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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고의 관여'로 전환…‘대동강 트럼프타워’ 현실화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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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11일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이에 따른 보상을 주고받는 일괄타결 방안이 북·미 간에 논의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조기 반출 등 빠른 비핵화 달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면 북한이 국제 경제망에 편입될 수 있도록 미국이 지원하는 '빅딜'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방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빠른 비핵화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과 동등한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곧바로 이에 호응했다. 12일 오후 10시쯤(한국시간) 북한 외무성은 공보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23~25일 중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공보는 한·미·중·러·영 언론인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폭발을 통한 갱도 붕괴 ▶입구 폐쇄 ▶관측설비와 연구소 등 구조물 철거 ▶경비인원 및 연구사 철수 등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그 간 비핵화 대가로 원한 ‘체제 안전 보장+∝’에서 ‘+∝’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관련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그 간 미국의 대북 기조인 ‘최고의 압박과 관여’에서 압박에 방점이 찍혀 있었는데 이제 관여로 무게추가 옮겨갔다. 경제적 보상을 포함한 최고의 관여를 통해 신속하고 과감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때가 됐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며, 북한도 이를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한국과 동등한 수준의 번영’은 북한이 정상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제재로 막혀 있는 국제 금융망으로의 접근, 수·출입, 대북 투자 등에서 파격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9일 방북해 김정은에게도 이런 취지를 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의 면담에 배석한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귀국 직후인 10일(현지시간)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에게 우리의 목표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임을 명확히 밝혔으며, 북한이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을 논의했다. (특히 김정은에게) ‘북한에 경제적 변화, 경제적 개혁, 열린 사회를 가져올 능력이 당신에게 있으며, 모든 것이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갖고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를 높이 평가(조선중앙TV 10일 보도)한 점도 이같은 보상 플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나와 김 위원장은 그의 앞에 놓여진 복잡한 문제와 도전들, 전략적 결단에 대해 좋은 대화를 나눴다. 그것들을 어떻게 진행하고 싶은지, 북한이 완전하게 비핵화할 경우 우리가 제공할 준비가 돼 있는 보장(assurance)들과 교환할 준비가 돼 있는지 말이다”고 소개했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면 체제 안전과 경제 발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앞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4·27 남북정상회담 전날 열린 특별토론회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안전 보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은 대동강에 트럼프타워를 세우거나 평양에 맥도날드 가게를 여는 것”이라며 “그래야 미국의 군사적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북한은 생각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 발전과 군사적 위협 해소를 동시에 이루길 바란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전문가를 인용해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북한판 마셜 플랜’에 해당하는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로서는 북·미 모두 다음달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이에 따른 보상을 명시한 합의를 내는 데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 ‘대동강 트럼프 타워’가 현실화하려면 북한의 과감한 조치 선행이 핵심이다.

11일 만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 외교부]

11일 만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 외교부]

북·미 간에 북한이 취해야 할 구체적 행동에 대한 논의도 틀을 잡아가고 있다. 강경화 장관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보좌관의 11일(현지시간) 회동에서 북한이 추구할 비핵화 모델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특히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카자흐스탄 모델’을 언급했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한 뒤 신생 독립국이 된 카자흐스탄은 92년 소련이 자국 영토 내에 실전 배치했던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서방 국가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성장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은 핵무기 1000여기를 러시아로 반출했고, 미국은 ‘넌-루거 프로그램’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핵 과학자들이 전직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 북·미 간에도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기에 국외로 반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뒤 최소 수개월 내에 북한이 이런 조치들을 이행하면, 대가로 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방안이다. 핵·로켓 발사 실험을 잠정 중단하고,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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