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문배주담그기 이경찬옹

중앙일보

입력 1988.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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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구사회는 술맛 자랑을 문화의 척도처럼 긍지로 삼는다.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동양에서도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한민족의 전통적인 술맛을 자랑할 처지가 못된다. 좋은 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짜 술맛을 남에게 알릴 방도가 없는 탓이다.

<4년 조사후 지정>
몇해 전부터 민속주를 개발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반성의 소리가 설왕설래했었다. 드디어 82년 문화재위원회가 전통민속주를 조사하기로 결정하고 각시·도에 의뢰하여 방방곡곡에 묻혔던 술맛의 온갖 솜씨를 수소문했다. 몇차례 거르고 걸러서 최종심사대상에 오른 것이 46종.
다시 13종을 압축해 면밀히 조사하기 3년. 최종적으로 3종이 86년말에야 무형문화재86호「향토술 담그기」로 지정됐다. 하도 말많은 솜씨여서 난산중의 난산이었다.
한반도 서북지방의 명물이던 문배주는 영예롭게 뽑힌 향토주의 하나다. 그 술 솜씨의 보유자는 서울의 이경찬할아버지(73). 본시 평양에서 월남한 실향민으로 평안도 특유의 그 소주맛을 못잊어 어떻게 만천하에 알릴길이 없을까 고심해온 분이다.
문배는 나무에 매달린 채 폭 익은 산배. 허균의「도문대작」이란 글에『대숙리를 일컬어 세가에서는 부리라 하는데 곡산·이산과 같은 산읍에서 많이 난다』고 했다. 요즘처럼 큼직한 배가 아니라 큰 자두알만한 재래종이다. 워낙 배나무가 실하게 자라는 까닭에 한 나무에서 몇섬씩 딴다고 했다. 본시 황해도는 맛좋은 배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문배로 과실주를 만들수 있겠지만 평양 문배주는 그런 술이 아닙네다. 술에서 문배 냄새 같은 자연의 향취가 풍기는 까닭에 생긴 이름이디요. 옅게 노른 기가 감돌기는 하나 술에다 이것저것 섞은 재제주가 아니고요, 순수하게 곡주로만 빚어 맑게 내린건데 40도이상 독합네다. 술내려 1∼2년간 상온에 묻어둘수록 같은 도수인데도 톡 쏘는 게 없어지고 입안에서 단맛이 감돌지요. 기래야 참 좋은 술이디요.』
곧 소주의 일종이다. 그가 단맛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술이 지닌 독특한 향에 대한 지칭이다. 본시 곡식의 전분이 발효해서 술이 되듯이 곡식속에 섞인 기름기도 함께 발효해서 알데히드가 된다. 이 성분이 바로 술마신 뒤 머리 아프게 하는 독성이다.
그런데 알데히드는 1년 이상 저장하면 말끔히 향으로 변해 혀에 감칠맛으로 삭는 것이다. 말하자면 코냑과 같은 이치다.

