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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박해에도 선진국 반열···건국 자체가 기적인 이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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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줌업]나라 세운 것만도 기적인데…이스라엘 건국 70년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년, 48~53년 재임)은 “이스라엘에선 아무리 현실주의자라도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오늘(14일)로 70세 생일을 맞는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건국에 대해 한 말이다.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은 그 자체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2000년 전에 로마에 나라를 잃고 대부분 고향에서 쫓겨난 유대민족이 다시 돌아와 그 땅에 나라를 세웠으니 말이다. 그것도 중동에선 드문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하고 있다.

<상> 외교국방과 경제는 양지 #14일로 현대 이스라엘 70세 생일 #2000년 전 조상의 땅에 찾아와 #나라 세우고 주변 아랍국과 투쟁 #4차례 전쟁 끝에 외교·협상 전환 #이집트·요르단과 평화협정·국교수립 #경제는 선진국, 정치는 민주주의 #세계적인 창업국가로 자금 몰려 #팔레스타인 박해로 국제적 비난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되면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한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의 모습. [중앙포토]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되면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한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의 모습. [중앙포토]

갖은 박해 속에서도 정체성 지킨 유대인

유대인이 추방된 뒤 이스라엘 땅은 로마·비잔티움·무슬림·십자군을 거쳐 다시 무슬림 세력인 맘루크와 오스만 튀르크가 지배했다.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기독교 사회로부터 ‘예수를 살해한 민족’이라며 호된 차별과 박해를 당했다. 예수와 초기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는데도 말이다. 영국과 스페인 등에서는 아예 집단 추방을 당했다. 심지어 20세기에는 홀로코스트라는 시련을 당해 멸종 직전까지 갔다. 유대인 박해는 서구 인종차별의 흑역사를 대표한다. 나라 없는 유대인은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듯 문학작품에서도 유대인은 사악하고 탐욕적인 종족으로 표현되기 일쑤였다.

예루살렘 곳곳에선 전통복장을 한 유대교도들을 만날 수 있다.정통파 유대교도들이다. [중앙포토]

예루살렘 곳곳에선 전통복장을 한 유대교도들을 만날 수 있다.정통파 유대교도들이다. [중앙포토]

그럼에도 유대민족은 유대교라는 신앙, 모계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정체성 교육, 공동체 사회 등을 통해 명맥을 유지했다. 중동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주로 의사, 건축가 등 전문직을 맡으면서 기독교와 이슬람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정체성을 지켰다.

민족 부활의 꿈 이룬 시오니즘 운동  

독일 베를린의 &#39;홀로코스트 추모 시설. [중앙포토]

독일 베를린의 &#39;홀로코스트 추모 시설. [중앙포토]

유대국가 이스라엘 건국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불굴의 행진’이었다. 19세기 유럽 등에서 시오니즘 운동이 싹트면서 유대 국가를 세우자는 희망·꿈·이상이 무르익어갔다. 로스차일드 가문 등 영향력 있는 유대인 금융인·기업인들은 강대국을 상대로 로비를 펼쳤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포어가 당시 오스만튀르크 제국 영토였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운다는 ‘밸포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이 1차대전 중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전후 위임통치를 하는 동안 유대인 이주가 진행됐다. 이주 유대인들은 영국과 아랍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다. 이스라엘인들은 2000년의 디아스포라(이산)를 마감하고 48년 조상의 땅에 나라를 세웠다.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던 유대인들의 이상은 결국 건국으로 영글었다. 나라를 세운 이들은 고대에 조상들이 쓰던 헤브루어를 부활해 국어로 사용하고, 달력도 서구의 그레고리우스력 대신 고대에서 기원한 헤브루 달력을 쓴다. 이스라엘 건국은 고대에 사라진 민족과 국가의 부활이나 마찬가지다.

