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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고 싶은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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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Q. 학교에서 코딩 수업을 들으며 소프트웨어(SW) 개발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장단점이 있는 직업이라 따져봐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요?

4차 산업혁명 핵심인 SW 개발자 #인공지능 등 분야서 인력 부족 예상 #‘머릿수 세기’ 관행 탓 처우 나빠 #ICT 인재, 직업 만족도 매우 낮아 #갑을 관계 벗어난 합리적 계약해야

유망 직업이지만 장시간 근로 등 힘든 점도 많죠" 

A. 먼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알아볼까요. 틴틴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코딩을 배우고, 개발자란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사실 4차 산업혁명과 관계가 깊습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매우 많은 업무를 종이와 펜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다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일을 컴퓨터로 처리하게 됐죠. 주민센터나 구청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서류를 발급받고, 은행에 가지 않고도 금융 업무를 볼 수 있어요.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이런 과정을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러요. 종이로 하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하고(정보화),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자동화) 시대가 열린 거죠.

최근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은 정보화되고 자동화된 기능이 조금 더 똑똑해지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기존의 시스템에 ICBMA(사물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인공지능)라 불리는 신기술이 결합하면서 훨씬 더 정교하고 똑똑한 기능이 생겨난 거죠.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더 똑똑한 IT 세상을 만들려면 그만큼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겠죠. 정부가 올해부터 전국 중학교에서 소프트웨어(SW)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틴틴 여러분이 코딩을 배우게 된 이유기도 하죠.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인력 수급 전망에 따르면 2022년까지 인공지능 등 유망 SW 분야엔 약 6만 명의 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급은 3만 명 정도로 인력난이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이 진로를 IT로 정하고 열심히 코딩을 익히면 SW 개발자가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의미죠.

유망한 직업인 건 맞지만 ‘좋은 일자리’인지는 고민이 좀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임금은 낮고, 근로시간은 길거든요. 이 때문에 개발자는 이직률이 높고, 직무 수명도 짧습니다. 빅맥지수로 각국 SW 개발자의 평균 연봉을 따져본 흥미로운 지표가 있습니다. 연봉으로 빅맥 햄버거를 몇 개나 살 수 있느냐를 따져본 건데 한국은 9333개로 가장 높은 수준인 우크라이나의 절반에 못 미칩니다. IT 강국인 미국·이스라엘·중국 등과 비교해도 처우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자연히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국가별 ICT 인재의 만족도를 조사해봤는데 한국은 미국·중국에 비해 직업 만족도가 낮았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개발자의 처우가 좋지 않은 건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습니다. SW 업계엔 ‘헤드카운팅(Head Counting)’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의 머릿수를 세는 건데요. 가령 A라는 은행이 새로운 모바일 금융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한 SW 업체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두 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발할지를 정한 뒤, 가격 협상을 하겠죠.

이때 계약 방식은 크게 턴키(turnkey·일괄)와 헤드카운팅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턴키 방식은 은행이 일정한 금액을 SW 업체에 통째로 지불하면 SW 업체가 약속된 기한 내에 완성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겁니다. 반면 헤드카운팅 계약에선 SW 업체가 개발자만 지원합니다. 정해진 기간 몇 명의 개발자를 투입하기로 약속하고, 은행이 이 파견된 개발자를 데리고 직접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둘 중 뭐가 낫다’ 판단할 순 없습니다. 다만 턴키로 하면 2~3년에 걸쳐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완료 여부를 놓고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째로 비용을 지불하다 보니 적정한 가격을 찾기도 쉽지 않죠. 그래서 독특한 관행이 생겼습니다. 계약은 턴키 방식으로 맺고, 계약서에 헤드카운팅에 관한 조항을 별도로 넣는 방식입니다. ‘어떤 시스템을 만드는데 개발자 몇 명이 필요하니까 얼마에 계약하자’ 이런 식이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실 이건 SW 업체들에 매우 불리한 계약입니다. 단순한 헤드카운팅 계약이라면 SW 업체는 완성된 시스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둘을 섞어 버리면 SW 업체가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지고, 개발자를 몇 명이나 투입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하죠. 여러분도 갑을 관계에 대해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이 경우 일을 맡기는 은행은 갑, SW 업체는 을의 위치에 있습니다. 을의 입장에선 ‘턴키+헤드카운팅’ 계약이 부당하다는 걸 알지만, 일거리를 얻어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불합리한 구조에 따른 피해는 자연히 SW 개발자에게도 이어집니다. 헤드카운팅 방식에서는 이미 투입해야 하는 개발자의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훌륭한 개발자 2~3명이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계약을 10명으로 했다면 개발자 10명을 채워야 하는 거죠. 자연히 SW 업체는 능력을 갖춘 직원을 대우하기보다는 개발자 숫자 채우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발자가 됐고, 옆에 있는 다른 개발자보다 2~3배 일을 더 잘하는데 똑같은 월급을 받으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답은 뻔합니다.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직업을 바꾸겠죠. 상당수 능력 있는 개발자가 해외로 떠나는 이유입니다.

업무 환경이 좋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헤드카운팅 방식을 쓰면 개발자는 해당 사업체로 파견을 가서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파견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서 일을 시키거나 약속된 시스템 구축과 상관없는 다른 업무를 맡기기도 하죠.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공공 정보화 사업에서 ‘헤드카운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헤드카운팅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은 ‘턴키’ 방식으로 맺고, ‘헤드카운팅’ 방식으로 인력을 관리하는 잘못된 관행을 없애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제라도 시장을 바로 잡겠다고 나선 건 반가운 일이에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전체 IT 사업에서 공공 부문의 비중은 20%에 불과합니다. 80%에 해당하는 민간사업까지 개선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죠.

여러분들이 열심히 코딩을 배워 SW 전문인력으로 성장할 미래에는 이런 잘못된 관행이 없어져, 실력을 갖춘 사람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길 바랍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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