<독 만져가며 열재>
문배주의 비방은 반드시 메조와 찰수수로 술밥을 찌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찹쌀술을 귀하게 여기지만 문배주의 경우 그 절반 값 밖에 안되는 수수를 값지게 여긴다. 그점 고량주에 가깝다고 할까. 그 배합비율은 밀누룩 20%에다 조 32%와 수수 48%를 넣어 빚는다. 조와 수수는 4대6의 비율이다.
먼저 조밥을 해서 누룩과 섞고 물을 1대1로 잡아 술을 안치면 7∼8일 동안에 발효가 끝난다. 가정에서 술을 담글때 날을 택하고 물을 가리는 것은 그것이 곧 술맛과 직결되기 때문이다.『규합총서』에서도 물맛이 사나우면 술 또한 아름답지 않으니 청명·곡우에 계수로 술을 빚고 이슬 많은 가을에는 이슬을 받아 쓰면 특히 향기롭다고 교시한바 있다. 모두 단물일수록 좋다는 얘기다.
조로 빚은 것을 밑술로 삼아 수수로 지은 덧밥을 두번으로 나눠 하루 걸러 다시 넣는다. 수수밥은 죽에 가깝도록 질게 짓되 만약 조금이라도 누룽지가 생기면 그 술에서는 탄내가 가시지 않기 때문에 아주 늦은불로 고심해서 불을 땠다. 그리고 찰수수와 메수수를 분별하는 것도 여간한 고충이 아니다. 잘 방아찧어 놓은 수수는 찰것과 메것이 식별되지 않을 뿐더러 섞어놓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메수수를 극력 기피하는 것은 우선 술맛 때문이요, 또 술도 덜 나므로 발그레한 찰수수를 찾는 것이다.
소주를 내릴 때도 역시 늦은불을 지켜야 하고 소주고리 속에서 이슬로 맺혀진 것이 완전히 냉각된 상태에서 흘러내리도록 증류에 있어서도 세심히 주의를 기울인다. 자칫 더운 술이 나오면 식은 뒤 도수가 떨어지게 마련.
『술 괴는 소리만 들어도 술맛과 생산량을 감지하구말구요. 독을 만져보며 열을 재고, 탄산가스를 맡으며, 혹은 찍어먹어 보면서 균의 배양상태를 평생 감정해 봤으니 별로 오차가 없을줄 자부하디요. 곡식 1말이면 소주8되가 넉히 나지요.』
한국에 증류주로서의 소주가 전해진 것은 고려때 원나라로부터 처음엔 약용으로 들어왔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물론 술의 역사는 지극히 오래며 처음엔 신과 교통하는 의식용으로 시작돼 오래지않아 기호식품으로 보급되면서 한국인은 음주습관을 가진 민족으로 두드러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룩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에서는 술을 증류하는 기술이 뒤늦게 도입됐다.

<빈독 놓고 시늉만>
원대 문현에서는 소주를 남만에서 전해온「아자길주」라 했는데 이는 alambic이라는 서구의 증류기계 호칭에서 연유한 말이다. 증류 그 자체의 기술은 기원전 수백년까지 소급되지만 정작 술을 증류하기 시작한 것은 서구에서도 12세기께부터라 한다.
『좋다는 양주 얻어마셔 볼 수록 우리 술이 낫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디요. 내 4대조께서 페양 외성에서 양조업으로 성공하셨고, 나도 광성고보 나오자 스물둘에 가업을 물려받았으니께니 지금도 훈훈한 문배 냄새가 코에 배어있읍니다레. 일제 때에도 하루 10섬씩 빚었고 해방 직후엔 평천양조·대동양조 두군데서 최고로 벌여도 봤디요.』
이씨는 지난 72년 남북한적십자회담때 북한에서 문배주를 가져오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 명맥이 끊어진 것 같다며 여간 안타까와하지 않는다. 『내 평생에 다 알려놔야겠는데….』지금 같아서는 매우 절망적이라는 판단이다. 중국 화북의 고량주인 빠이주(백주)가 향기는 유사해도 문배주만큼 비위에 안맞는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양곡으로 양조를 금한 것은 1955년. 예부터 나라가 곤궁할 때엔 금주령이 내려지곤 했었다. 마찬가지로 동란후 어려운 고비였다. 이때 이씨도 양조업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 이번 기사를 위해 사진촬영 준비를 부탁했더니 뜻밖에 빈독을 차려놓고 시늉만 내자고 했다. 놀랍게도 술을 빚을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이듬해 관계인사를 초빙, 발표회를 갖고는 곤욕을 치렀던 과거가 있기때문이다. 심지어 지방에서 지정받은 할머니는 세리 등쌀에 몇십만원 세금을 물었다는 얘기였다.
나라에서 지정한 소중한 문화재인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국고에서 매달 생계비를 보조하고 발표회 지원금까지 지급하는 처지다. 연1회 이상 발표회를 갖는 것은 문화재보호법에 명시된 의무사항이요, 대량의 지속적인 상행위가 아닌데도 같은 국가기관(국세청)끼리 한쪽에선 막무가내로 과세하려 한다면 뭔가 한참 잘못된 처사다. 상식으론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이씨는 벌써 몇년째 발표회를 갖지 못했다고 실토한다. 문화재관리국은 그동안 뭣을 했고, 문화재위원회는 왜 덮어두고 있는가. 그게 한국의 현실이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글 이종석

<중앙일보호암갤러리관장>
사진 김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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