야드바셈으로 불리는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에는 나치 독일에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야드바셈은 ‘이름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생생한 역사 교육 현장이다.[중앙포토]

야드바셈으로 불리는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에는 나치 독일에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야드바셈은 ‘이름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생생한 역사 교육 현장이다.[중앙포토]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눈부신 경제발전

이스라엘 경제는 지난 70년간 눈부시게 발전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국내총생산(GDP)는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기준 2018년 전망치로 3737억 달러로 세계 33위다. 1인당 GDP는 4만2115달러로 세계 20위의 부자나라다.
GDP가 현재의 경제 수준을 말해준다면 5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창업기업)은 미래의 희망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며 이미 세계적인 창업국가 반열에 올라섰다. 매년 문을 여는 스타트업이 1500개에 이르러 8시간에 하나씩 창업이 이뤄질 정도다. 2000명 당 1명이 창업에 뛰어들어 인구 대비 창업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텔아비브에서 열린 세계 최대 창업축제 ‘DLD 페스티벌’에서 벤처기업 대표들이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중앙포토]

텔아비브에서 열린 세계 최대 창업축제 ‘DLD 페스티벌’에서 벤처기업 대표들이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중앙포토]

이에 힘입어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사이버보안·바이오·드론·과학영농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기술과 수입원을 확보한 스타트업이 해외에 인수되면서 이스라엘로 유입되는 외화가 매년 100억 달러를 넘는다. 여기에 스타트업에 대한 전 세계의 투자로 활발하다. 특히 미국이 국가안보와 첨단기술 유출 문제로 자국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를 막자 중국이 매년 150억 달러 이상 이스라엘에 투자하고 있다.

방울토마토·USB 발명한 과학기술 창의국가

이스라엘은 건국 초 사회주의, 공동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공동 생산·분배·생활을 지향하는 집단농장 키부츠는 그 상징이었다. 여기에 더해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해 하이테크 산업도 키워왔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화학상이 6명, 평화상이 3명, 경제학상이 2명, 문학상이 1명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고용인력 1만 명 당 과학기술자 숫자가 140명으로 85명인 미국이나 83명인 일본보다 현저히 많다. 이스라엘이 개발해 전 세계가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상품도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방울토마토와 USB 플래시 메모리는 이스라엘에서 처음 나왔다. IBM PC에 사용된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레이저 키보드, 바이러스와 암 억제 효과가 있는 인터페론 단백질, 인터넷 전화 바이버, 전자사전 및 통역도구인 바빌론 등도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충남 논산에서 수확한 컬러 방울토마토. 세계 최초의 방울토마토 육종은 이스라엘에서 이뤄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논산에서 수확한 컬러 방울토마토. 세계 최초의 방울토마토 육종은 이스라엘에서 이뤄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마사다 정신, 불굴의 이스라엘군

이스라엘 동남부의 마사다(헤브루어로 요새라는 의미) 유적. 로마군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죽음으로 저항한 고대 유대인들의 처절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오늘달 이스라엘군 특수부대 신병들의 군인 선서 장소로 쓰인다. [중앙포토]

이스라엘 동남부의 마사다(헤브루어로 요새라는 의미) 유적. 로마군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죽음으로 저항한 고대 유대인들의 처절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오늘달 이스라엘군 특수부대 신병들의 군인 선서 장소로 쓰인다. [중앙포토]

이스라엘은 18세 이상 모든 남녀(일부 유대교 종파와 아랍인 제외)가 국방의무를 지는 나라로 이름 높다. 이스라엘군 정예부대 신병들은 티로누트라고 불리는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면 동남부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고대 요새인 마사다에 올라가 군인 선서를 한다. 마사다는 불굴의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민족 성지다. 기원 1세기 로마 점령군에 대항해 봉기했던 유대인들이 저항하다 여성 2명과 어린이 5명만 남기고 남녀 950명이 죽음을 택한 곳이다. 유대 율법은 자살을 금하므로 서로 상대를 찌른 것으로 짐작된다. 죽을 순 있어도 무릎 꿇을 순 없음을 목숨으로 웅변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고향에서 쫓겨나 디아스포라로 내몰렸다. 1842년 발견된 요새터에서 1963~65년 유골이 발견돼 전설이 역사로 확인됐다. 69년 7월7일 이스라엘군은 최고의 예우로 군대식 장례를 치르고 유골을 다시 묻었다. 신병들은 이곳에서 횃불을 켜놓고 “마사다가 다시는 함락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맹세한다.

