운 신데렐라’로 떠오른 인주연을 우승 다음날인 14일 경기도 용인 88골프장에서 만났다. 그는 “아직도 모든 게 꿈만 같다”며 “내가 우승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과 인터넷 기사 댓글을 일일이 살펴봤다. 팬들의 열렬한 응원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13일 경기 용인 수원CC에서 열린 '2018 NH 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파이널 라운드에서 우승한 인주연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KLPGA]

13일 경기 용인 수원CC에서 열린 '2018 NH 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파이널 라운드에서 우승한 인주연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KLPGA]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3년차 인주연(21)이 생애 첫 정상을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으로 장식했다. 인주연은 13일 경기도 용인시 수원 컨트리클럽 뉴코스(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일에 김소이(24)와 연장 접전 끝에 우승했다. 사진은 우승 확정 트로피에 입 맞추는 인주연 모습. [사진 KLPGA]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3년차 인주연(21)이 생애 첫 정상을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으로 장식했다. 인주연은 13일 경기도 용인시 수원 컨트리클럽 뉴코스(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일에 김소이(24)와 연장 접전 끝에 우승했다. 사진은 우승 확정 트로피에 입 맞추는 인주연 모습. [사진 KLPGA]

우승을 확정지은 뒤 많은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인주연은 “실수를 한 뒤 자책도 많이 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가슴 속에 담아두는 스타일이다.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그 때마다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런데 우승이 확정되자 ‘나도 할 수 있구나. 열심히 한 만큼 보상받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인주연은 처음부터 골프 선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육상과 태권도를 했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던 실내골프연습장에서 처음으로 클럽을 잡았다. 그러나 어린 소녀에게 골프는 큰 매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인주연은 “육상·태권도가 동적인 스포츠인데 비해 골프는 정적이었다. 골프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아빠에게 재미없다고 불평을 했다”고 털어놨다.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그러나 그는 골프를 시작하자마자 남다른 장타 실력을 발휘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한데다 힘과 순발력이 뛰어났다. 인주연의 장기는 지금도 ‘장타’다. 그는 “나보다 멀리 치는 친구를 본 적이 없다. 나이에 비해 멀리 치니까 주변에서 ‘괴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드라이브샷을 280야드나 날린 적도 있다.

중3 때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던 인주연은 골프 입문 6년 만인 고3 때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초고속 성장을 했다. 그러나 늘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었다. 골프 훈련을 하기 위해 인주연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습장 근처 원룸에서 살았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훈련 비용을 마련하기도 힘들었다. 장비를 바꾸기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김지영(22)·박결(22)·최혜진(19) 등 국가대표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고개를 떨군 적도 많았다. 인주연은 “나보다 구력이 두 배 넘는 선수들도 많았다. 그런데 공까지 잘 안 맞으면 ‘내가 왜 골프를 시작했을까’하고 자책했던 적이 많았다. 가정 형편도 어려워서 그만 두고 싶단 생각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2015년 꿈에 그리던 1부 투어에 올라왔지만 프로골퍼의 길도 순탄치 않았다. 1부 투어 첫 해엔 상금 70위에 머물러 이듬해인 2016년엔 2부 투어로 내려가야 했다. 절치부심 끝에 그는 지난해 다시 1부 투어로 올라왔지만 상금을 벌기 위해 2부 투어 대회에도 출전했다. 인주연은 “평일엔 2부, 주말엔 1부 투어를 뛰는 식이었다. 12일 연속 경기를 치른 적도 있었다. 더운 여름에 그런 강행군을 펼친 것 자체가 체력 훈련이나 다름 없었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인주연이 첫 우승을 거두기까지는 대선배인 ‘탱크’ 최경주(48)의 도움도 컸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최경주재단의 겨울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그는 고3 땐 장학생으로 선발돼 장학금까지 받았다. 프로가 된 인주연이 2부 투어에 내려갔을 때도 최경주재단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인주연은 “늘 겸손하라. 잡초같은 사람이 되라”는 최경주의 말을 되새겼다. 인주연은 “힘든 상황에서 최경주 프로님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됐다. ‘꼭 최경주 프로님처럼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털어놓았다.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그래서 인주연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여자 탱크’다. 힘있게 멀리치는 스타일에 붙여진 '탱크'는 최경주의 별명이기도 하다. 인주연은 “아직 최경주 프로님께 감사 인사를 하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주연의 소식을 안 최경주는 15일 "고생한 만큼 좋은 날이 왔다. 이제 시작이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전진하는 선수가 돼라"고 격려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인주연을 프로골퍼로 키워낸 그의 부모님은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인주연은 “부모님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더 많이 났다. 상금(1억4000만원)은 부모님께 모두 드리겠다”며 “아직은 우승이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첫 승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겸손한 골퍼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번 대회 도중 2부 투어에 내려갔던 선수들의 응원을 많이 받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선수들에게 내 우승이 힘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이제 시작이다. 10년 더 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 한 번 우승에 자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인주연. 용인=우상조 기자

인주연은

생년월일 : 1997년 2월 14일
: 1m72㎝
가족 관계 : 아버지 인유성, 어머니 문상춘 씨
사이의 1남1녀 중 막내
프로 데뷔 : 2015년
우승 횟수 : 1회 (2018 NH투자증권 챔피언십)
롤모델 : 최경주
취미 : 자전거 타기, 혼자 음악 들으면서 걷기
별명 : 여자 탱크, 힘주연(힘이 좋다는 이유로)
좌우명 :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목표 : 겸손한 프로골퍼가 되는 것

용인=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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