건국하는 날부터 생존을 위협받은 나라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 최남단 에일라트를 점령한 이스라엘 무장대원들이 잉크로 그린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 최남단 에일라트를 점령한 이스라엘 무장대원들이 잉크로 그린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스라엘은 건국하는 날부터 생존을 위협받았다. 47년 유엔 결의로 요르단 강과 지중해 사이의 지역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이스라엘 출생증명서다. 하지만 이집트·시리아·요르단 등 주변 아랍 국가들은 48년 전쟁으로 응답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 또는 제1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이 무력충돌에서 이스라엘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총을 들고 필사적으로 대항한 결과 결국 독립을 얻어냈다. 출생증명서는 유엔이 발행했지만 이를 실행으로 이끈 것은 이스라엘인의 피와 땀이었다.
이스라엘은 56년 영국·프랑스 주도의 수에즈동란(제2차 중동전쟁)을 거쳐 67년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과 대적했다. 국방장관 모세 다얀 장군이 이끈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공군·기갑 작전을 바탕으로 압승을 거뒀다. 6일간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몫의 땅은 물론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군사작전 능력과 국토방위 의지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73년 아랍의 보복 기습공격인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6일전쟁의 성과에 취해 아랍권을 얕잡아봤던 이스라엘은 명백한 공격 징후를 무시하다 기습을 당했다. 밀리던 이스라엘군은 아리엘 샤론 장군이 기갑부대를 이끌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수도 카이로 방면으로 역습에 나서면서 간신히 휴전으로 전쟁을 마찰 수 있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전쟁사는 전 세계에 국방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소중한 교훈으로 활용된다.

‘힘으로는 평화도 독립도 지킬 수 없다’는 교훈

1967년 6일전쟁에서 승리한 이츠하크 라빈, 모셰 다얀, 우지 나르키스 등 군 지휘부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있다. 당시 모사드는 치밀한 정보수집으로 시리아 등 적 내부를 훤히 파악하고 전쟁에 임할 수 있었다.[중앙포토]

1967년 6일전쟁에서 승리한 이츠하크 라빈, 모셰 다얀, 우지 나르키스 등 군 지휘부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있다. 당시 모사드는 치밀한 정보수집으로 시리아 등 적 내부를 훤히 파악하고 전쟁에 임할 수 있었다.[중앙포토]

욤 키푸르 전쟁은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됐다. 군사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군사력만으론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랍도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79년 3월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 대가로 점령지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 품안으로 되돌아갔다. 78년 노벨평화상은 이스라엘의 메나햄 베긴 총리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94년 9월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2국가공존’을 골자로 한 오슬로합의를 이뤘다. 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잠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학살한 ‘철천지원수’와 평화를 위해 손을 잡았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됐고 이는 2013년 정부로 전환했다. 이스라엘은 94년 이웃 아랍국가 요르단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츠하크 라빈(1922~95년, 재임 92~95년)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 재임 1969~2004) PLO 의장은 오슬로 합의로, 시몬 페레스(1923~2016년, 총리 재임 2007~2014년) 당시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요르단 국교정상화로 각각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의 지난 70년 역사는 국민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힘만으론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이스라엘의 그늘, 팔레스타인 박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박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박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다. 이스라엘의 그늘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를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정부가 국제적으로 승인을 더 많이 받고 비회원국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에서 활동하는 것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무장세력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거부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지난해 12월 6일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하게 했다. 예루살렘은 47년 팔레스타인 분할안에서 유엔 관리 대상이었지 이스라엘 몫이 아니었다. 이후 조정에서도 성전산이 포함된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관할지역이었지 이스라엘의 영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의회는 67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선언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를 임시 행정수도로 삼고 있는 팔레스타인 정부도 공식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에도 성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밤에 메카에서 천마 부라크를 타고 예루살렘의 성전산으로 날아온 다음 그곳에서 승천해 7개의 하늘나라를 돌며 인류의 조상 아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모세, 아론, 이드리스, 요셉, 세례자 요한 등 일곱 명의 예언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전승에서 비롯됐다.
트럼프의 이 같은 선언에 중동 세계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미국은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로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맞는 14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기어이 옮겼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이슬람 세계가 항의 시위를 벌였으나 미국도, 이스라엘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 중동에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미국은 과거 유엔이 정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경계선인 그린 라인 위에 요새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대사관을 지었다고 일본 NHK방송이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로 남편을 따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카 트럼프가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방카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로 남편을 따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카 트럼프가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방카 트위터]

이스라엘 독립기념일은 헤브루 달력으로

이스라엘 독립선언은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 당시 세계 시온주의자 협회 의장에  의해 이뤄졌다. 벤구리온은 초대 총리가 됐다. 이날은 헤브루어로 ‘욤 하츠마우드’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국경일로 지정됐다. 유대인 고유의 헤브루 달력(여덟째 달인 이야르의 제5일)으로 쇠고 있어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론 매년 날짜가 다르다. 이 달력에 따르면 올해의 이야르 5일은 그레고리우스력으론 지난 4월 19일이었다. 하루 전날은 ‘욤 하치카론’이라는 이름의 현충일이다. 초기에는 건국기념일엔 독립전쟁 희생자도 기렸는데 축제 분위기 속 추념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분리해 하루 전날로 옮겼다.

이스라엘은 헤브루 달력에 맞춰 4월 19일 건국 기념 행사를 치렀지만 미국은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로 70년 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한 5월 14일에 맞춰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 셈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4월 30일 텔아비브 국방부 청사에서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증거를 입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여 핵합의에서 탈퇴했다. [EPA=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4월 30일 텔아비브 국방부 청사에서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증거를 입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여 핵합의에서 탈퇴했다. [EPA=연합뉴스]

국립묘지에서 독립기념일 행사 시작 전통

올해 이스라엘은 다양한 방식으로 건국을 축하했다. 이스라엘 영어신문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건국기념일 전야인 지난 4월 18일 수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이스라엘 전역에서 문화부 주최로 ‘혁신의 유산’이라는 이름의 70시간 연속 파티를 열어 축하했다. 4월 18일 예루살렘 서쪽의 헤르첼산 국립묘지에서 공식 건국기념 국가행사가 열렸으며 이어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불꽃 행사로 이어졌다. 헤르첼산은 유대국가 건국이라는 이상을 위해 제안한 시온주의자 테오도르 헤르첼(1860~1904)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사자와 국가 유공자들이 묻혀 있다. 70㎞에 걸친 해변에서 철야파티도 열렸다. 건국기념일 당일에는 4월 19일엔 건국 축하 퍼레이드와 연례 성서 퀴즈대회, 이스라엘상 시상식 등이 열렸다. 올해는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알렉산더 루보츠키(61)가 받았다.
이스라엘 영어신문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4월 20일에는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의 이름을 딴 거리에서 댄스 파티가 벌어졌다. 축하행사에 미화 3000만 달러의 비용을 지출했다. 60주년 때의 4700만 달러보다 줄었다. 축제 과소비가 국민의 생존 수호와 번영 성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실용주의적 사고를 보여준다. 군사 퍼레이드는 비용 문제로 68년 이후 중단됐으며 73년 건국 25주년 때 딱 한 차례 더 열렸다.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초대 총리. 이스라엘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건국기념일에는 그곳에서 댄스 축제가 열린다. [중앙포토]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초대 총리. 이스라엘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건국기념일에는 그곳에서 댄스 축제가 열린다. [중앙포토]

<하편에선 ‘70년의 그늘-팔레스타인 박해’를 다룹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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